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답은 소통의 시작
물음과 답은 소통의 시작
  • 정덕재 시인·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책임작가
  • 승인 2013.10.02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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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에 우리 집 고딩 녀석은 조카들과 함께 부여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는 형들에게 놀아달라고 조르지만 머리가 굵어진 녀석들은 숨바꼭질이나 윷놀이 같은 놀이에 크게 흥미를 갖지 않았다. 대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게 대부분이었다. 결국 함께 있어도 따로 있는 셈이다.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폰의 등장은 놀이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과 마주보며 하던 놀이가 가상의 공간과 대면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런 놀이가 더욱 친숙한 게 요즘의 현실이다. 놀이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루덴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놀이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전통적인 놀이는 ‘장소의 격리’와 ‘시간의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특징을 뒤집은 것이 바로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다. 지금의 놀이는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자유자재로 이동한다. 이런 기기들이 놀이의 공동체적 특성을 개별화시킨다는 점에서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는 점은 새겨봐야 할 부분이다.

모처럼 시골에 온 녀석들이 게임에 빠져있으니 할아버지가 보기에 마땅찮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저녁 무렵,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불러 거실에 앉혔다. 그러더니 명절에 어울리는 화제를 꺼냈다. 먼저 정씨 가문의 1대 손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을 한 분 한 분 거명하며 집안내력을 설명해 나갔다. 그리고 마을의 역사와 특징을 자세히 들려주는 사회문화 수업이 이어졌다.

초등학생 녀석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지루한 표정이 역력했다. 마지막은 할아버지의 5분 스피치 제안이었다. 우리 집 고딩을 비롯해 조카들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초등학생 조카는 유소년 축구클럽에 다니는 얘기를, 중학생 조카는 자신이 다니는 대안학교의 교실 풍경을, 올해 대학에 들어간 녀석들은 다소 시니컬한 표정으로 기숙사 생활을 포함해 새로운 학교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물론 5분을 채운 녀석들은 없었다.

우리 집 고딩의 할아버지는 질문을 많이 한다. 녀석이 부여에 있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전화를 할 때 나는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녀석의 통화가 길어질 때면 분명 상대는 할아버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일요일인데 뭐하고 지냈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도서관에 갔었어요”
“도서관에서 무슨 공부를 했냐?”
“과학요.”
“과학책 어떤 부분을 공부했냐?” 
“에너지 보존법칙요.”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에너지에 대해서 어떤 연구를 했는지 아냐?”
“아뇨 모르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할아버지가 얘기를 해 줄 테니까 잘 들어봐”

때로는 10분이 넘는 설명을 들어야 하는 고딩 녀석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교단에서 은퇴한 할아버지는 질문을 이어가는 걸 좋아한다. 할아버지가 묻기를 자주하는 것은 10대의 손자와 세대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유행하는 말과 청소년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수시로 묻는다. 고딩 녀석은 할아버지의 물음에 어려워하지만 진지하게 답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물음과 답이 어우러질 때 세대와 계층은 물론 좌우는 소통의 문을 열 수 있다. 문답의 조화는 균형있는 사회를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물음과 답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정성 없는 물음과 진실성 없는 답이 오가는 가운데 대립과 갈등은 더욱 복잡해진다. 우리의 정치판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묻고 답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교육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우리 집 고딩이 할아버지를 통해 <문답훈련>을 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빠, 할아버지는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어떤 때는 힘들어”
“할아버지가 손자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런거야”

녀석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답하기 힘든데 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쏟아볼까?”
할아버지의 물음을 이어받은 손자의 소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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