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갈등과 대립 없는 절대 자유의 삶 고민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갈등과 대립 없는 절대 자유의 삶 고민
(25) 장자 ‘장자’ ① 서문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10.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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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굿모닝충청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장자(莊子)’는 장자라는 사상가 이름에서 유래한 책입니다. 길고도 방대합니다. 6만 5천여 자나 됩니다. 행간이 넓은 텍스트입니다. 그만큼 ‘장자(莊子)’의 사유세계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장자(莊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신영복(1941~2016) 선생은 탈정(脫井)으로 삼고 성찰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선 우물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과 당대 사회에 갇혀서 자기의 기준으로, 사회통념으로 다른 사물들을 판단합니다. 장자 생존 당시 사회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지배 권력 이념에 포섭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갇혀있는 수많은 우물들을 의식하고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선입견, 기성관념, 지배담론과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장자는 송나라 사람입니다. 송나라는 주(周) 나라에게 망한 은(殷) 나라 유민들의 나라입니다. 어쩌면 지배 권력 반대편의 정서가 집대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자(莊子)’는 한때 좌절과 자학의 철학으로 읽었습니다. 조선시대에서 태워야 할 책이었습니다.

‘장자(莊子)’는 기원후 4세기 서진(西晉) 시대 곽상(郭象)이 편집한 33편으로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내편만 장자의 직접 저술이고, 외편과 잡편은 후학들이 가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편은 생각할 게 많은 글들입니다. 소요유(逍遙遊), 제물론(齊物論), 양생주(養生主), 인간세(人間世), 덕충부(德充符), 대종사(大宗師), 응제왕(應帝王) 등 7편입니다.

‘장자(莊子)’를 펼치면 제일 먼저 소요유(逍遙遊)와 마주합니다.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 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우리는 대붕(大鵬)이 되는 상상을 합니다. 붕(棚)이 회오리 바람 타고 구름 위로 올라 파란 하늘을 등지고 남쪽 바다로 향합니다. 메추라기가 이를 보고 비웃으며 말합니다. 자기들은 기껏해야 몇 길을 못 올라가 내려오는데 저 큰 새는 저렇게 날아서 어디를 간단 말이냐. 매미와 새끼 비둘기가 붕이 어리석다고 흉을 봅니다.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나르는 붕의 마음을 그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는 붕새처럼 변해 절대 자유를 누려야 하고 매미나 새끼 비둘기처럼 어리석고 시야가 좁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자(莊子)’의 궁극적 이상은 자연과 하나 되는 무한한 경지에 노니는 절대 자유의 세계입니다. 이 진정한 자유인은 자기에 집착하지 않고(至人無己), 결과에 초연하고(神人無功), 이름에 연연하지 않은 사람(聖人無名)입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험난한 시대를 사는 한 개인이 다양한 사회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갈등과 대립 없이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것 같습니다.

성군 요임금은 당대의 은자(隱者) 허유에게 임금을 권합니다. 허유는 왕께서 다스려 이미 세상이 좋아졌는데 제가 왕이 되는 것은 오직 이름을 위한 것이라고 하며 거절합니다. 뱁새는 깊은 숲속에서 둥지를 트는데 필요한 가지 하나만 있으면 그만이고, 두더지는 황하에서도 물을 마시지만 자기 배를 채울 물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생활에 필요한 최소의 조건에 만족하고 살아가겠다는 뜻입니다. 알렉산더와 그리스의 철인(哲人) 디오게네스가 연상됩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무엇인가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려고 하고, 공적을 보다 많이 이룩하려고 하고, 이름을 높이려하기 때문입니다.

장자
장자

 

제2편 제물론(齊物論)입니다. ‘장자’ 중에서 가장 어렵다는 부분입니다. 주제는 판단의 문제입니다. 논의 초점은 제(齊)에 있습니다. ‘하나로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시비와 진위를 상대적으로 보고 더 높은 차원에서 사물의 진상을 하나의 세계로 볼 수 있는 예지와 직관, 통찰력을 체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이분법적인 ‘갇힌 앎’에서 나와야 합니다. 나만이 옳다는 아집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넉넉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물의 가치는 보는 관점에서 다를 뿐 결국은 그 가치가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제물론에는 가장 잘 알려진 ‘나비 꿈’ 일화가 있습니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꿈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느 날 장주(莊周)가 나비가 되는 꿈을 꿉니다. 노는 통에 당신 자신이 장주임을 모릅니다. 깨여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습니다.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인지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비와 장자가 서로 실재 침투하고 상호 합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만리 장공에서 날고 있는 붕새의 눈으로 보면 장주와 나비는 하나입니다. 장자가 보는 세계는 모든 사물이 이것과 저것으로 독립한 개물이 아니라 서로 서로 얽힌 ‘꿈과 같은 세계’입니다. 이는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타자와 만남을 긍정하고 타자와의 소통을 위하여 주체자신의 변경을 긍정합니다.

제물론 첫 문장에 스승 남곽자기(南郭子綦)가 ‘나를 잃었다(吾喪我)’는 글이 나옵니다. ‘장자(莊子)’의 핵심 개념입니다. 스승  남곽자기와 제자 안성자유(顔成子游)의 대화내용입니다. 말이나 소리는 원래 있는 것이 아니고 대지의 숨결이 구멍을 만나 소리를 내게 되고, 사람의 숨결이 구멍을 만나 말이 되고 소리가 된다고 합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 우리의 판단, 이런 것들은 잠시 바람구멍을 만나 소리를 내는 것뿐입니다. 안성자유는 하늘의 퉁소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자가 가르치는 대로 이론에 따라 지적으로 추구하는 한, 퉁소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잃어버린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이기려고 따져 물었던 작은 앎에서 자신을 비운 사람만이 비로소 마음이 열려 들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귀로만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잃어버리지 못하는 일반 속인들이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걱정하고 뉘우치고 변덕을 부리고 고집하는 것은 일종의 모두 인간 퉁소에서 나오는 갖가지 소리입니다. 이것이 실존적인 ‘나’입니다. 분별심의 한계를 깨달아 사물의 한 면만 보지 말고 하늘에 비추어 보고 도(道)의 중심에서 보기를 권합니다. 하늘높이 오른 대붕(大鵬)은 다른 시각과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반듯이 옳은 것만이 아닐 수 있다는 열린 태도입니다. 내가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에 집착해서 본래 같다는 것을 모릅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 고사입니다. 원숭이 기르는 사람이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화를 냅니다. 그러자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기뻐합니다. 내용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원숭이들이 나름 옳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성인(聖人)은 자연의 고름(天鈞)에  맡깁니다. 이때가 가장 편합니다. 타자를 인식하고 ‘양쪽에 다 간다.’하여 이것을 양행(兩行)이라 합니다. 어쩌면 타자와의 소통 공간입니다. 옳고 그름을 논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까.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판단을 맡기면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하여 어찌 바른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송나라 사람이 모자를 팔러 월나라로 갔지만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그런 모자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언제나 보편적인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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