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훈의 도시마케팅] 도시 콘셉트·디자인, 도시 역사에서 시작한다
    [강대훈의 도시마케팅] 도시 콘셉트·디자인, 도시 역사에서 시작한다
    (30) 도시마케팅의 핵심, 둔산의 역사
    • 강대훈
    • 승인 2018.10.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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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 충청 강대훈 (사)한국공공정책평가협회/대전세종시협공동회장]

    대전 서구 둔산 진단 2

    둔산은 브랜드다

    2009년 5월 1일, 대전시 역사에 의미심장한 일이 일어났다. 주민에 의해 서구 삼천동이 둔산 3동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삼천동 주민들은 10여 년 이상 자신의 지역 이름을 ‘둔산동’으로 변경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같은 둔산지구에 있으면서도 동 이름이 촌스럽고 인지도가 낮아 폭 20m 도 안되는 길 건너 둔산동과 아파트 값 차이가 크다는 것이었다.  동 명 변경은 주민설명회를 시작으로 의견조사를 거쳐 주민 7307가구의 97.7%가 찬성, 행정안전부가 승인함으로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둔산은 하나의 브랜드이며 대전을 대표하는 도심이지만 과연 서울의 강남, 명동 같은 강하고 지속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도시는 도심이 강하고 핵심 지역 (hot spot)이  있어야 젊은 인재를 끌어들인다. 젊은이들은 창의로운 도시의 원천이다.

    1) 둔산의 역사를 복원하자.

    서구 둔산 지구에는 보라, 가람, 청솔, 국화, 한 마루, 클로버, 목련, 수정타운, 해님, 은초롱, 꿈나무, 둥지, 녹원, 은하수, 향촌, 파랑새, 샘머리 아파트 등이 있다. 5만 호가 넘는 이 아파트들에는 약 19만 명의 시민들이 살고 있는데 각기 영진, 동산, 코오롱. 계룡, 한신공영, 삼성물산, GS건설, 삼호, 경남기업, 태영, 금호산업, SK, 현대 건설들이 지은 것이다. 둔산 지구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살고 콘크리트 길을 따라 학교를 다니며 엄마를 따라 활인 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으로 청소년기를 보낸다. 둔산 개발로 가장 많은 수혜를 얻은 부문이 건설사들이고 이들이 지은 아파트 이름으로 주민들이 살고 있으니 도시의 주인은 건설사인 셈이다.

     

    2) 둔산 개발은  ‘93엑스포 개최 환경 조성’으로 만들어졌다

    대전엑스포는 개발도상국에서 두 번째로 열린 세계박람회 기구 공인 엑스포이며 조선이 1893 시카고 엑스포에 참가한지 100년 만에 한국이 주최국이 된 엑스포이다. “새로운 도약으로의 길”이라는 주제로 세계 108개국과 33개 국제기구, 국내 200여 개 기업이 참가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총  1조 8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93일 동안 한국 인구의 3분의 1인 1450만 명이 관람했다.

    조직 위원장으로는 체신부 차관과 장관으로써 4메가 디램반도체와 전자교환기(TDX) 개발을 이끌며 정보통신산업 발전을 지휘한 오명 전 과학부총리(1989~1994)이었다. 오 전 부총리는 이공계 출신 첫 부총리로 보수 정부에서 진보 정부까지 네 번의 정권을 거쳤다. 오 장관은 다빈치 형 테크노크라트였는데 무려 5년 동안 ‘93 대전엑스포 조직 위원회'를 이끌었다. 탁월한 식견과 정치력을 가진 총 감독을 만난 엑스포는 성공했고 대전은 도시 개발에 큰 덕을 입었다. 홍선기 대전시장은 수도권 밑으로 내려온 최초의 조 단위 메머드급 국제 행사를 준비하는 지방 준비단장이었다. 이때 대전시의 ‘명예 관광통역안내원’으로 개막 이년 전부터 자원봉사를 했고 염홍철 시장이 참석한 개막식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93일 동안의 엑스포 운영과 폐막을 함께 했는데 대전시는 사상 초유의 초대박이 터졌다.

    어느 날에는 하루에 20만 명씩 관람객이 몰렸으며 방송 3사에서 전야제와 개폐막을 생중계했고 그 밖의 지상파 뉴스에서도 꾸준하게 소식을 다루었다. 한국인이 ‘이벤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계기였으며 준비 기간부터 운영 기간까지 이 년 넘게 반복 사용한 공식 캐릭터 꿈돌이와 그룹 코리아나의 주제가 ‘그날은’ 대전을 세계로 알리고 대전이 국토의 중심 도시임을 전국에 인지시켰다. 행사 진행을 돕는  '도우미'는 단어가 처음 사용됐다. 무엇보다 93 엑스포는 대전 시민의 의식구조와 라이프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민들은 대전을 전국적 단위로 생각하게 되었고 세계적인 이벤트를 주최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중앙 부처와 업무 공유를 하게 된 시청 공무원들의 역량에 변화가 있게 된 계기였다. 

