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생각한다
공부를 생각한다
  • 정덕재
  • 승인 2014.01.15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우리집 고딩 녀석이 한가로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방학 중에도 보충수업이 진행되는 모양이지만 녀석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짐작컨대 집에서 공부한다며 선생님에게 보충수업을 빼달라고 했을 것이다.

녀석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아침 늦게 일어나는 것은 다반사고 호시탐탐 컴퓨터 게임을 할 궁리를 한다. 그도 아니면 스포츠 채널을 돌려가며 지나간 축구중계를 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없다며 미루던 일기를 자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일기의 주된 소재는 축구다. 예를 들면 대전 시티즌의 시즌 강등을 정리하는 것을 비롯해 리버풀의 스와레즈가 폭발적인 골 행진을 벌이는 것에 감탄하는 내용들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녀석이 시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축구를 하지 못하는 것은 친구들 대부분이 보충수업을 신청해 학교에 다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공부를 많이 하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수업이 끝난 다음에 학원으로 가기도 하지만 우리집 고딩은 만사태평이다. 사실 녀석은 중학교 때 수학학원 서 너 달가량 다닌 게 전부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아직까지 학원 문턱을 넘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공부를 해서 될까 내심 불안하기도 하지만 대학이 행복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 친구인 한 대학교수가 올려놓은 글을 보고 더욱 위안이 되었다.

“대치동 학원가로 자녀를 끌고 가 학업성적을 향상시킨 사례 분석에 따르면, 거기 안 갔어도 잘 했을 학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평생 잘할 수 있는 가능성과 행복하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자존감을 감소시켰다. 더 나쁜 건 공부란 이런 거구나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글이다. 사교육의 폐단이 어제 오늘 나온 건 아니지만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학원은 여전히 무너지지 않는 성처럼 굳건하게 교육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그곳에서 진정한 공부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난해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다큐멘터리가 공중파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각국의 다양한 공부법과 공부를 하는 인간의 욕망 등을 보여주었는데, 사고의 확장을 가져오는 교류와 협력의 공부를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는 지적 호기심의 탐구이자 존재를 고민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종의 길 찾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프랑스의 수도사이자 철학자인 세르티앙주의 저서 ‘공부하는 삶’ 이라는 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1920년 초판이 발간된 이래 지금까지 꾸준하게 읽히고 있다. 그는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 것인지, 어떻게 시간을 규율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공부는 지성인의 소명이고 인류에 봉사하는 길이라며 지성인으로 나아가는 태도를 알려주고 있다.

최근 우리 집 고딩이 빈둥거리다가 지쳤는지 손에 잡은 책이 있는데, 세권으로 완역된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열하일기는 설명하지 않아도 널리 알려진 기행집이지만 새로운 번역이 이어지며 다시 해석되고 있다.
박지원은 조선사절단의 말단으로 참여해 중국의 열하지방을 체험하며 18세기 지성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문체반정의 핵심에 자리하게 된 ‘열하일기’를 통해 탁월한 문장가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우리집 고딩이 열하일기를 통해 새로움에 대한 관심과 박지원이 바라본 세상을 이해하길 기대한다. 중국 변방의 다양한 풍물과 생활양식을 보며 이용후생을 생각한 박지원은 과거를 포기한 인물이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공부’를 싫어하고는 잘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페이스북 친구 대학교수의 지적은 박지원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방학 동안에 열하일기를 읽는 고딩 녀석이 얼마나 페이지를 넘길 지 알 수 없다. 다만 박지원이 바라본 하나하나가 시대의 학문을 만들었고 커다란 개혁을 가져왔다는 역사적 교훈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며 공부의 전범을 생각하면 더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집을 떠난다고 하면 뭐라고 말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