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단상
눈 오는 날의 단상
[정작가의 ‘고딩아빠 잡설’]
  • 정덕재
  • 승인 2013.12.18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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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덕재 작가
며칠 전 대전 충남지역에 눈이 곱게 내렸다. 눈이 오는 날, 하루 종일 페이스북에는 설경사진과 함께 겨울의 정취를 글로 올려놓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 내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중계하는 이가 있었고, 눈과 어울리는 노래를 골라 유투브와 링크시키는 이도 있었다. 아마 직장인들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창밖의 풍경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눈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눈이 오는 날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남녀들이 많고, 술 한 잔 생각나 주점을 찾는 낭만파들도 있다. 물론 운전 걱정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낙상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눈은 감상에 취할만한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눈은 여러 장르의 소재가 되어 왔는데 눈이 오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내가 우리 집 고딩에게 들려준 영화는 많은 이들이 아는 작품이다.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기억하는 이들은 ‘오겡끼데스까’로 널리 알려진 “잘 지내시나요. 오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라는 명대사를 떠올릴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애잔한 심경을 담은 이 영화는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온 세상을 묻어버릴 것 같이 내리는 눈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풍경화였다.

또한 고전이 된 작품 ‘러브스토리’도 겨울이면 빼놓을 수 없는 영화다. 눈밭에서 남녀 주인공이 장난을 치고 뒤로 넘어지는 모습은 지금도 젊은 연인들이 간간이 따라하는 명장면이다. “진정 사랑한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라는 말은 감미로운 속삭임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알리 맥그로우의 청순한 눈빛을 기억하는 중장년들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다.

내가 러브레터와 러브스토리의 기억을 떠올리며 얘기하자, 우리집 고딩 녀석은 크리스마스 단골 영화를 꺼냈다.

“나는 케빈이 나오는 나홀로 집에가 생각나는데”
“기억나는 대사가 있냐?”
“좀도둑이 케빈한테 계속당하니까 이렇게 말했잖아. 한번만 더 때리면 네놈 고추를 기름에 튀겨줄거야”
“그게 유명한 말이냐?”
“명대사는 아녀도 아무튼 웃기잖아”

좀도둑 조 페시와 다니엘 스톤은 케빈보다 더 순수한 인간으로 비칠 만큼, 바보 같은 행동으로 우리에게 밉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영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나는 기억에 남는 문학작품을 꺼냈다. 녀석에게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와 김수영의 ‘눈’ 몇 줄을 들려주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에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녀석은 교과서에 나오는 시의 제목만 건성으로 화답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밤새 눈이 왔으면 좋겠네”
“너도 눈이 좋냐?”
“그게 아니라, 눈 많이 오면 야간자습 안하고 일찍 끝날 거 아냐”

순간, 내 입에서는 짧은 한숨이 나왔다. 야간자습이라는 말이 도대체 눈과 어울리는 말이냐.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녀석에게 야간자습은 눈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항상 학교에 갇혀있는 고딩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나는 케빈이 공원에서 만난 비둘기 아줌마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롤러스케이트가 있었는데 난 상자에 그냥두기만 했어요. 망가질까 두려워 방안에서 두 번 정도 타기만 했죠. 그러다보니 발이 커져서 들어가질 않았어요.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어요. 감정을 숨겨두면 내 스케이트처럼 되고 말거에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잃는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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