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큰넓궤(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로 가는 산길은 렌터카가 땅바닥에 긁힐 정도로 요철이 심했다.
큰넓궤는 4.3사건 당시 인근 주민들이 2개월 정도 생활했던 천연동굴이다. 워낙 오지여서 토벌대의 수색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 있었지만 결국 발각됐다고 한다. 이곳을 아는 주민의 토설 없이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산골짜기다.
제주 4.3평화공원을 지난 4월 자전거로 방문하고 3개월 뒤 제주에 다시 입도했다. 본격적으로 4.3유적지를 탐방하기 위해서다. 주민들이 피신했던 동굴과 초토화작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을 찾아가기로 했다.
동굴과 사라진 마을 등 4.3유적지에 대한 정보는 ‘제주4.3아카이브’에 저장돼 있다. 이번 탐방은 자전거 대신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4.3유적지가 거의 오지인데다 전역에 산재돼 자전거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주는 화산 활동으로 인해 중산간 지대에 천연동굴이 많다. 4.3사건 당시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으로 집을 잃은 주민들은 자연스레 동굴로 거처를 옮겼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 재현된 다랑쉬굴은 당시 좌우익의 첨예한 대립을 피해 동굴생활을 했던 주민들의 참담한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다랑쉬굴은 1948년 12월 18일 하도‧종달리 남녀노소 비무장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돼 집단희생을 당한 곳이다.
군경토벌대는 수류탄을 굴에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어차피 나가도 죽을 목숨이라 생각한 주민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주민들을 질식시켜 죽였다.
다랑쉬굴은 사라진 마을을 조사하던 ‘제주4․3연구소’에 의해 1991년 12월 발견됐다. 당시 사회현실을 감안해 발견사실을 숨기다 학계와 법조계의 자문을 얻어 1992년 4월 공개했다.
다랑쉬굴에 대한 파장이 너무 커 정부는 유해를 서둘러 화장한 뒤 유물을 그대로 두고 입구를 콘크리트로 봉쇄했다. 2002년 4월 제주민예총은 다랑쉬굴 유골 발견 10주년을 맞아 ‘해원상생굿’을 열고 입구에 표석을 세웠다.
4.3유적지 중에는 다랑쉬굴 이외에 목시물굴, 빌레못굴, 큰넓궤, 도틀굴, 벤뱅디굴 등 주민들이 피신해있던 천연동굴이 많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도틀굴과 목시물굴 이야기는 듣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4.3사건 와중에 초토화작전으로 집을 잃은 인근 주민들은 곶자왈과 동굴을 은신처로 삼았다.
토벌대는 도틀굴에 숨어 살던 주민들을 발견해 현장에서 총살하고 일부 주민을 끌고가 다른 은신처를 추궁했다. 모진 고문에 견디지 못한 주민이 도틀굴에서 1㎞ 떨어진 목시물굴을 자백했다.
목시물굴에는 200여명의 주민들이 근근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토벌대는 수류탄을 투척하며 주민들을 굴 밖으로 나올 것을 종용했다.
어린 아이와 노인 등 굴 밖으로 나온 40여명을 현장에서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토벌대의 만행은 이튿날 선흘2리 주민들이 피신했던 벤뱅디굴로 이어졌다.
천연동굴은 토벌대의 위협이나 무장대의 겁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세상으로 향하는 ‘광장’이었다.
1961년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당시 사회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를 극복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남과 북에 모두 환멸을 느낀 주인공은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후 남과 북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하지만 인도로 가는 배에서 바다에 투신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자전거여행가이다. 지난해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이전에는 일본 후쿠오카-기타큐슈를 자전거로 왕복했다. 대전에서 땅끝마을까지 1박2일 라이딩을 하는 등 국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투어하면서 역사문화여행기를 쓰고 있다.
▲280랠리 완주(2009년) ▲메리다컵 MTB마라톤 완주(2009, 2011, 2012년) ▲영남알프스랠리 완주(2010년) ▲박달재랠리 완주(2011년) ▲300랠리 완주(2012년) ▲백두대간 그란폰도 완주(2013년) ▲전 대전일보 기자
4 ㆍ3 사건과 같은 슬픈 역사적 사실들도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