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기자의 눈] 그즈음의 크레파스
    [시민기자의 눈] 그즈음의 크레파스
    • 굿모닝충청
    • 승인 2018.09.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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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시민기자
    홍경석 시민기자

    [굿모닝충청 홍경석 시민기자] 고향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가 곧 열린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졸업한 지가 47년이나 된 모교이건만 언제 가도 늘 그렇게 살갑고 반가운 노스탤지어의 정점이다. 올해도 반드시 참석할 예정인데 총동문체육대회의 압권은 역시나 기수 별 릴레이 이어달리기다.

    상품까지 푸짐한 일등을 노리고 달리다가 부딪쳐 넘어지는 모습에 박장대소하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요즘엔 예식장에 가도 신랑신부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드물다. 예식을 구경하기는커녕 축의금만 내곤 곧장 밥이나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과거엔 안 그랬다.

    “세월이 가도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얼른 이리 나와서 함께 사진 찍자고.”

    “......!”

    지금이야 물론 각자 지참한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의 성능이 탁월하기에 시류도 그리 변한 것이리라.

    누구나 습관과 취미가 있을 것이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이런 습관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시작됐다. 세월이 아무리 흐른다손 쳐도 사진은 당시를 구속하는 도구라는 걸 예언(?)한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툭하면 일상을 사진에 담곤 했다. 그중의 하나가 딸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에 찍은 사진이다. 지금 같은 가을에 운동회가 열렸는데 날씨도 좋아서 많은 학부모들이 참석했다.

    이런저런 행사 뒤에 달리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출발선에 선 딸은 이를 악물었다. 녀석의 진지한 모습은 반드시 1등을 하겠다는 결심이 요지부동으로 보였다.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났지만 그 모습이 어찌나 비장했던지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이윽고 “땅~!”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결승점을 향해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엄마 아빠들의 자기 자녀 응원전이 더 치열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냐 하면 주변을 날던 새들조차 깜짝 놀라 저만치로 달아날 정도였다.

    딸은 처음엔 제법 선두그룹에서 달렸다. 그런데 중간을 지나면서는 그만 힘에 부쳤는지 마치 용두사미인 양 꼴찌그룹으로 뒤처지는 게 아닌가. 동행한 아내가 고함을 질렀다. “우리 딸, 조금만 더 힘내!!”

    하지만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랬다고 나를 닮아서 운동신경이 박약(薄弱)한 딸이 1등을 한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이변일 수밖에 없었다. 딸은 결국 꼴등으로 들어섰다. 딸은 졌다는 아쉬움에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순간 딸은 눈부셨고 나는 눈물겨웠다. 여북했으면 울기까지 할까 싶어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론 또 어찌나 우스웠는지 모른다. 딸을 가슴에 껴안고 다독거렸다.

    “우리 딸, 오늘 정말 잘 했어! 비록 달리기에선 1등을 못 했지만 공부만큼은 항상 일등이잖아!” 그제야 빙그레 웃는 딸이었다. 그랬다. 딸은 유치원 당시부터 공부벌레였다.

    승부욕까지 강해서 늘 손에서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기야 그랬기에 후일엔 명문대까지 장학생으로 질주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나태주 시인은 <9월이>라는 시에서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대추는 대추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너는 내 가슴 속에 들어와 익는다.”고 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도 딸은 여전히 내 가슴 속에 들어와 익는 사랑의 집결(集結)이다. 내년이면 딸도 엄마가 된다. 딸이 낳을 손녀를 격대교육(隔代敎育=조부모가 손자녀를 교육하고 양육하는 것)으로 내가 키워줄 순 없다.

    그럼에도 걱정이 없는 것은 승부사다운 딸이고 보니 제 딸을 어찌 허투루 키우겠냐는 안도감의 믿음 때문이다. 손녀는 또 얼마나 예쁠까 싶어 아내 역시 벌써부터 안달복달이다. 딸의 지난 시절 사진에서 나는 그즈음의 고운 크레파스를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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