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은 피부관리중
고딩은 피부관리중
  • 정덕재
  • 승인 2014.01.08 09: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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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집 고딩이 피부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동안 녀석이 꾸준함을 보여준 것은 게임과 축구에 불과했는데 여기에 피부 관리 하나가 더 추가됐다. 피부 중에서도 정확하게 말하면 얼굴이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여드름이 부쩍 심해져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지난해 여름까지는 생각날 때 마다 가끔씩 얼굴에 팩을 하거나 약을 바르는 정도였지만 두 달 전부터는 거의 매일 저녁에 관리를 한다. 녀석이 하는 것은 율무 팩이다. 내가 집에 들어가 꼭 해야 하는 대표적인 게 바로 팩 만드는 일이다. 모든 게 오래 하다보면 경험이 쌓이고 요령도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율무가루에 물을 조금 넣어 솔로 반죽을 하고 말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야쿠르트나 와인 몇 방울 넣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빠!, 와인을 넣으면 더 좋아진대?”
“글쎄, 크게 나쁠 거 같지 않아서”
“어디서 듣거나 보고 하는 게 아녀?”
“야 자식아, 그런 걸 들어서 아냐, 와인이 신의 물방울이라고 하는데 몸에 좋겠지”
“그런가?”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는 해도 반쯤은 믿는 눈치였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와인이나 야쿠르트를 넣는 게 나쁘지 않다는 신념을 갖고 나는 계속해서 비방을 연구 중에 있다.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여드름 치료에 집중하는 게 궁금했다.

“너 혹시 여자 친구 생겼냐?”
“아니야, 여드름이 계속 나니까 신경이 쓰여서 그래”

나는 여전히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심증을 갖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물증이 없기 때문에 녀석의 말을 믿기로 했다.
여드름 팩을 만들고 발라주는 시간은 불과 5분 남짓 밖에 되지 않아도 내가 녀석의 얼굴을 꼼꼼히 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팩을 만들기 시작하면 녀석은 이마가 보이도록 머리띠를 두르고 소파나 거실 바닥에 눕는다. 붓을 들면 녀석은 어김없이 이런 말을 한다.

“섬세하게 발라야 돼”

물론 내가 그 말을 들을 리는 만무하다. 어떤 때는 야수파의 화풍을 배운 듯 거칠게 붓질을 하고, 어떤 때는 난을 치는 선비처럼 가볍게 터치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녀석은 말한다.

“아빠, 내 얼굴이 무슨 도화지야, 꼼꼼하게 바르라니까”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녀석의 꾸준함을 항상 칭찬한다. 꾸준함은 천재를 이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또한 외모에 관심 갖는 게 자연스러운 나이가 아닌가. 그동안 내가 녀석에게 도움을 준 것은 율무 팩을 비롯해 피부과에서 크림이나 패치를 사다주는 정도였다. 이런 치료를 꾸준하게 한 덕분인지 전보다 여드름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얼굴에 바르고 칠하는 것만으로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녀석에게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한다. 이런 잔소리의 효과가 있었는지 요즘은 과일이나 채소만 들어있는 샐러드를 곧잘 먹는다. 어떤 때는 샐러드를 만들어달라고 먼저 말하기도 한다. 여드름 하나로 시작된 얼굴 가꾸기는 몸에 대한 이해와 음식을 먹는 습관까지, 대화의 내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나는 우리 집 고딩이 여드름 치료 과정을 몸에 대한 이해로 넓혀가기를 바라고 있다. 몸이 우주라고 이해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몸은 생물이자 과학이고 정신이라고 인식하길 기대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몸과 인문학’이라는 저작에서 ‘몸’과 사랑 가족 정치 경제 사회를 관련지어 글을 쓴 걸 보더라도 몸은 거대한 세계다. 여드름이 단순한 여드름이 아니라는 걸 우리의 고딩들이 이해하길, 더불어 얼굴의 표정만이 아니라 몸이 만들어내는 노동의 가치와 슬픔도 함께 깨달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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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사랑 2014-01-10 09:39:30
글이 부드럽고 재미가 있네요..더불어 소박하지만 진리같은 메세지도 고즈넉히 담고 있어서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을 입에 넣은 느낌이랄까요..작가님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호수에 작은돌 하나 던져져 생기기는 물결같이 출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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