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의 그림읽기] ‘쓸모없는’ 고목의 ‘쓸모있는’ 항변
[변상섭의 그림읽기] ‘쓸모없는’ 고목의 ‘쓸모있는’ 항변
지운영 作 ‘역수폐우’
  •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 승인 2018.11.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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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한적한 숲 속에서 아름드리 고목을 사이에 두고 더벅머리 총각이 황소와 줄다리기 한판을 벌이고 있다.

황소는 앞발에 힘을 잔뜩 주며 용을 쓴다. 고삐를 어찌나 세게 당겼는지 팽팽하다 못해 코뚜레가 빠질 지경이다. 그런데도 황소는 끌려 나오기는 커녕 눈을 크게 치켜뜬 채 버티고 있다. 마치 황소 고집의 진면목을 보여주려는 듯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그림은 지운영(1852-1935)의 ‘역수폐우(19세기)’다. 역수는 상수리나무고, 폐(蔽)는 가린다는 뜻이다. 직역하면 ‘상수리나무가 소를 가린다’는 뜻으로, 장자의 인간세편에 나오는 우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화 내용은 도편수 장석이 제자들과 제나라를 여행하다가 소를 가릴 만큼 엄청나게 큰 상수리나무를 보고 그냥 지나쳤다. 한 제자가 좋은 재목을 보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스승에게 까닭을 물었다.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스승이 말하기를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곧 썩고, 그릇을 만들면 망가지고, 문을 짜면 진이 흐르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슨다. 이렇게 크도록 오래 살 수 있었던 것도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장석이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밤에 거목의 혼령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자네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무용지물이라 했는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 나무와 비교하는가. 배나무·유자나무는 열매를 맺으니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만 결국 열매 때문에 가지가 부러져 천수를 못 하고 죽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이 되레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지. 세상 사람이나 사물 모두 유용해지려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지만 나는 오로지 무용해지려고 노력해 왔다. 만일 내가 유용했다면 오래전에 잘려 나갔을 것”이라고. ‘쓸모없음의 쓸모’를 암시하고 있음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모난 돌이 정 먼저 맞고, 잘난 척하는 사람일수록 망신살이 잦은 법이다. 주변에서 또는 언론을 통해서 수도 없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쓸모의 반역이다. 지운영은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의 형이다. 근대기 사진술을 도입한 서화가이자 개화를 주도한 선각자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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