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가의 ‘고딩아빠 잡설’] 맛의 저편에 무엇이 있을까
[정작가의 ‘고딩아빠 잡설’] 맛의 저편에 무엇이 있을까
  • 정덕재
  • 승인 2014.02.26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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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천 원만 줄 수 있어?”
아침 출근길에 우리집 고딩 녀석이 용돈을 달라고 했다.
“어디에 쓰려고?”
“지난번 대패삼겹살 먹을 때 상범이가 대신 내줬거든”

녀석은 친구들끼리 축구를 한 뒤나 여럿이 어울려 저녁을 먹을 때 간간이 삼겹살집에 가는 모양이다. 친구들과 자주 가는 고깃집은 학교 앞에 있는 이른바 대패삽겹살 식당이다. 가격은 1인분에 4천원이기 때문에 고딩 수준에 적당하다고 한다. 한창 식성이 좋은 때라 그런지 주머니 사정에 따라 2-3인분 먹는 건 예사라고 말했다. 고기를 먹고 난 뒤 밥을 비벼먹으면 적게는 5-6천 원이면 해결된다고 하니까 녀석들의 회식장소로 적당한 편이다.

어른들의 경우에는 호기롭게 지갑을 서로 열려고 하는 행동을 식당 계산대 앞에서 자주 목격하지만 지금의 고딩들에게서 그런 풍경을 찾기는 어렵다. 사실 일반 샐러리맨들도 3만 원 이상의 식대를 혼자 내기에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때로는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밥값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인적으로는 식대를 공동으로 나누어 내는 것이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밥값을 혼자 내고 나면 다음에는 내가 사줘야 된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사 자리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부담을 줄이는 ‘더치페이’가 합리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물론 자리의 성격에 따라 계산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집 고딩이 친구들과 즐겨가는 식당이나 먹을거리는 대부분 육류에 가깝다. 예를 들어 남자 고딩 다섯이 모여 김치찌개를 먹거나 맛있는 청국장 집을 찾아다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녀석이 자주 다니는 곳 중에 하나는 한 마리에 9천 9백 원 한다는 치킨집이다. 네 명이 가면 보통 두 마리는 먹는다고 한다.

물론 그것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한 마리를 먹고 입맛을 다실 때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식탐 많은 친구 녀석이 들려줬다며 중국집에서 음식 먹는 방법을 들려줬다.

“아빠!, 여러 명이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시킬 때 군만두나 탕수육을 함께
주문할 때 가 있잖아”
“그렇지. 그런데 왜?”
“이때 먼저 먹어야 하는 게 뭔지 알아?”
‘글쎄, 그것도 순서가 있냐?“
“탕수육이나 군만두를 먼저 먹은 뒤 짜장면을 먹어야 돼”
“그건 왜?”
“생각해봐, 탕수육은 가운데 있어서 공동으로 먹잖아. 그렇지만 짜장면은 혼자 먹는거니까 탕수육 먼저 먹는 것이 배부르게 먹는 방법이지”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지만 밥을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플 나이에 충분히 나올법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고딩녀석과 친구들은 삼겹살과 치킨,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 그도 아니면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깁밥을 자주 먹는다. 물론 청소년기 또래집단들이 주로 찾는 먹을거리가 비슷비슷 하겠지만 나는 고딩 녀석에게 음식과 사육방식, 음식과 사회의 관계를 생각해보라는 말을 자주한다.

소고기 1kg 생산을 위해서는 7kg의 곡물이 필요하고, 돼지고기 1kg에는 곡물 4kg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료로 투입되는 곡물생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농부들이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더불어 지구 한쪽에서는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보라고 한다.

아직 녀석에게는 고기섭취를 줄이는 일이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음식 하나하나에 땀과 눈물, 착취와 횡포가 스며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되돌려보면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맛의 저편을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인식하는 또 하나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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