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친정 母는 열요 中
[시민기자의 눈] 친정 母는 열요 中
  • 홍경석 시민기자
  • 승인 2018.12.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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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시민기자
홍경석 시민기자

[굿모닝충청 홍경석 시민기자] 딸이 지난달에 직장에 사표를 냈다. 그래서 딸은 졸지에 ‘경단녀’가 되었다. 딸이 경단녀가 된 까닭은 내년 1월의 출산을 앞둔 이유 있는 포석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 오는 배를 의식한 매우 합리적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속으론 서운하고 섭섭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제일의 국립대학교를 스스로 그만 둔 때문이다. 아무튼 딸과 사위를 닮은 손녀를 어서 나도 품에 안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어제는 아내가 아침부터 부산했다.

“뭐하는 겨?” “응, 우리 딸이 입맛이 없다기에…” 아내는 쇠고기메추리알장조림에 오징어채볶음도 모자라 깻잎무침까지를 만드느라 구슬땀이 송골송골했다. 딸은 서울에서 산다. 따라서 같은 대전에서 살았더라면 아내는 필시 만날 딸의 집을 찾았을 것이었다.

그리곤 평소의 내로라하는 요리솜씨를 십분 발휘했을 터였다. 아내의 딸을 향한 정성과 배려에서 기인한 ‘친정 母의 열요(‘열심히 요리하다’의 준말)’를 보자니 문득 저처럼 살가운 모정(母情)이 왜 나에겐 없었을까 싶어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의 생후 첫 돌 무렵 증발한 어머니는 60년이 다 되는 지금껏 함흥차사다. 따라서 평생토록 모정이라곤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그 덕분(?)에 또래들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사무치도록 그리웠던 모정을 아내에게서 느껴보고자 그처럼 조혼(早婚)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스물넷의 약관(弱冠)에 ‘아빠’가 되었으니까. 아들에 이어 딸까지 본 건 내 나이 스물여덟 때였다.

아이가 둘로 증가하고 보니 더욱 열심히 생업에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돈복은 지지리 없어서 지금도 여전히 군색하다. 그럼에도 두 아이가 모두 결혼을 했고, 비교적 여유롭게 살고 있음에 만족한다.

이런 ‘팩트’가 있기에 아내는 나보다 한 술 더 떠 자못 기고만장(?)까지 한 것이다. 하긴 우리 같은 서민에게 이런 자랑거리조차 없어서야 가뜩이나 풍진 세상을 과연 무슨 낙과 재미로 살겠냐마는.

조리를 마친 아내는 심부름을 시켰다. “마트에 가서 이런저런(머리가 나빠서 적지 않으면 죄 까먹는다) 것들을 사면서 딸에게 보내게끔 튼튼한 박스도 하나 얻어 와. 오는 길에는 편의점에도 들러서 택배는 몇 시까지 접수를 받는지도 알아보고.” “넵~”

바람처럼 달려가서 아내가 부탁한 바를 모두 뚝딱 해결했다. 장을 보는 김에 꼬막도 샀는데 이게 술안주로는 그야말로 ‘왔따’였다. 삶은 꼬막을 안주 삼아 소주를 3병이나 비웠더니 잠이 쏟아져 견딜 재간이 없었다.

“여보, 미안해! 술이 안 취했으면 편의점까지 갔으련만 졸려서 그리 못하니 이해하구려.” “염려 말고 어서 주무시기나 하세요.” “고마워~”

잠을 몇 시간이나 그렁그렁 푹 자고 일어나니 비로소 누적됐던 야근에서의 수면부족과 피로감까지 덩달아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택배는?” “손수레로 끌고 가서 맡겼지. 내일 도착할 거래.” "딸한테 문자는 보냈겠지?” “아무렴 홍당무지~”

아내의 ‘열요(열심히 요리하다)’는 또 따른 열요(熱拗 = 열요하다 = 매우 시끄럽고 떠들썩하다)와 같은 등식(等式)이었다. 한데 그런 시끄럽고 떠들썩한 풍경이 좋은 건 비단 나만의 바람일까?

가족은 무조건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식구가 많으면 자연스레 시끄럽다. 또한 그게 정상이다. 딸에 이어 내년엔 아들도 아기를 낳았으면 더 좋겠다. 새아가, 아니 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는 낭보가 온다면 아내는 다시금 어제처럼 ‘열요’에 몰입할 게 틀림없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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