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네.” “홍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000 출판사의 아무개입니다. 다름 아니고 선생님께서 구독하시는 □□□□ 월간지가 이번에 발송한 3월호로 만기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재구독을 부탁드리려고요.”
“그러죠, 그럼 지로 용지를 보내주시면 송금하겠습니다.” “매번 고맙습니다!” 이상은 그제의 통화 내용이다. □□□□ 월간지를 구독한 지는 얼추 4년이 넘어가지 싶다.
내용도 좋지만 그보다는 내가 보내는 원고를 ‘가급적이면’ 자주 실어주는 까닭이다. 내가 보낸 글이 기사화되었다고 해서 딱히 원고료를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신에 상품 따위를 받으니 그만 하면 된 것인지라 맘에 든다.
□□□□ 월간지의 편집 담당 기자는 뿐만 아니라 이따금 나에게 전화를 하여 특정 주제에 대한 글의 청탁도 해 오는 터여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정까지 든 터’이다. 아무튼 이밖에도 나는 수십 여 종의 정기간행물을 집에서 우편으로 받아보고 있다.
이중엔 돈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서민스럽게’ 무료 간행물이 더 많음은 물론이다. 이 같이 여전히 많은 종류의 책을 보는 버릇은 벌써 30년도 넘은 나만의 좋은 습관이다. 그럼 왜 이런 패러다임이 고착화 되었을까?
군대를 다녀와 취업을 하였는데 하필이면 영어교재와 회화 테이프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한데 고작 초졸 학력의 무지렁이였는지라 영어라곤 알파벳조차 알 수 없을 때였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린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좌고우면 끝에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초등 동창을 찾아갔다. 그리곤 그 친구의 집을 찾아가 밤마다 영어를 배웠다. 그런 노력이 있었던 덕분에 나는 불과 3년도 안 되어 전국 최연소 영업소장까지 될 수 있었다.
세월이 더 지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하루는 책을 보자니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구절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맞다, 바로 이 거다!’ 돈이 드는 사교육 대신에 주말과 휴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 맘껏 책을 읽게 했고 나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아울러 그 습관이 여태 이어지고 있다. 세월은 더욱 강물처럼 흘러 아이들이 대학에 다닐 무렵 계기가 되어 나도 사이버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계기는 당시 서울대를 다니던 딸이 내게 선물한 책에서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 라고 주장한 걸 실천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동창과 도서관의 책들, 그리고 딸은 나의 어떤 멘토(mentor) 셋에 다름 아니다.
토요일은 오늘도 출근해 근무하지만 내 손엔 역시나 책이 들려져 있다. “독서만큼 값이 싸면서도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르네상스기의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남긴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