“여고때 시력 잃고 48살에 새길”
“여고때 시력 잃고 48살에 새길”
[똑똑!근황토크]31. 이영옥 대전시의원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3.09.11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전지역 10만 장애인을 대표해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시의회에 들어온 이영옥 의원은 어린 시절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그만큼 누구보다 장애인을 위해 현실적으로 필요한 제도와 지원이 무엇인지 몸과 마음으로 느껴온 인물이다. 그리고 이 의원이 장애인정책 우수의원에 3년 연속 선정되는 동안 대전의 장애인 복지도 크게 발전했다. 남보다 두 배 세 배 더 노력하며 역경을 딛고 선 이 의원을 만나봤다.  

-언제부터 장애를 가지게 됐는지.
호수돈여고 2학년 때 3일간 열병을 앓고 일어나니 앞이 안보였다. 바로 병원에 갔는데 시신경이 말라버렸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꿈일 정도로 욕심도 많고, 남들 앞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자의식이 강했던 만큼 당시 느꼈던 좌절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컸다. 다만 곁에서 늘 보살피고 지켜주신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회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서른여덟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면서 마흔여덟이 될 때까지 거의 모든 것을 어머니가 해줬다. 그때도 속에선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생각, 내 일을 찾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00년 우연한 기회에 처음 밖으로 나가 산성종합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부는 생각도 못 했는데 너무너무 설레고 좋아 며칠 밤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기초재활반을 수료하고 복지관 이사를 해보라는 관장님의 권유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하다 보니 어느새 대전시각장애인연합회 상임이사, 한국시각장애인가톨릭선교회 대전지부장, 대전시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부회장, 대전점자도서관장을 거쳐 비례대표로 시의원까지 됐다. 

-의정생활이 불편하지는 않나. 
앞이 안 보이니 건물도 생소하고 직원들도 낯설어 두세 달은 거의 잠을 못 잘 만큼 정신적 긴장이 심했다. 항상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었다. 서류나 공문 등은 확대기로 80-90배 확대해 보는데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 오래는 못 본다. 급한 것이나 꼭 봐야 할 것을 제외하고는 보좌관이 읽어주고, 회의나 토론회 내용은 메일로 받아 포켓용 음성 변환기로 듣는다.

-우리 사회 장애인 문제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2010년 서대전네거리역 승강기에서 한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탄 채 15m 지하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픈 일이었지만 한켠에선 ‘성질 급한 장애인이 좀 기다렸다 타지 못하고 서두르다 죽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장애인은 사람들에 밀려 얼마나 많은 나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결국 사고를 당한 것이다. 정책적인 부분은 점차 나아지고 있는데, 여전히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사람들의 의식이다. 장애인들은 제도보다 정상인들의 차별과 편견에 더 큰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인식개선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시에서 몇 억씩 예산을 늘려 이동편의시설을 만들지만 지하철을 타보면 휠체어 장애인부터 태우려고 안한다.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다. 이따금씩 하는 홍보가 아니라 꾸준히, 끊임없이 ‘장애인 먼저’라는 생활 속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머릿속으로 배려를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배려를 한다면 자연스레 이러한 문제도 사라질 것이다.

-자립을 위한 지원도 필요할 텐데.
맞다. 일자리를 가짐으로서 장애인들이 얼마나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기는지 일반인들은 알지 못한다. 특히 돈을 얼마 받고를 떠나 일자리만 있다면 살아가는 데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된다. 일자리 창출 역시 인식개선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정책이다. 시에서 건강카페 등을 통해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좋은 정책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점자도서관 이전을 주장하는데.
대전점자도서관이 현재는 삼성동 인쇄거리에 있는데 접근성이 떨어지고 차도 세울 수 없을뿐더러 편의시설도 전혀 안 돼 있어 장애인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크지 않다. 마침 한밭도서관 별관에 향토사료관 자리가 비어있어 그곳으로 옮기면 가장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시정질문을 통해 요청했더니 염홍철 시장도 절차를 거쳐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앞으로 지체·시각·청각 등 장애유형별로 노인들이 갈 수 있는 양로원이 꼭 생겼으면 좋겠다. 사실 장애 노인들은 노인정에도 못 나가고, 지체·시각·청각 장애는 서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서로 분리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구 동구청 부지에 청각언어장애인복지관이 들어서고 있어 유치원부터 노인들까지 여가, 교양, 교육 등 모든 것을 담당할 수 있게 돼 큰 위안이 된다.

-장애인 학생들의 인권보호도 시급하다.
가장 큰 문제가 성폭력인데, 대부분 지적장애인이라는 것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겉으론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사고수준이 낮기 때문에 본인이 유린당했다는 자체도 모를 뿐더러 한두 번 당한 것은 묻혀버리고 만다. 정상인은 어디 가서 호소라도 하겠지만 장애인은 상담소에 접수된 것 외에는 밝혀진 것이 없다. 장애인들에게 대처법을 교육시킬 것이 아니라 일반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다문화가정에도 관심이 큰 것으로 아는데.
다문화 가정은 여성 일자리와 아이들 교육에 심각성 가지고 있다. 사실 다문화 2세가 굉장히 많은데, 잘 사고 행복한 아이들은 괜찮지만 일고여덟 나이에 엄마가 집을 나가면 나중에 큰 사회문제로 발전할 수 있어 걱정이 크다.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 2세 교육 프로그램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학교마다 다문화 강사를 배치하고, 강사들이 자존감과 사명감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남은 임기 주안점은.
사실 정상인이 장애인과 의사소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이달 ‘장애인차별금지 및 인권보장 조례’의 미비한 부분을 대폭 보완해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인데, 핵심은 대전장애인인권센터 설치에 관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각종 차별구제와 인권보장을 위한 활동을 지원함과 동시에 뇌병변, 시각, 농아, 지적장애 등 유형별 상담을 진행할 수 있는 장애상담사를 배치토록 하는 것이다. 요즘 동료상담이 부각되고 있는 것처럼 같은 유형의 장애상담사가 있어야 사건이 터졌을 때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다. 개정안이 이번에 꼭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 다시 도전하나.
장애인으로서 지역구 출마는 너무 힘든 일이다. 새누리당의 배려로 비래대표 1번으로 의회에 들어와 4년간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한 것만도 너무 감사하다. 물론 더 하고 싶고, 이제 어떻게 하면 일이 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인지 알겠지만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장애인 시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예산을 지킬 수 있고 늘릴 수도 있으니 전체 장애인 복지가 발전되는 것이 사실이다. 없을 때는 한정된 예산마저 깎이는 경우 다반사였다. 장애인 문제는 당을 떠나 결코 정치적인 부분이 아니다. 어느 당이 됐든 내년에도 장애인 시의원이 들어왔으면 하는 소망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인들이 기구한 운명이라고 탓하지 말고,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는 꿋꿋함을 보이면서 꿈을 저버리지 않고 펼치다 보면 오히려 지금의 고난이 좋은 기회로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시의원이 못 되었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꿈을 이룰 때까지 열심히 끝까지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