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우리가 ‘수첩공주’에 속았던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가 ‘수첩공주’에 속았던 것은 아닐까?
  • 최재근 기자
  • 승인 2014.06.29 1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근 편집국장
그리 멀지 않은 시절에 ‘수첩공주’가 있었다.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빼곡하게 메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화를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워낙 오랫동안 메모를 해왔기에 사람들은 ‘수첩공주’의 수첩이 수 백 권은 달할 것이라고 했다. 만났던 사람들도 다양했던 만큼 별의별 얘기가 다 담겨 있을 거란 얘기도 있다.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처럼 ‘수첩공주’에게 수첩은 세상과 통하는 하나의 소통 창구였다.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언제나 사람들이 한 얘기를 메모하는 ‘수첩공주’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수첩공주’야 말로 자신들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수첩공주’가 여왕이 돼야 한다는 바람이 쌓여갔다. 물론 모든 이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수첩 메모를 통해 누구보다도 소통을 잘하는 만큼 통합과 화합의 리더로써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그 믿음들이 하나 둘 씩 모여 ‘수첩공주’는 마침내 여왕이 됐다. 예상과는 달리 절반이 넘는 이들이 지지를 보냈다. 수첩은 또다시 회자됐다. ‘수첩공주’가 이제 ‘수첩여왕’이 됐으니 ‘나라가 잘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여왕이 되면서 ‘수첩공주’는 조금씩 달라졌다. 남의 말을 듣기 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하는 일이 많아졌다. 자신과 반대되는 길에 섰던 이들의 말은 아예 무시했다.

특히 신하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수첩공주의 모습은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메모를 하면서 남의 얘기를 경청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임명하고자하는 사람이 있으면 흠이 많아도, 국민들의 비난이 들끓어도 모두 무시한 채 쓰려고만 했다. 흡사 ‘독불장군’처럼 비쳐졌다.

이런 태도는 최근 총리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정점으로 치달았다. 총리를 새로 임명하게 된 원인이 수 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기인한 만큼 수많은 이들은 국민들이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화합과 통합의 총리를 원하고 있음에도 ‘수첩공주’는 이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을 개조해야 한다’며 ‘칼’ 깨나 써봤던 검찰 출신 인사를 총리로 임명하려 했다가 흠결이 드러나 자진사퇴의 길을 걷게 하더니 또다시 이상(?)한 역사관과 편향된 이념관을 가진 이를 내세워 자진사퇴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국정 표류사태를 자초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그리고 고뇌(?)에 찬 결단이라는 게 세월호를 무색케하는 도로 정홍원...

이러다보니 요즘 ‘수첩공주’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가 많아졌다. 수첩공주는 왜 메모를 했을 까?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긴 했을까? 수첩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오로지 자기의 생각과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의 말만 적은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등의 의심이다.

‘수첩공주’의 모습이 너무 빨리 변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며 메모를 해왔던 수 십 년간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뀐 탓이다.

아니 어쩌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혹시 우리가 ‘수첩공주’의 이미지 정치에 속았던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꼬리를 무는 시국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