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새벽녘에 만나는 윤동주, 그는 죽지 않았다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새벽녘에 만나는 윤동주, 그는 죽지 않았다
(31)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11.24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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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망명의 땅 간도에서 태어나 한시대의 괴로움을 아름다운 언어로 노래했던 윤동주(尹東柱, 1917~1945). 그의 필명은 동주(童舟)입니다.

그는 하늘을 사랑하고 바람과 별과 시를 사랑했던 시인입니다. 옥천이 고향인 향수(鄕愁)의 시인 정지용(鄭芝溶)은 1947년 12월, 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으로 이렇게 썼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날뛰던 일본에 빌어먹은 놈들의 글을 다시 보고 침을 뱉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도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냐?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동주는 가을 하늘같은 파란 마음으로 독립을 염원한 서정적 민족 시인입니다.

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해방 후에 나왔습니다. 원래 1942년 연희전문 졸업 기념으로 77부 한정판을 출판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자필로 시집을 3부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연희전문 후배 정병욱(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1922~1982)에게 주어졌습니다.

다음 해인 1943년 윤동주가 검거된 후, 정병욱도 학병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 한 부를 정병욱 모친에게 맡겨 용케 보관하다가 1948년 1월 30일 정음사(正音社)간으로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때야 세상 사람들이 동주를 시인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 저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 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에 쓴 ‘자화상(自畵像)’입니다.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이 담겨 있으면서도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겪어야만 했던 슬픈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홀로 외딴 우물을 찾아가서는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우물은 윤동주 자신의 내면입니다. 그런데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우물 속에 비친 그가 가여워집니다. 도로 가서 들여다보니 그는 아직 미운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자신이 싫은 것입니다.

돌아가 생각하니 또 그리워집니다. 미운 자신, 가엾은 자신, 그리운 자신이 겹칩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에 갇힌 슬픈 숙명입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년에 쓴 시 ‘십자가’입니다. 왜 동주는 자기에게 십자가가 허락되기를 바랄까요?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이지만 진리의 길인 신(神)을 증거하고 부활하는 위대한 일을 의미합니다.

시대적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 해보고 싶지만 할 수 있는 일이란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겨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표현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괴감을 표현했습니다.

동주는 자필 시집을 내기 전, 연전 스승인 이양하(李敭河, 1904~1963) 선생에게 시집을 보여줍니다. ‘십자가’, ‘슬픈 족속’, ‘또 다른 고향’ 등이 아무래도 일본 관헌의 검열에 통과되지 못하고, 동주의 신변에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보고, 때를 기다리자며 출간을 반대하셨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동주의 시 중 가장 많이 불리는 시인 ‘서시’는 연희전문을 마친 후 일본 유학을 앞둔 1941년 11월 20일에 쓴 시입니다. 

이 시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을 대신하여 쓴 시로 동주의 나이는 당시 26세였습니다. 일본은 최후 발악을 하였고 시국은 점점 흉흉해지고 있었습니다.

‘서시’는 시집의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부끄러움과 한편으로 괴로움을 극복하고 별을 노래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죽는 날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인 우리 민중과 조국을 사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가을 지난 마당은 하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루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 걸.

윤동주는 중학시절 동시를 지었습니다. 연길에 있는 ‘카톡릭 소년지’에 발표했습니다. 해란강(海蘭江) 여울소리, 아름다운  산천과 호흡하면서 쓴 30여 편의 동시가 남아 있습니다.

동시 ‘참새’는 1936년에 지은 시입니다. 가을이 지나고 마당에 참새들이 ‘짹짹’ 하는 소리를 내며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귀여운 모습이 평화롭게 느껴집니다. 마당에 남아있는 발자국을 참새들이 쓴 글씨라는 표현은 순수하고 천진스럽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줄의 ‘하루 종일 글씨 공부하여도, 짹 자 한자 밖에 더 못 쓰는걸'이라는 구절에서는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서의 무력감도 묻어납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둔 1941년 11월 5일, 동주는 자선시집(自選詩集) 19편 중 제일 마지막에 ‘별 헤는 밤’을 썼습니다. 일반적인 동주의 시처럼 이 시도 그리움과 자기 성찰이 주제입니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통하여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을밤에 계절의 변화를 몸 가득 느끼면서 하늘의 별들을 어둠속에서 헤아리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들만큼이나 가슴속에 수없이 많은 상념이 떠오릅니다.

그의 눈앞에 온갖 그리운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다시 이런 추억으로부터 깨어나 자신이 처한 현실에 눈을 뜨고 괴로워합니다. 그 고통을 자기 이름 석 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는 행위로 표현합니다. 동주다운 부끄러움입니다.

그러면서 봄과 풀로 형상화된 미래를 보는 희망적인 시선을 놓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는 길이 심지어 죽음일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담고 있습니다. 정신 병동에서 창밖의 별을 보고 그린 고흐(1853~1890)의 ‘별이 빛나는 밤’과 전혀 다른 이미지입니다.

1943년 7월, 동주는 일본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첫 학기를 마치고 고종사촌 송몽규(宋夢圭)와 함께 귀향길에 오르기 직전, 독립운동을 이유로 체포되었고, 2년 언도를 받아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이 형무소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자주 맞았다고 합니다.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불과 6개월 남기고 무슨 뜻인지 모르나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운명하였습니다. 3월 초순 윤동주를 보낸 날은 눈보라가 몹시 쳤습니다. 집 앞 뜰에서 거행된 장례식에서 연희전문 졸업 무렵 발표한 ‘새로운 길’이 낭독되었습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쓰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되뇌었던 윤동주. 윤동주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깊어가는 가을밤에 새벽이 올 때까지 읽어 볼 만한 시집입니다. 시는 인간 속에 있는 신성함을 퇴락 속에서 구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환원시킨다는 말이 백번 맞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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