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가까운 책방’을 멀리에서도 찾아가야하는 이유
[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가까운 책방’을 멀리에서도 찾아가야하는 이유
(88) 그래픽 노블 전문서점 ‘가까운 책방’의 대표 김신일 씨의 얘기를 듣다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10.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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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기자] 어떤 날은 바닥없이 깊기만 한 파란 가을 하늘이 내 속 깊숙이까지 투명하게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소심한 자책일 테지만 이럴 때 잠깐 하늘을 피해 숨기 적당한 곳이 있다. 바로 작은 책방이다. 이런 책방이 심지어 가까이 있다. ‘가까운 책방’이다.

대흥동의 중심가에서 살짝 벗어나 대전여중 정문 앞에 이유 없이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분명 ‘가까운 책방’이 당신을 끌어당긴 것이다. 그럴 때는 그냥 들어가자.

“책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어떤 것을 새롭게 경험하는 통로라고 생각해요. 만화도 같은 시각으로 보면 좋겠어요. 아직도 만화책은 애들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분은 안 계시겠죠? 깊이 있고 이야기를 좋은 그림을 통해 들을 수 있는 통로입니다. 꼭 접해보세요.”

사실 우리는 모두 만화와 함께 자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그림에 실린 이야기를 외면했다. ‘가까운 책방’의 대표 김신일 씨의 얘기는 그래서 뜨끔하다. 이 작은 책방을 다시 살펴본다.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전문서점이다.

“예전부터 마블이나 DC코믹스에서 코믹북이라고 부르는 만화책이 나왔죠. 이런 책들이 브랜드화 되면서 고급화 전략으로 그래픽 노블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얘기죠. 지금은 스토리가 중요시되는 만화작품들을 넓게 그래픽 노블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출판되던 만화들하고는 장정이나 디자인에서 차이가 있죠. 말 그대로 전문화되고 고급화된 그림 소설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서 그래픽 노블에는 새로운 역할과 기능이 더해졌다고 말을 이었다.

“지금은 장르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서로 넘나들고 있는 거죠. 웹툰으로 출발한 것이 만화로 출판되는 경우가 있고 그것이 다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은 소설로 먼저 출판되고 그래픽 노블을 표방하면서 만화책으로 나왔어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만화가 원작인데 영화로 만든 것이고 반대로 영화가 나왔다가 만화로 출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픽 노블이 많은 장르가 융합되는 형태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만화의 매력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분명하게 김신일 씨도 재미있으니까 이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내놓았을 것이다.

“제가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림도 좋아하고. 지금은 국내작가들도 그래픽 노블을 표방하고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초기에는 번역 출판된 외국작품들이 주였죠. 그리고 대형서점 만화코너에 가보면 히어로물 중심이에요. 그것도 DC코믹스나 마블 정도만 소개되어 있고. 물론 관심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지만 여러 종류의 작품을 내가 직접 만져보고 살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여러 작품들을 이렇게 모아놓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고 어쩌다보니 책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상 가능한 답이지만 재미있다. 그리고 또 책방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요즘은 긴 스토리보다 짧고 파편화된 이야기가 많잖아요. 대화나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많이 파편화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어요. 길고 깊은 이야기 재미있지 않아요? 스토리의 맛과 그림의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으니까 더 재미있죠.”

‘가까운 책방’이라는 이름도 궁금했다.

 “‘가까운 책방’의 모토는 사람과 사람 사이, 책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자는 겁니다. 가깝다고 하는 건 어느 정도의 거리를 얘기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책과 사람 사이도 그렇죠. 그런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적당한 거리, 책도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 책을 보고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만큼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책방이 문을 열고 맞은 1년은 적당한 거리를 찾아온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우선 책방에 오는 분들에게 그래픽 노블을 알리는 역할을 지역에서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제일 크지 않을까요? 사실 여기 있는 책 중에는 역사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좋은 스토리를 가진 만화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크게 이슈화되고 사회적 문제로 관심이 큰 사안이죠. 실제로 그분들의 얘기를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만화가 있습니다. 김금숙 작가의 ‘풀’이라는 작품이에요. 작가가 직접 함께 지내면서 만든 작품입니다. 다음 세대 젊은이들도 그 당시의 아픔과 역사적 사건들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짐승의 시간’이라는 작품은 고 김근태 의원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당한 고문사건을 보여주고 있고, 삼성반도체 피해사실들을 고발하는 만화도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냥 재미있는 만화도 많습니다. 이런 다양성을 알리는 일도 해온 거죠.”

이야기를 좋아하는 책방 주인의 이야기는 다가올 시간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책만 팔아서는 운영도 어렵고 재미도 없어요. 강연회나 공연, 책읽기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또 계획 중입니다. 작가들과 작은 서점이 같이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곧 시작할 예정이고, 양예람 작가와 함께 하는 ‘여행 드로잉 원데이 클래스’도 재미있을 겁니다. 내가 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서 여행 드로잉북을 하나 갖게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얘기대로 재미있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사실 큰돈 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작은 책방을 열고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꾸미지 않는다. 김신일 씨의 얼굴에는 대신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욕심은 많아 보였다. 사실 ‘가까운 책방’의 주인에게는 두 개의 욕심이 더 있다.

“책도, 그래픽 노블도 소통이잖아요. 목회도 그런 것이죠.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 듣고, 그게 예수님이 하신 일이라고 생각해요. 꼭 종교적인 언어를 써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게 정말 사람이 사는 거야, 라는 사실을 서로 느낀다면 모두에게 기쁜 일이죠.”

그렇다 그는 목사이다. 그리고 사회의 정의를 고민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작년까지 이어진 대전지역의 촛불집회를 비롯해 많은 사회적 이슈의 현장에 참가해 사회를 보기도 했다. 목사 김신일 씨, 활동가 김신일 씨를 만나고 나자 다시 책방 주인 김신일 씨가 돌아왔다.

“1년 전, ‘가까운 책방’이 문을 연 이후에도 문을 닫은 서점도 있고 옮긴 서점도 있고 또 새로 문을 연 서점도 있어요. 올해가 책의 해인데 더 많이 읽고 책과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어요.”

책방 주인은 서둘러 일어나 의자를 옮기고 작은 프로젝터의 화면을 조정한다. 마침 저자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곧 주변을 서성이던 10여 명의 독자들이 작은 책방을 꽉 채웠고 ‘마당 씨의 식탁’의 작가 홍연식 씨가 먼 길을 달려와 자리를 잡고는 독자들이 내민 책의 표지 안쪽에 서명을 대신해 정성들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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