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것을 글로 옮겨라
즐기는 것을 글로 옮겨라
  • 정덕재
  • 승인 2014.01.22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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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고딩녀석이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대전시티즌의 홈경기를 꾸준하게 관람한 것을 비롯해 시험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밤새도록 유럽 축구중계를 보는 게 녀석의 일상생활이다. 축구를 몸으로 좋아하는 녀석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축구에 대한 관심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펠라이니라는 선수를 좋아하는 녀석에게 칼럼니스트 “펠라이니 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녀석이 쓴 칼럼의 일부 옮겨보겠다. 리버풀의 선수 스티븐 제라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스티븐 제라드는 기술적 능력이 뛰어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도 최고다. 한창 전성기였던 시절 첼시나 레알 마드리드 같은 빅 클럽에서 엄청난 금액을 제시했지만 제라드는 ‘내 심장이 리버풀을 원했다’라며 단칼에 제의를 거절해 버렸다. 그러나 요즘 제라드는 기동력과 중원을 장악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몇몇 팬들이 비난을 하고 있다. 제라드가 남긴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쓰러지면 병원으로 데려가지 말아라 날 리버풀 홈구장으로 데려가 달라 그곳이 내가 태어난 곳이니 그곳에서 죽겠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기록적인 면이나 그의 언행을 보고도 우리가 제라드를 고작 몇 경기만 가지고 욕할 수 있을까”

제라드를 향한 녀석의 마음이 드러나는 이 칼럼에 나는 10점 기준에 9점을 주었다. 글에 점수를 매긴다는 게 어이없기는 하지만 녀석이 평가에 익숙한 탓인지 점수를 말해 달라고 했다. 내가 이 칼럼에 9점을 준 것은 제라드라는 선수가 가지고 있는 축구에 대한 의지와 팀에 대한 애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기록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와 팀이라는 조직에 주목했다는 것은 스포츠가 지향하는 목적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칼럼은 더비에 관한 글이다 “축구 경기 중 가장 재미있는 경기가 더비경기다. 선수나 팬들이 무조건 이기고 싶어하기 때문에 경기 템포가 빠르고 선수들도 격하게 플레이를 한다. 대표적인 더비를 몇 개 말하면 설명이 필요없는 ‘엘 클라시코’다. 엘 클라시코는 같은 지역 더비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스페인 프리메라리그에서 양대 산맥으로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더비다. 또 다른 더비는 ‘머지사이드 더비’가 있다. 안필드라는 구장의 원래 주인인 에버튼이 계약과정에서 충돌해 다른 경기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구단이 안필드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팀이 리버풀이다. 그 뒤로 구장의 주인을 두고 자존심 대결을 하는 경기를 머지사이드 더비로 부르게 되었다”

나는 이 칼럼에 6점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더비에 대한 설명 이상의 의미를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비는 흥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경기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경쟁관계를 통한 발전과 시너지를 주목하지 못했다. 녀석은 경쟁이 감동의 드라마를 만든다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마무리를 하기는 했지만 축구의 경쟁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성과 가능성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그것을 즐기는 팬들의 심리적인 상태도 살펴보지 못했다. 스포츠는 선수와 코칭 스탭 그리고 팬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긴장감 있는 서사물이다. 영화나 문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영웅서사가 탄생할 수 있는 장르가 스포츠라는 것이다. 그 영웅은 외부적 장치를 통해 등극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의 과정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이 칼럼에서는 스포츠의 경쟁이 만들어내는 영웅성과 흥행의 삼박자를 함께 함께 바라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집 고딩이 보고 즐기는 스포츠를 글로 옮기는 것에 대해 아낌없는 칭찬을 한다. 스포츠의 가능성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가능성을 비교하는 것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공통분모를 확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능한 것만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것의 가능성은 믿지 않지만 일어난 것은 분명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스포츠가 만들어가는 가능성을 스토리로 엮는 것을 보면서 나는 고딩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다며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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