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흐르는 따뜻한 소리
반세기를 흐르는 따뜻한 소리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② 극동오디오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4.08.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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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100년을 한 세기라고 부른다. 세기(世紀)라는 말은 세상의 벼리(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잡아당기게 된 줄)로 세상이라는 거대한 그물을 이루는 한 코 한 코의 실마리이다. 그러나 사람은 한 세기도 살아내기 어렵다.

생물학적인 나이로도 채우기 어렵지만 유년과 노년을 제외하고 세상 안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시기로 한 세기를 채우려면 몇 대의 인간 주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한 가지 일로만 반세기를 넘긴 사람은 그 자체로 충분한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은 체구에 전형적인 마음 좋은 할아버지의 인상을 가진 ‘극동오디오’의 대표 이상목 씨가 바로 이런 사람 중 하나이다. 어떻게 반세기를 이어왔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랬다.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중동 현재자리서 30년
이 대표는 작은 안경 너머로 부드럽게 웃었지만 이런저런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짧았다. 낯선 방문자는 긴 시간에 묻어나는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조금은 수줍은 듯, 삶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을 아꼈다.

올해로 73세를 맞은 이 대표는 20대 초반인 1963년에 처음으로 음향기기 업체를 설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햇수로만 52년째이다. 동면 출신인 이상목 대표는 어린 나이부터 즐겨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또 전자기기이 만드는 조합을 이해하고 이를 만들어내는 일에도 남다른 흥미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음향기기를 다루는 일은 두 가지 재주 모두를 살리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천직이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이면 남들은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사회에 첫발을 디디기고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시절이다. 이 대표는 이때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대전 인동에서 수제 라디오 가게를 차린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극동오디오는 제일은행 뒤 서점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중동 현재의 자리에서만도 30년 가까이 되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일찌감치 발견한 이 씨는 10대의 나이부터 전자기기의 작동원리를 공부했다. 혼자 책을 뒤지면서 원리를 터득하고 또 부족한 지식과 경험은 학원을 다니면서 한 단계씩 쌓아나갔다. 그 결과, 어렵사리 시작한 수제 라디오의 판매는 자리를 잡아갔다. 라디오 한 대만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웃고 울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음향과 관련된 기기를 다루면 다룰수록 자연스레 더 좋은 소리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무슨 일을 하건 시간이 쌓이면 사람은 깊어지기 때문이다. 깊은 소리에 매료된 이 대표는 전문적으로 소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가 유명 오디오업체와 대리점 계약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전문 오디오기기 취급업체로 방향을 잡았을 때는 대전뿐 아니라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음향기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시기였다.

음향기기분야는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이기에 대전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는 일은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나 좋은 소리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일하고 신뢰를 만들어나갔다.

전문 음향기기는 특성상 많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업은 아니다. 소수의 마니아들이 주 고객인데다가 조금씩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이 분야의 고객들은 전문적으로 음악을 즐기고 경제적으로도 충분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보통이다. 사람의 귀 또한 소리에 예민해지기 시작하면 그 욕망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얘기는 주변에서 그리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극동오디오’를 찾는 고객들 중에는 이런 하이엔드 마니아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들만을 고객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좋은 소리로 음악을 즐기고 나누는 일은 반드시 고가의 장비들만으로 만족되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동오디오’의 전문 분야를 이 대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산과 취향에 맞는 기기들을 찾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것이죠.”
주어진 여건에서 소리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따지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LP플레이어나 CD플레이어, 또는 라디오의 튜너와 같이 소리를 만들어내는 장치가 그 출발이다.

그리고 그 소리를 다듬고 양을 조절하면서 효과적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앰프, 마지막으로 공기를 흔들어 소리를 구현하는 스피커뿐 아니라 이들을 연결하는 케이블, 장식장의 재질, 기기들의 배치, 방의 구조 등 수많은 요소들의 구성에 따라 소리는 확연히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극동오디오의 전문분야는 고객의 예산과 취향에 맞춰 가장 좋은 소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가격도 그렇지만 신뢰가 중요”
“가격도 그렇지만 신뢰가 중요하죠. 그리고 모든 부분에서 우리 집을 찾는 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서로 믿고 끝까지 잘 관리하는 거죠. 이거 말고 뭐 딱히 비결이 있겠어요?”
50년이 넘게 흔들리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노하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한마디로 신뢰 이외의
답은 없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극동오디오를 찾아오던 길의 풍경이 떠올랐다.

현재 대전의 원도심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또 새로운 개발의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극동오디오가 위치한 대전천 주변 목척교와 선화교 사이에서 만나는 풍경은 현재 원도심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전천 주변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운동과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고 목척교 또한 화려한 외관으로 다시 탄생했다. 대전천 건너 중앙로 방면도 주말을 맞아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극동오디오가 있는 주변은 분위기가 판이했다.

대부분의 건물은 세입자를 찾지 못해 비어있었고 그마저도 관리자가 없는 듯 유리창은 깨지고 쓰레기는 제때 수거되지 않아 살짝 음산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이런 원인은 상권이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하였고 전체적으로 부진한 경기에서 찾을 수도 있다. 어쨌든 많은 상인들이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고 원도심을 떠나는 상황에서 극동오디오가 꾸준히 50년을 이어온 공덕을 모두 고객들에게 이 대표는 말을 이었다.

“고객들요? 말할 수 없이 고맙죠. 지금 우리를 있게 한 건 모두 고객들 힘입니다. 우리 가게에 드나들면서 구경도 하고 조금씩 자신의 오디오를 만들어나가던 여드름 난 고등학생이 지금은 60이 넘은 초로의 할아버지가 되었어요.”

이 단적인 예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50년에 걸친 극동오디오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고객과 연결된 끈이 얼마나 질기고 끈끈한지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 같은 서민에서 신부님, 의사, 변호사, 정치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고객이지요.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다보니까 지금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옵니다. 대전 살던 분들이 이사를 가기도 하고 또 소문 듣고 연락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지금 극동오디오는 큰아들인 이석진 씨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석진 씨 또한 음악을 좋아하고 오디오와 함께 자랐기 때문에 2대가 함께 즐겁게 일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우리가 매칭한 기기에서 만드는 소리를 듣고 고객들이 좋아할 때가 제일 보람 있지요.”
이석진 씨 또한 극동오디오의 식구로 부친인 이 대표의 생각과 닮은꼴이었다.

“다시 따뜻하면서도 푸근한 소리 찾아”
“음악에도 유행이 있듯이 오디오에도 흐름이 있습니다. 다시 따듯하면서 푸근한 소리를 찾아요. 그래서 트랜지스터 앰프에서 진공관 앰프로 돌아가고 있어요.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거죠. 요즘 LP가 다시 뜨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유행을 타지 않는 것도 있다. 극동오디오가 고객들과 가진 깊고 넓은 인연이 그렇다.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가 바탕이 되어 이룬 인간적인 인연이지만 그 뒤에는 또 하나의 배경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음악이 가진 매력입니다.”

이 대표는 음악을 가리지 않는다. 가요에서 국악, 클래식까지 모든 음악을 좋아한다. 그리고 특별히 음반을 모으지도 않는다는 점도 특이했다.
“집에는 그냥 라디오만 한 대 있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모든 음악을 틀어주는 곳이 라디오이잖아요?” 

음악의 매력은 한 사람이 일평생을 바치고도 그 끝을 알 수 없다고 말을 이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그리고 듣는 사람 모두에게 음악은 그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음악을 전달해주는 오디오의 매력도 극동오디오와 함께 오래오래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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