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위령제·위령비… 억울한 죽음을 진혼하자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위령제·위령비… 억울한 죽음을 진혼하자
화해와 평화의 땅 제주도 ⑥ ‘순이삼촌’, 4.3사건을 일깨우다
  • 김형규 자전거 여행가
  • 승인 2018.11.03 15: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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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문학비 전경.
순이삼촌문학비 전경.
순이삼촌문학비 전경.
순이삼촌문학비 전경.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너븐숭이 4.3기념관 인근 옴팡밭은 4.3학살의 비극이 집약된 곳 중 하나다. 옴팡밭은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밭이란 뜻이다. 1949년 1월17일 수백명의 마을사람들을 북촌국민학교에 집결시킨 토벌대는 주민들을 50명씩 떼어내 인근 밭으로 끌고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나중에 옴팡밭으로 돌아온 생존자들은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듯 시체가 즐비했다고 참상을 기억했다. 옴팡밭 애기무덤 바로옆 양지바른 곳에는 순이삼촌문학비가 세워졌다. 2008년 정부가 부지를 매입해 문학비건립사업을 추진했다.

피로 상징되는 붉은 색 토양위에 널브러진 관모양의 돌덩어리는 당시 희생자를 표현했다.

현기영은 북촌리 4.3사건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197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발표했다. 30년 동안 금기시됐던 참극을 폭로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그는 ‘소설가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순이삼촌’에 담았다.

순이삼촌문학비에 누워있는 돌에 소설 문구가 새겨져있다.
순이삼촌문학비에 누워있는 돌에 소설 문구가 새겨져있다.
순이삼촌문학비에 누워있는 돌에 소설 문구가 새겨져있다.
순이삼촌문학비에 누워있는 돌에 소설 문구가 새겨져있다.

제주에선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어른을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 부른다. 소설 속 순이‘삼촌’은 순이‘엄마’또는 순이‘아주머니’로 이해하면 될듯하다.

소설은 토벌대의 총격으로 어린 두 자녀를 옴팡밭에서 잃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순이삼촌이 모진 인생살이 끝에 30년 뒤 옴팡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시작된다. ‘나’와 친척들이 순이삼촌을 통해 당시 학살사건을 회상하면서 현재의 심경을 토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순이삼촌을 정독한다면 4.3사건의 전말과 당시 주민들의 참담한 생활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나는 이 소설을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다. 너븐숭이 4.3사건 현장을 둘러보면서 ‘순이삼촌’은 살아있는 역사기록물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4.3사건을 마수걸이한 작품치고는 완성도가 높고 학살 전후 상황과 연루자의 입장을 세세하게 묘사했다. 군부독재시절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썼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기념관 내부 제4관. 초토화작전으로 죽은 희생자들의 모습을 하얀 붕대에 둘러싸인 원통형 부조물로 형상화했다.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기념관 내부 제4관. 초토화작전으로 죽은 희생자들의 모습을 하얀 붕대에 둘러싸인 원통형 부조물로 형상화했다.
4.3평화기념관 로비에서 4.3사건의 미국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는 서명서에 관람객들이 서명을 하고 있다.
4.3평화기념관 로비에서 4.3사건의 미국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는 서명서에 관람객들이 서명을 하고 있다.

북촌국민학교에서 군인‧경찰‧공무원 직계가족을 선별하는 피를 말리는 과정, 나머지 주민들이 인근 옴팡밭‧당팟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상황은 실제 현장처럼 생생하다. 마을을 불지르는 초토화작전의 진실, 서북청년단의 기세, 빨갱이 의심을 받던 제주 청년들이 6.25전쟁에서 해병대로 자원해 혁혁한 전과를 세운 배경 등도 설득력 있게 풀어헤쳤다. 토벌대와 무장대 양쪽의 살해 위협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결국 한라산 중턱의 동굴에 숨어 지내야 했던 당시 제주 남정네들이 처한 상황은 가슴 아프게 와닿는다. 생존자들은 초토화작전으로 양식이 부족해 돼지사료로 쓰는 밀기울을 먹었다. ‘돼지똥과 사람똥이 구별될 리 없었다’고 써내려갔다.

소설에서 ‘나’와 서청 출신 토벌군이었던 고모부의 대화는 인상적이다.

“고모부님, 고모분 당시 삼십만 도민 중에 진짜 뻘갱이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햄수꽈?”

“그것사 만명쯤 되는 비무장공비 빼부리면 얼마 되어? 무장공비 한 삼백명쯤 되까?”

이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 성미가 났다.

제주 1100고지도로 인근에서 라이딩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 1100고지도로 인근에서 라이딩준비를 하고 있다.

“도대체 비무장공비란 것이 뭐우꽈? 무장도 안한 사람을 공비라고 할 수 이서 마씸? 그 사람들은 중산간 부락 소각으로 갈 곳 잃어 한라산 밑 여기저기 동굴에 숨어 살던 피난민이우다.”

현기영은 말미에 자신의 바람을 이렇게 썼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형규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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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2018-11-07 23:31:15
옴팡밭. 순이삼촌.

이제 제주에 다시 가게 되면 여행의 한 구석은 아픈 역사의 뒤안길로 채워질것 같다

강대환 2018-11-06 17:50:16
시대에 아품이네요. 다시는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연재하시는글 잘보고 있습니다.

kusenb 2018-11-05 20:41:57
참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는 생각만 드네요

진교영 2018-11-04 13:38:47
가슴이 먹먹합니다
왜이리 화만나는지
글 쓰시는동안 많이 힘드셨을듯 합니다
위로해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