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음 달에 결혼한다.” “그래? 그런데 어쩌라고.” 친구의 말에 괜스레 퉁명스레 답했다. 그건 평소 너무나 절친한 죽마고우인 까닭에 그래서 가능한 어떤 애먼 동문서답이었던 것이다.
나의 예상 밖 퉁명스러움에 친구는 저자세 모드로 돌변했다. “그래서 말인데 내 결혼식 때도 네가 사회 좀 봐주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도도한 자세를 견지했다.
“싫어. 사회를 봐 주면 뭐하냐? 당초 약속대로 양복은커녕 넥타이 하나 사 주는 놈조차 없었기에 이젠 안 할란다.” 친구는 더욱 목을 맸다.
“나는 틀려! 나는 분명히 약속한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양복 근사한 걸로 한 벌 빼 줄게.” 나는 그제야 일부러 경직까지 시켰던 미간을 풀며 박장대소했다.
“우하하~ 여태 시치미 뚝 떼고 거짓말하느라 힘들었다. 지금껏 내가 한 말은 다 뻥이었어. 다른 사람도 아니도 내 불알친군데 내가 무슨 양복 욕심을 부리겠니? 아무튼 이번에도 내가 사회를 봐줄 테니 부디 잘 살거라!”
그렇게 나의 죽마고우들은 하나같이 내가 모두 결혼식에서 사회를 봐 주었다. 그건 내가 인물도 준수(?)하거니와 말발도 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를 봐준 대가로는 그저 술이면 족했다.
그렇게 결혼을 한 친구 중 일부는 이혼을 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리곤 혼자서 홀아비로 사는 친구도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자면 부부가 백년해로를 하는 것도 실은 참으로 지난(至難)한 길을 가는 것이란 천착을 하게 된다.
“다음 주 일요일에 아들 친구가 결혼한대, 그래서 이번 주 토요일에 집에 온다고 했어.” 그제 아내가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전해준 내용이다. 아들의 절친한 고교 동창 중 가장 먼저 결혼하는 친구란다.
그 얘길 듣자 금세 내 아들은 과연 언제쯤 결혼할까 싶어 잠시 마음이 어두운 그늘로 접어들었다. ‘나를 닮아’ 어딜 가도 인물이 빠지지 않으며 대학 또한 소위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근무 중인 대기업에선 지난 3월부터 대리로의 승진도 이뤄냈다. 겸손하고 예의바르며 효심 또한 깊어서 아내가 허리 수술 차 입원했을 때는 평일임에도 휴가를 내고 내려와 이틀이나 간병을 하고 갔다.
그렇지만 그런 녀석에게 정작 애인이 없다니...! 한데 아들이 친구 결혼식의 사회를 보노라면 혹시 모를 일이다. 신부의 친구들이 예식장을 찾았다가 멋진 풍모의 아들에게 반해 후일 아들을 홀려서 프러포즈를 할지도(^^)
하여간 나에 이어 아들 또한 친구 결혼식의 사회자로 ‘초빙’되는 걸 보자면 이 또한 어떤 부전자전(父傳子傳)이 아닐까 싶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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