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광장] 각자의 판옵티콘
[청년광장] 각자의 판옵티콘
  • 김미소 한남대 화학과, 국어국문창작학과 다전공 4년
  • 승인 2018.11.07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미소한남대 화학과, 국어국문창작학과 다전공 4년
김미소 한남대 화학과, 국어국문창작학과 다전공 4년

 

[굿모닝충청 김미소 한남대 화학과] 최근 한 편의점 알바생이 SNS에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글을 올려 이슈가 됐다.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곧바로 잘리는, 이른바 회사의 갑질 문제는 다방면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한 회사는 직원의 개인 SNS 계정의 이름을 바꿀 것을 강요했고, 직원이 그것을 거부하자 회사의 방침에 불복하는 것이냐며 직원에게 폭언을 날렸다. 해당 직원은 곧바로 SNS에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네티즌들은 회사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회사의 갑질 논란을 살펴보면 직원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판옵티콘이란 교도관이 죄수들을 감시하기 위해 고안된 교도소의 형태다. 교도관들은 죄수들을 언제나 감시할 수 있고, 교도관들이 위치한 곳은 어둡게 칠해져 있어 죄수들은 자신이 감시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죄수들은 자신이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규율과 감시를 죄수들 스스로 내면화 해 스스로 감시를 하게 된다.

친구의 소개로 한 공장에서 한 달여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적이 있다. 이 공장은 사실 수공업 형태에 가까운 소규모 공장이었는데, 친구와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호두와 아몬드의 수를 세어 봉투에 정량대로 넣는 일이었다. 이곳에는 친구와 나 뿐만 아니라 대여섯 명의 이모들이 있었다. 우리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일회용 접시에 일정한 수의 견과류를 넣었다. 벨트의 끝에 앉은 사람은 접시에서 놓인 견과류를 쏟고, 그 옆에 앉은 사람은 견과류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 확인하고, 또 옆에 앉은 사람은 그것을 봉투에 넣어 밀봉한 후 유통기한 도장을 찍는다. 컨베이어 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탓에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허리를 제대로 펼 시간조차 없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에 사람들은 허리를 쭉 펴고, 못 나눴던 대화를 나누는데, 나는 이때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됐다. 사장이 공장 천장에 붙은 네 개의 CCTV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같이 일을 하는 이모들은 CCTV를 흘끗거리며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동안 잠깐이라도 허리를 펴거나 자신의 몫을 남에게 넘긴다면 사장이 공장장을 통해 불호령을 내린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천장을 살폈고, 그곳에는 정말로 네 개의 CCTV가 붙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친구와 나는 몰래 허리를 펴거나, 견과류 봉투를 담기 위한 박스를 접던 손을 잠시도 쉬지 않았다. CCTV가 정말로 작동을 하는지의 여부는 상관 없었다.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감시했다.

한 달여간의 단기 아르바이트가 끝나던 날, 사장은 회식 자리에서 나와 친구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CCTV가 비추고 있는 공장 내부가 보였다. 하지만 화질이 좋지 않아 공장은 네모난 픽셀로 조각나 있었고, 이런 화질이라면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잠시 일을 쉬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워 보였다. 나와 친구는 같이 일하는 이모들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고,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회식 자리라고 해도 밤에 일하는 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장은 나와 친구의 굳은 얼굴을 보다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공장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누군가 노닥거리고 있다’는 말을 전하던 사장의 앞에서 나와 친구는 부당함을 느꼈지만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없었기에 무력감을 느꼈다. 나와 같이 일하던 한 이모는 CCTV 때문에 불호령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우연의 일치였을 것이 분명했다. 그 네모난 조각들로는 누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와 친구가 공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CCTV에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지배된 이모들은 우리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와 친구는 공장을 나오기 직전, 조장 역할을 하고 있는 이모에게 다가가 말을 전했다. 천장의 CCTV는 사실 가짜라고.

회사는 사원들이 일을 잘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CCTV를 달고,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한다. 개인 SNS에 불만을 토로했다고 부당해고를 당한 것과 개인의 SNS 이름을 바꾸라고 회사가 지시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가 아니다. 직원들을 감시하는 것이 회사의 임무인가? 사익을 위해서라면 직원들을 기꺼이 감시하겠다는 회사의 이념은 더욱 많이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하고, 또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일을 하는 우리는 죄수가 아니며, 회사는 직원들을 감시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부여받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