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숨] 너의 빈자리에 앉아서
[세상의 숨] 너의 빈자리에 앉아서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기획 - 세상의 숨 ⑨ 2018. 9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09.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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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세월호 가족을 떠올린다. 추석은 만남의 시간이다. 쌓여있는 정을 푸는 시간이다.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 커다랗게 남아있는 빈자리를 가상의 꽁트로 엮어 희생자를 기억한다.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기자] 창밖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다. 영롱하게 들려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소리가 투명하게 굴러 들어왔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었다. 계절을 소리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예전에는 반팔 옷을 긴 옷으로 대신하면서 환절기를 느꼈는데, 여기에서는 귀뚜라미가 말 그대로 가을의 전령사였다. 이사를 온 이후 처음 맞는 가을이다. 그가 오래된 연립주택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건 지난해 겨울, 건축한 지 삼십년 된 주택이다 보니 수리할 일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단열에 문제가 있어 이사를 결정했다. 언젠가부터 추위를 느끼는 날들이 많아져 따뜻한 집이 필요했다. 체질이 변했다고 느낀 건 2014년 여름, 푹푹 찌는 더위에도 한기를 느끼는 날들이 잦았다.

이사 결심을 한 후 동네 인근의 아파트를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산을 옆에 낀 아파트 단지를 발견했다. 동네 아파트인데도 불구하고 낯선 인상을 받았다. 부동산 중개사 사무실에 들어가 매매 상황을 물어보다가 숲이 가까운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파트 베란다에 자주 나간다. 이사를 온 후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베란다에 의자를 놓고 창밖의 숲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잎새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거센 바람이 불면 슬픈 울음을 우는 숲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순백의 겨울에는 하염없이 창밖을 보면서 깨끗한 도화지를 연상하며 그림을 지웠다 그렸다를 반복했다. 숲은 그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로 자리를 잡았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다양한 풀벌레 소리를 자주 들었다. 밤바람이 서늘해도 벌레 소리를 들으려고 늦게까지 창문을 닫지 않았다. 그는 별을 쳐다보다가 베란다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 두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의자는 항상 두 개다. 가끔은 아내가 앉아 있기는 하지만 아이를 위해 마련한 의자다.

거실 시계는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곧 있으면 엘리베이터 도착을 알리는 음이 울리고 옆집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야간 자습을 끝내고 오는 고 3수험생 때문에 문이 열리는 시간은 거의 정확하다.

옆집 아이의 귀가시간이 되면 그의 아내는 주방에 나온다. 그녀가 주방에 나와 냉장고 문을 여는 횟수가 많아지면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됐다는 뜻이다. 오늘은 낮에 사온 크림빵과 잘 먹지는 않지만 다양한 과일 습관을 가지라는 뜻에서 멜론을 담았다. 아내는 아이의 방에 들어갈 때 전등을 켜지 않는다. 익숙한 동작으로 책상위에 접시를 올려놓은 뒤 대략 십초 가량 서 있다가 방을 나온다. 아내는 아침에 비워있을 접시를 생각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거실 소파에서 아내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봤다.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간 다음 천천히 일어나 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상큼한 멜론 냄새가 문밖으로 풍겨왔다.

 “음, 향기가 참 좋네”

 “근데 녀석은 이런 향기를 왜 싫어하지”

언젠가 아이는 오이냄새가 나서 먹기 싫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맛을 느끼는 감각을 뭐라 탓할 수는 없는 법, 아이가 과일을 유난히 좋아 하지만 유독 멜론만은 멀리했다.

방문을 닫고 나온 그는 다시 베란다에 나갔다. 바람에 쓸리는 달빛이 포근했다. 그는 달을 보며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달빛 내려앉으면

늦게 내린 이슬에

물이 들겠지

달빛 내려앉으면

잎새를 비비는 바람결도

물이 들겠지

달빛 물드는 밤

빈 의자에 달빛 내려앉으면

쌓여있는 그리움에

지워지지 않는 물이 들겠지

다음날 아침, 출근준비를 서두르는 그가 달력을 바라보았다. 추석 나흘 전이다. 오늘쯤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 선물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집에서 명절음식을 하지 않은 지 여러해 됐지만 혹시라도 찾아올 손님 생각에 술 한 잔 기울일 안주 정도는 마련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는데 아이의 방안에서 아내가 나왔다. 간밤에 담은 간식접시는 비어 있었다. 그날도 아이는 오지 않았지만 매번 준비한 간식은 말끔하게 비워있다. 아내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얼마 전 진도 팽목항에 설치되어 있던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철거됐다는 뉴스가 나오던 날, 그녀는 간식 접시를 들고 한참 동안 아이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베란다에 서 있던 그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날 밤에도 그는 아이의 방에 들어가 간식을 먹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아무리 술에 취해도, 설령 큰 배탈이 났다고 해도, 그는 매일밤 아내가 마련한 아이의 간식을 깔끔하게 비웠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내는 아이의 책상 위에 간식을 올려놓는 걸 잊지 않았다. 아내가 안방에 들어가면 잠시 후 남편은 아이의 간식을 먹었다. 아내는 빈 접시를 볼 때 딱 한번 웃는다. 언제까지 한밤의 간식을 준비할지는 알 수 없는 일, 여전히 그의 가족은 셋 이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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