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대전(大田) 이야기] 도학과 선비정신 실천한 조선후기 문신
[우리고장 대전(大田) 이야기] 도학과 선비정신 실천한 조선후기 문신
(20) 대전의 인물-권이진(權以鎭)
  • 자료협조=대전평생교육진흥원
  • 승인 2018.12.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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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당 판각/장판각 유회당 판각이 소장되어 있는 장판각(藏板閣).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유회당 판각/장판각 유회당 판각이 소장되어 있는 장판각(藏板閣).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생몰연대 : 1668(현종9)∼1734(영조10)
•거 주 :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
•묘 소 :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

생애
조선 후기 문신이다. 권이진(權以鎭)의 자는 자정(子定), 호는 유회당(有懷堂) 또는 수만헌(收漫軒)이다. 예조좌랑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 1570년∼1623년)의 증손으로 탄옹(炭翁) 권시는 그의 조부이며 탄옹의 둘째 아들인 권유(權惟)의 셋째 아들이 유회당(有懷堂)이다. 외조부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다. 윤휴(尹鑴)의 사위이고 윤증(尹拯)의 문인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권이진은 1668년 7월 공주의 탄방리(지금의 서구 탄방동)에서 출생하였다. 원래호는 수만헌(收漫軒)이었으나 선친의 묘막(墓幕)을 만들면서 두 분의 뜻을 간직하면서도 깨치지 못함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는다는 의미로 당호를 유회당이라 하여 그것이 호가 되었다.

그는 19세 때까지 증조부 권득기의 유언에 따라 과거공부에는 뜻을 두지 않고 증조부의 ‘십자훈(十字訓)’인 “매사필구시(每事必求是), 무락제이의(無落第二義), 모든일에서 반드시 그 타당함을 구해야 한다”를 가훈으로 전심하였다. 21세는 선친의 말씀에 따라 조부 권시의 제자이자 사위였던 윤증 문하에 입문하여 공부하였다 .

1691년(숙종17) 한양촌에서 호계(虎溪)로 옮겨 독서에 열중하다 백부 권기의 권유로 과거에 응시하여 1693년(숙종19)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약 40여년 간, 병조참판(兵曹參判), 경상감사(慶尙監司), 호조판서(戶曹判書) 등 수많은 관직을 역임하며 관료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유회당은 관직에 나가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다.

당시는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 사이의 변화 많은 당쟁기였음에도 그는 특정정파나 당론에 치우치지 않았다. 관직 생활 동안은 실지 현장에서 실무에 관한 경험을 지니게 됨으로써 정치·경제·국책개혁 등에 관한 여러 개선책을 실시하였다.

1728년(영조4)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수습한 유회당은 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이해 호조판서가 되어 궁중에서 민간의 전답을 매입하지 말 것과 공물을정액 이상으로 거두지 말 것 등을 건의했다. 이와 같은 이재와 재정절약책으로 국가의 재정 개선에 힘써 당시 최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권이진은 1707년 11월 동래부사로 부임하여 관할 초량 왜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웠으며, 1733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가있는 동안에 국경을 넘어와 위원군(渭原郡)에 숨어 살던 청나라 사람들의 체포를 건의하는 장계를 올렸다. 대청 국경방비책으로는 변민의 보호대책과 진보의 방어시설을 수리하고, 군진을 개편하여 튼튼히 하는 대책을 건의하였다.

유회당 1668년(현종9)~1734년(영조10). 조선 후기의 문신. 대전 중구 무수동에 있는 권이진이 지은 건물로 부모의 은덕을 기리고 묘소를 보호하기 위해 세웠다.
유회당 1668년(현종9)~1734년(영조10). 조선 후기의 문신. 대전 중구 무수동에 있는 권이진이 지은 건물로 부모의 은덕을 기리고 묘소를 보호하기 위해 세웠다.

