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의 세상읽기] 백남준이 기가 막혀!
[김선미의 세상읽기] 백남준이 기가 막혀!
  • 김선미 언론인
  • 승인 2018.12.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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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김선미 언론인]

김선미 언론인
김선미 언론인

맨입으로 까다롭고 깐깐한 세계적 거장 작품전 유치하겠다고?

2009년 겨울, 서울 빛축제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에 오래된 TV 수상기와 전화기, 라디오, 박제거북 등으로 만들어진 거북선이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나타나 강렬한 빛과 음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대전시립미술관에 입장하게 되면 미술관 중앙홀에 설치된 천정에 닿을 듯 압도적 위용을 자랑하는 이 거북선과 마주하게 된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 선구자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이다.

뜬금없이 백남준을 소환하는 것은 최근 대전에서 불거진 ‘백남준 특별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대전시와 시 산하 문화예술기관의 부끄러운 민낯 때문이다.

백남준 정도 위상의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전이 대전에서 개최된다면 당연히 환영하고 반겨야 할 일인데 질타와 뭇매 끝에 무산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내년은 대전방문의 해다. 대전시는 외부 방문객을 유인할 매력적 요소로 문화적 콘텐츠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백남준전 무산, 시립미술관만의 책임인가 대전시 문화행정의 민낯

‘백남준 특별전 무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작품전 하나의 불발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작품전을 준비하고 기획한 대전시립미술관의 역량은 물론 더 나아가 대전시의 안이함과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문화행정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립미술관은 내년 대전방문의 해를 맞아 ‘백남준 특별전’ 예산 9억7000여만 원을 시에 요청했다. 전시기간은 8월14일부터 11월30일까지 109일 동안 80여점의 작품을 전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미술관의 계획이 알려지자 언론의 비판적 보도는 물론 시의회 의원들의 가혹한 질타가 이어지는 등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거액의 예산이 아니었다. 가장 큰 요인은 사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믿기지 않는 이유 때문이었다.

10억원의 예산 쓰겠다며 당위성 저작권 기본적인 밑그림도 없어

이 시점에 왜 백남준인지? 대전시 출범 70년 광역시 승격 30년을 기념하는 ‘대전7030’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10억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의 전시 계획을 세우면서 왜 하는지? 어떤 성격과 방향성을 가진 전시를 할 것인지?

전시 작품 80여 점을 채우려면 한국을 비롯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소장자와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 가며 대여해 와야 한다. 더구나 백남준의 작품은 저작권 문제가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저작권 문제를 사전에 조율하거나, 협력기관과의 협의를 통한 대략적인 밑그림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맨입으로 덤빈 셈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백남준 전시는 2년을 준비해도 짧다고 한다. 시립미술관측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본적인 골격도 갖추지 못한 채 거의 아이디어 수준의 안을 갖고 예산을 요청해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백남준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전시 무산에 미술관은 안도감으로 가슴 쓸어내릴지도 몰라

설령 예산이 확보된다고 해도 과연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제대로’ 된 전시를 준비할 수 있을까? 그것도 깐깐하고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는 전시를 말이다.

미술관 자체 역량과 지향점이 반영된 전시가 아닌, 전문 기획사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전시를 통째로 사오거나 혹은 ‘백남준 작품의 진수’가 아닌 이름만 그럴듯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개최에만 방점을 찍는 전시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미술관측은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우려를 넘어 전시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드는 합리적 이유이다. 결국 지난 29일 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백남준 특별전’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시 자체가 백지화된 것이다.

어쩌면 미술관 측은 대놓고 말은 못해도 어설프게 행사를 치렀다가 후폭풍을 맞는 것 보다 차라리 지금 무산된 것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지도 모르겠다.

부실한 준비에 전시 진정성마저 의심, 이유 있는 집중 포화

사업 자체가 준비가 안 돼 있고 무리하다는 것은 대전시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백남준 특별전은 전임 미술관장이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전시로 지난 7월 임기가 끝나고 관장이 공석이어서 사업추진에 공백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 산하기관의 준비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으면 무턱대고 예산을 올릴 것이 아니라 애초 미술관과 협의해 사업을 반려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대처이다. 모든 책임을 미술관측에 미루는 듯한 태도는 주무부서로서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한다.

‘백남준 특별전’ 예산은 전액 삭감됐으나 기획전시 예산은 3분의1로 축소돼 6억 원이 반영됐다. 새로운 전시를 전제로 한 예산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 얼마나 참신하고 충실한 전시를 준비할 수 있을지는 역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예산을 낭비 없이 잘 쓰라는 시민들의 주문은 내용에 합당한 예산 집행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지 6억 원이냐, 10억 원이냐 하는 액수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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