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사라진 마을 되살린 한 詩人의 ‘터무니 있다’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사라진 마을 되살린 한 詩人의 ‘터무니 있다’
화해와 평화의 땅 제주도 ④ 머체왓소롱콧길
  • 김형규 자전거 여행가
  • 승인 2018.10.07 11: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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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궷물오름에서 단체사진.
제주시 애월읍 궷물오름에서 단체사진.
서귀포 한남리 머체왓전망대를 내려가는 자전거.
서귀포 한남리 머체왓전망대를 내려가는 자전거.
머체왓에서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로 내려가는 초원지대.
머체왓에서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로 내려가는 초원지대.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머체왓숲길과 소롱콧길이 연결된 머체왓소롱콧길은 자전거 라이딩의 새로운 탐구영역이다.

이곳은 정글을 개척해나가는 듯하다가 야생마처럼 초원을 질주하고 어느덧 산소가 충만한 편백나무숲길에서 신선한 호흡을 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일대에 위치한 머체왓숲은 2012년 친환경생활공간 사업으로 조성됐다. 이국적인 숲에서 명상·사색하며 힐링할 수 있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머체왓’은 머체(돌)로 이뤄진 왓(밭)이라는 뜻이다. 머체오름은 머체로 된 오름 또는 말(馬)의 모양에서 유래됐다. ‘소롱콧’은 한남리 서중천에 편백나무, 삼나무, 소나무가 우거진 숲이다.

머체왓소롱콧길은 한라산 둘레길의 하나인 수악길과 연결돼 있다. 돈내코탐방로에서 사려니오름 입구까지 17㎞구간이 수악길이다. 쭉쭉 뻗은 나무숲이 인상적인 수악길을 지나면 머체왓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여기서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까지 내려가려면 허벅지까지 자란 풀이 바다처럼 넘실대는 초원을 가르며 달려야 한다. 반바지를 입으면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풀밭이다. 완만한 평지에선 푸르른 초지가 물결치고 좀 더 깊은 산중에 들어가면 미로와 같은 정글과 맞서야하는 변화무쌍한 제주의 수목을 만끽할 수 있다.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로 내려가니 손바닥 정원에 자라는 소나무의 어린 가지에 송화(松花)가 여리게 비집고 나왔다.

머체왓에서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로 내려가는 초원지대.
머체왓에서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로 내려가는 초원지대.
머체왓에서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로 내려가는 초원지대.
머체왓에서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로 내려가는 초원지대.

 

힐링 라이딩을 했다는 즐거움에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를 둘러보는데 주차장 입구 한켠에 세워진 시비(詩碑)가 눈에 들어왔다. 생뚱맞게 이런 곳에 시비라니. 타계한 어느 탐미주의자의 타령조 시비려니 생각하고 조형물 앞뒤에 새겨진 글을 해독하는데 아,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힐링이 테마인 머체왓은 아이러니하게도 70년 전 숲을 생활터전으로 삼았던 이들의 한(恨)이 서려있었다.

‘홀연히/일생일획/긋고 간 별똥별처럼/한라산 머체골에/그런 올레 있었네/예순 해 비바람에도 식지 않은 터무니 있네// (생략)/ <4.3땅> 중산간 마을/삐라처럼 피는 찔레//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할아버지‧할머니 꽁꽁 숨은 무덤 몇 채(생략)’

오승철 시인의 시(詩) ‘터무니 있다’다. 제주 출신의 오 시인은 머체골에서 목축업을 하며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이 4.3사건 이후 사라졌다는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詩작업을 했다. 오 시인은 이 시로 2014년 오늘의 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비의 주인공은 시인이 아니라 초토화작전으로 잿더미가 된 ‘머체골’인 것이다.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에 있는 ‘머체왓숲길/소롱콧길’ 안내도.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에 있는 ‘머체왓숲길/소롱콧길’ 안내도.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 주차장입구에 건립된 오승철 시인의 ‘터무니 있다’ 시비.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 주차장입구에 건립된 오승철 시인의 ‘터무니 있다’ 시비.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 주차장입구에 건립된 오승철 시인의 ‘터무니 있다’ 시비.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 주차장입구에 건립된 오승철 시인의 ‘터무니 있다’ 시비.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 주차장입구에 건립된 오승철 시인의 ‘터무니 있다’ 시비.
머체왓숲길방문자센터 주차장입구에 건립된 오승철 시인의 ‘터무니 있다’ 시비.

 

‘터무니’라는 어원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서는 ‘터를 잡은 자취’, 즉 ‘집이 있던 흔적’으로 이해하면 된다. ‘터무니없다’는 정당한 근거나 이유가 없는 말을 할 때 사용하는 관용구다. ‘터무니’ 뒤에는 ‘없다’가 당연히 따라붙기 때문에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쓴다.

오 시인은 관용구를 과감히 거부했다. 머체골 만큼은 ‘터무니 있어야’ 했다. ‘터무니 있다’로 인해 ‘머체골’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4.3사건 와중에 머체골처럼 중산간 지대에서 사라진 마을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지난 이틀간 4.3 흔적을 목격한 것이라고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니 소득이 없다. 작전상 후퇴했다가 다시 입도(入島)해야 할 것 같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형규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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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2018-10-15 19:48:07
제주 오름에서 라이딩을 하다니 ! Unbelievable. !!!
어릴적 그림책에나 나올법한 내용이네요,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길도 없는 초록 벌판을 가로 지르는 느낌이란. ^^

진교영 2018-10-07 11:45:46
터무니 있어야 ~

제주 4.3사건에대하여 국가적으로 완벽하면서 합당한 모든조치가 이루어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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