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을 보면 우리나라 한의약의 기원은 단군 신화의 쑥과 마늘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한민족은 본초(本草)에 대한 독자적인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삼국시대에는 한토의학(韓土醫學)과 불교의학의 전통 속에서 한의학의 이론적 기틀이 형성됐고, 통일신라 시대에는 수·당 의학과 인도 의술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동양의학의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받는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 등이 배출돼 한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렇다면 서울의 경동시장, 대구 약령시장과 함께 전국 3대 한의약거리로 유명한 대전 한의약특화거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또한 예전의 한약방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계속 영업을 하고 있을까? 중앙동 한의약거리를 오랜만에 찾아가 보았다.
어렸을 적 어머님께선 여름이나 겨울철이 되면 어린 나의 손을 잡고 집에서 가까운 한의약거리에 들러 한약재를 사곤 했었다. 주방에서 약재를 오랜 시간 달이고 있노라면 방안까지 한약 냄새가 진동했었는데, 쓰디 쓴 한약을 한사발 마신 뒤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물면 그게 그리 좋을 수 없었다.
대전역을 등지고 중앙로를 따라 우측에 자리한 중앙동 한의약특화거리는 6.25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해 현재는 한의원, 한약방, 탕제원 한의약 도소매점 등 약 100여개의 관련 업소가 밀집돼 있는 지역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한약재는 물론, 북한과 중국 등지에서 들어오는 수입 한약재도 적지 않다. 규모는 그리 크진 않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명소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발달한 상권이라서 그런지 많은 노선버스들이 지나고 있고 지하철 개통으로 더욱 접근성이 좋아졌다. 하지만 주차시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흠인 듯.
거리에 발을 들어선 순간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매캐한 매연과 먼지는 사라지고 한약 특유의 은은한 향이 코끝으로 전해져 왔다. 한방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곳이라서 그럴까? 왠지 세월의 관록이 묻어있는 향처럼 느껴진다.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중도한약국이 눈에 띄었고, 골목길 안쪽으로는 한의원과 약방, 탕제원 등이 일정 간격을 두고 촘촘하게 들어서 있는 것도 보였다. 거리를 걸을수록 한약 냄새는 더욱 진해졌고, 한방의 힘이 몸 안에 깃드는 듯 덩달아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제일 먼저 발을 들여 놓은 곳은 녹용당한의원. 입구에서부터 수 십 가지 약제와 오래된 가구들이 진열돼 있어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사장님이 직접 달이셨다는 시원한 오미자차 한잔을 마시니 무더위가 싹 가셨다.
가업을 이어 2대째 이곳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장님께 매출을 물어보니 “여름엔 비수기인데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요즘 오는 사람들은 많이 줄은 편이지만, 과거에는 하루 매상만으로도 시내 외곽에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었다”며 “지금 한약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예전 잘나갔던 생활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 돈이나 장사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손님들에게 약 조제나 시술을 조금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냐고 조심스레 되물었더니 “한의약거리에는 한의약에 관한한 최고의 고수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서 장사한지 30년이 넘었지만 손님들이 약제나 시술을 받고 탈났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의사들의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 했다.
이곳 한의약거리에서 파는 약재들은 다른 곳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 또한 우수하다.
또한 동구청에서 총사업비 50억원을 투입, 2014년까지 인쇄골목과 함께 공공시설물 개선, 전선 지중화 및 보도·차도 환경개선 등 재생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역사와 전통, 문화와 건강이 어우러진 쾌적하고 깨끗한 거리로 탈바꿈하는 것도 기대된다.
전통과 문화, 추억이 깊게 스며있는 이곳 한의약거리에서 여름철 허해진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들려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