    둔산 신도시는 엑스포를 계기로 생긴 것이다. 서구의 도심 유적으로는 둔산 선사유적지와 남선 공원 위에 망이 망소 기념탑이 있지만 현대사를 상징하는 것은 당연 ‘93 대전 엑스포’이다. 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 이상 지구촌이 인지하는 브랜드이다. 엑스포는 스포츠 이벤트와는 달리 산업을 조명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러나 둔산 신도시 개발로 중구의 오류, 문화, 선화, 대흥동등 원도심은 몰락했으며 대부분의 지역 예산이 둔산 지구로 들어가서 동구, 대덕구의 피해는 극심해졌다. 이런 희생을 치르고 만든 둔산은 평화와 번영, 도약이라는 엑스포 정신을 담아야 했는데 그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도시 배경을 찾을 수 없다.

     

    3) 기념관은 도심에 있어야 한다.

    엑스포 과학 공원 안에 대전엑스포 기념관이 있다. 1851년 런던박람회부터 2012년 여수엑스포까지 약 160여 년 동안의 엑스포 기념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재미와 교육 가치가 높다. 백성현 교수가  수집했고 기증한 것이다. 그러나 그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망이, 망소의 민중 봉기가 일어난  명학소 발원이 둔산 탄방동이 맞는다면 그 기념물은 시내로 내려와야 한다. 

    뉴욕 메디슨가에 뉴욕시 박물관(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이 있다. 크지 않은 규모인데 뉴욕의 역사를 시대별, 테마별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아는 도시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상하이, 홍콩.... 도시가 생겨난 유래를 알 수 있는 기념관이나 박물관 들은 시내에 있고 거리에 있다.  기념관은  대부분 공원에 두는 것이 아니라 도심이 둔다.  그래야 오고 가는 사람이 볼 수 있다.

    신도시 이전이었던 둔산에는 연습 비행가가 뜨는 공군기교단, 육군 3관 구 사령부와 경성 큰 마을 자리의 육군통신학교가 있었다. 그곳에서 근무하고 전역한 아저씨들과 가족들, 그들을 면회한 사람들이 약 25만 명 이상(필자 추정)될 것이다. 부산에 사시는 내 장인은 아직도 그 시절 탄방동 통신 학교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대전시에는 문화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도, 위원회도, 예산도 있지만 도시 마케팅의 중요한 자원, 스토리텔링의 기반인 도시 역사가 소멸되고 있다.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큰 규모일 필요는 없다. 세계 유명 도시들에는 집 하나를 매입하거나 세내어 꾸미는 작은 기념관들이 수없이 많다.  망이 망소, 엑스포와 둔산 신도시, 촛불 집회 ....작은 규모라도 역사성을 기념할 수 있는 기념관은 도로변에 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이들도 시민들도 관광객도 도시 주인이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와 대형 활인 마트가 아닌 시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도시 디자인의 실종, 단조로운 둔산

    여행자 541명 대전 시민 828명이 참여한 컨슈머인싸이트의 빅테이터는 서구를 평범함으로 보았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지루함이다. 서구 둔산은 편리하다. 그러나  도시 마케팅 관점에서는 단조롭고 지루하다.

    대전에는 한국 디자인진흥원에 등록한 디자인 전문 회사가 50여 개 회사가 있다. 디자인을 수행하는 회사 500여 개 회사로써 한국의 이웃 도시보다 다자인 기업이 많다. 현재 면허를 걸고 활동하는 건축사도 350여 명 이상이지만 풍부한 자원에 비해 도시 외관은 현실은 초라하다.

    대전을 찾은 한 일본인이 둔산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한 마디 했다.

    “아 이곳은 단지군요” 공업 단지 같은 주택단지라는 뜻이다.

    둔산은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사람을 수용했던 아파트, 르코르뷔지에 기념관을 지어야 할 정도이다. 르코르뷔지에는 현대 디자인의 선구자로써 밀집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노력하였는데 그 발명품이 아파트이다. 감옥이 확장된 형태나 아파트 구조나 본질은 다를 바 없는데 공급 과잉과 저출산 시대로 접어든 우리는 이제 그만 이 스위스 태생의건축가 지어낸 도식을 벗어나야 한다.

    강대훈해외한인경제인협동조합 이사장 /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 화동인터내셔널 대표이사  / 26년 동안 수출과 투자유치 활동 / 세계 100개 도시 전략 연구
    강대훈 해외한인경제인협동조합 이사장 /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 화동인터내셔널 대표이사 / 26년 동안 수출과 투자유치 활동 / 세계 100개 도시 전략 연구

     

    지금도 나는 집 인근에 짓고 있는 체육관과 도서관을 보고 있다. 기능에 충실한 건물, 세상의 트렌드가 무관해 보이는 형태... 먹고사는 것 이상의  가치는 어데 있는 것일까? 서구가 역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천안에,  세종에, 서울에도 없는 도시 디자인을 창조하는 것이다.

    대전시의 도시계획위원회에는 시의원(2), 공무원(5, 위원장 포함)와 외부전문가인 교수(14), 연구원(4)들이 들어가 있는데 교수 비중이 높다. 현직에서 직접 설계를 하고 스케치를 하는 건축사, 디자이너, 도시 공간에 작품 행위를 하는 예술가, 외국 체험이 풍부한 시민 주부, 시에서 살고 있는 관련 외국인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결과에 영향을 주는 입력값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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