유회당 권이진의 주요 업적
유회당 권이진은 1709년(숙종35) 1월 동래 부사에 임명되어 1711년(숙종37) 4월까지 재임하면서 많은 일을 하였다. 권이진의 업적은 1740년(영조16)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잘 나타나 있다.

권이진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컸고, 특히 조선 침략의 병참기지 구실을 하였던 쓰시마(對馬)의 도주(島主) 요시토시(宗義智)를 주범으로 여겨미워하였다. 이에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하고,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임진왜란에 대한 현창(顯彰)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임진왜란 현창 사업에 대해서는 ‘충렬사지(忠烈祠誌)’ 권7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1709년(숙종35)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 등을 모신 충렬사의 별사를 짓고, 같은 해 10월 별사의 편액을 청하는 장계를 올려 2년 후에 사액이 내려졌다. 1710년(숙종36) 2월에는 ‘별묘 봉안(別廟奉安)’ 제문을 지었다. 또한‘동래부 순절도’를 그리게 하고, 화기(畵記)를 지었다.

권이진은 화기에서 “사당으로 부족하여 또 비석을 세우고, 비석으로 부족하여 또 그림을 그려서 장차 이 천리(天理)를 함께 품부 받아 마음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는 것이다. (중략) 이 그림을 보고서 임금에게 충성하고 윗사람을 위해 죽으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현재 육군사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동래부 순절도’ (보물 제392호)는 1760년(영조36) 변박(卞璞)이 고쳐 그린 것이다.

또한 외군관청(外軍官廳), 연향대청(宴享大廳), 성황사(城隍祠)를 중창하고 사직(社稷)을 동래부의 서쪽 2㎞ 거리로 이전하였다. 금정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할 계획도 세웠다. 현지답사와 문헌 조사를 통해 개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공사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 확보 방안까지 마련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권이진은 하급 관리인 훈도(訓導)와 별차(別差), 초량의 주민들이 왜관에 사는 일본인들과 유착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 고리를 끊으려 하였다. 일본인들이 훈도나 별차를 만난다는 구실로 초량촌을 불법으로 드나들고, 매매춘 등의 문제를 일으키자 1709년(숙종35) 초량 왜관의 흙담을 돌담으로 바꾸었다. 또 왜관 밖에 담장을 쌓고 설문(設門)을 만들어 왜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문 안에 있던 민가를 밖으로 옮겼다. 초량 왜관에서 열리는 개시(開市) 및 왜관 수문(守門)[출입문] 앞에 서는 새벽 시장인 조시(朝市)에도 손을 댔다. 쌀은 개시일에만 팔게 하고, 조시에서는 어물, 채소, 됫박 쌀 외에는 아무것도 거래하지 못하게 하였다.

매매춘도 강력히 단속하였다. 1707년(숙종33) 조선 여성 감옥(甘玉)과 왜인 연식기(連食只) 사이에 매매춘 문제가 발생하자 조정에서는 1708년(숙종34) 최상집(崔相集)을 당상관으로 문위행(問慰行)을 보냈으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에 권이진은 5차례나 장계를 올려 강력히 대처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문제는 1711년(숙종37) ‘매매춘을 한 사람은 양국에서 똑같이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범간 약조(犯干約條)의 체결로 마무리되었다.

학문과 저술
유회당 권이진은 소론의 영수인 윤증의 제자이다. 당론과 학파에 얽매이지 않고, 실사구시의 가학(家學)의 전통을 이어받아 실지(實地)에 바탕을 둔 학문 연구에 정진하였다. 그리하여 권득기와 권시가 이루어 놓은 도산학(道山學)의 학문 체계를 단단히 다졌다. 일상생활에서는 공자(公子), 맹자(孟子), 주자(朱子), 송시열이 주장한 직(直)[도리가 바름]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문집인 ‘유회당집(有懷堂集)’은 초량 왜관을 중심으로 일어난 여러 사건과 권이진이 실시한 정책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고 내용도 풍부하여 조선 후기 부산 지역사와 한일 교류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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