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고딩들아 야생마가 되거라
2014, 고딩들아 야생마가 되거라
  • 정덕재
  • 승인 2014.01.02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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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란을 보면 가끔 우리 집 고딩 녀석이 중학교 때 쓴 일기가 떠오른다. 아마도 1학년 입학하던 해였을 것이다. 녀석은 1월 1일에 쓴 일기의 끝 부분에 데미안에 나오는 알깨기를 인용했다. “알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나도 새롭게 태어나겠다” 이런 내용으로 새해를 맞는 다짐을 했다. 물론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났다. 또 하나 기억나는 일기는 열 살이 되던 해 쓴 것이다. 그때도 1월 1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문장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나는 이제 10대다. 9대와는 다를 것이다” 아마 녀석은 두 자리 숫자의 나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마흔 살이나 쉰 살이 될 때 그 느낌은 사뭇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홉 살 때와는 다르게 지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대라는 표현이다. 나는 녀석이 눈치재지 않도록 웃음을 참았던 기억이 난다.

2013년이 지나가기 며칠 전, 녀석에게 조심스럽게 새해의 소망을 물어보았다.
“새해에 하고 싶은 게 있냐?”, “하고 싶다고 할 수나 있나?”
사실 맞는 말이다. 놀고 싶다고 맘껏 놀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같이 갈 친구들은 학원에 가고, 원대한 그림을 그리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근데 내년에 열심히 공부하면 00대학에 갈 수 있을까?”, “그럼, 얼마든지 가능하지”, “무슨 학과를 가고 싶은데”, “확실히 정한 것은 아닌데 언론 관련된 학과에 관심이 좀 있어 ”

나는 녀석과 그동안 대학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다. 녀석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녀석이 미친 듯이 좋아하는 건 축구다. 지금도 유효하기는 하지만 축구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프리미어 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새벽까지 중계를 보는 일이 다반사다. 녀석이 좋아하는 리버풀이 이기는 날이면 표정도 밝다. 그런데 축구경기를 보는 것 못지않게 남다른 방식으로 경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여느 축구팬과는 차이가 있다.

올 시즌 대전 시티즌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우리 집 고딩 녀석은 대전 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내 기억에는 학교행사와 겹치는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기장을 찾은 것으로 안다. 녀석이 경기장에서 한 일은 자원봉사다. 경기장은 게임 시작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 경기장 4층 기자들이 앉아있는 미디어 석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게 녀석의 주된 업무였다. 예를 들면 더운 여름날 물병을 아이스박스에 넣어두거나, 복사나 커피심부름 같은 보조 업무다. 때로는 하프타임 때 운동장에 내려가 이벤트 진행을 돕기도 했다.

경기장에서 이런 경험을 하면서 녀석의 축구 보는 안목이 높아졌다. 그렇다 보니 축구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대학도 이와 연관된 학과를 두고 고민하는 눈치다. 앞으로 고민과 생각이 얼마나 깊어질지, 얼마나 좌절을 할지, 또 희망의 싹을 어떻게 키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어릴 적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기는 하지만 꿈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처럼 불행한 삶도 없다. 특히 10대 후반 자신의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는 더욱 그렇다.

2014년이 됐다고 해도 이 땅에 사는 고딩들의 생활은 2013년과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이라는 단순반복의 생활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들판을 질주하는 야생마와 같은 기질까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에 길들여지기에는 이른 나이이고 앞으로 써 나가야 할 도전의 역사가 길기 때문이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 땅의 고딩들아! 날뛰는 야생마처럼 2014년 말띠 해 갑오년을 보내길 바란다. 더 반항하고 날뛰면서 험한 세상과 부딪히기를, 그리고 오랫동안 길들여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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