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잘 죽는법’… 영화같은 자서전적 에세이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잘 죽는법’… 영화같은 자서전적 에세이
(33)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12.22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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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법정(法頂, 1932~2010)스님은 생전에 여러 글에서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1904~1995)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은 스무 네 살에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을 만납니다. 스콧은 미국의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의 야만성에 도전하다 대학 강단에서 쫓겨납니다.

두 사람은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농장을 일굽니다. 함께 산 반세기 동안 참으로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줍니다. 이 책은 헬렌 니어링이 동반자 스콧 니어링이 세상을 뜬지 8년이 지난 87세에 스콧의 영혼을 불러와 존경하는 마음으로 쓴 자서전적 에세입니다.

스콧이 활동했던 1930년대는 자본주의 이외에는 어떤 사상도 용납되지 않은 사회였습니다. 인간이 사회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스콧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동정이 많았습니다.

상류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빚을 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콧은 대학교수가 되자 부의 불평등과 노동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자유주의의 개혁을 주창했습니다. 두 발짝 앞서는 진보주의이기에 사회 반역적인 인물로 낙인찍혀 대학에서 해임당하고 학계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사회문제에 지식인으로서 깊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졌습니다. 일상생활에서조차 늘 진리를 추구하고 가장 높은 목표를 따라 살려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스콧은 자신과 관련된 기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은 대중의 생활습관, 도덕 기준을 따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규범을 만들어 가야 하는가? 이상적인 삶은 어떤 대가를 치르기 마련입니다. 그 이상이 관례에 멀어질수록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어떤 인간에게도 맑고 고운 이상이 없다면 현실의 때를 씻어 낼 수 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헬렌은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자입니다. 젊은 시절 인도철학자이며 영성가인 크리슈나 무르티(Krishnamurti,1896~1985)의 연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의 회원으로 그 지역 모임에서 처음으로 스콧을 보았고 학회와 관련된 심부름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신지학은 종교는 아닙니다. 종교, 피부색, 성, 계급 또는 신념에 차별을 두지 않는 우주적 형제애에 바탕을 두었으며 모든 종교의 밑바탕에 흐르는 고대의 지혜와 철학과 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저마다 진리로 향하는 길입니다. 어떤 종교도 그 모두를 포괄하지 못합니다.

헬렌이 20대 중반이었을 때 스콧은 40대 중반이었습니다. 헬렌과 스콧은 나이 차이만큼이나 살아온 과정이 다릅니다. 그녀는 외로운 독서광에다 운동도 잘하는 음악 소녀로 환상적이고 즉흥적이나 보다 이성적인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스콧은 논리적이고 일관성을 잃지 않은 박식한 학자였습니다. 서로가 차이가 큰 개성을 가졌지만, 살아가면서 그 모든 것을 훌륭하게 조율해 내었습니다.

스콧은 헬렌이 그동안 거의 다루지 않았던 정치 또는 현실 생활에 관련된 주제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 반면에, 헬렌은 스콧에게 생활에 활력을 주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과 정신 영역의 안내자 노릇을 해주었습니다.

그들을 잘 아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정반대지만 완벽하게 서로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에게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으나 이제 당신들의 성품은 균등하게 조정되었습니다.” 사랑은 초기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조화가 아닙니다. 역시 사랑은 처음에 서로를 마주 보지만 점점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1932년 스콧은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쫓겨났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야 합니다. 자연과 날마다 만나고 발아래 땅을 느끼면서 가장 소박하게 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땅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려 합니다. 산자락에 버려진 8만 평의 땅을 샀습니다.

단지 선금 9백 달러와 저당권 8백 달러, 이것이 그가 투자한 전부입니다. 금전적으로도 자급자족하려 했습니다. 사탕단풍나무를 재배하여 시럽과 사탕을 만들어 상자에 담아 노점에서 판매하였습니다. 필요 이상의 돈을 벌지 않고 물건도 소유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글을 읽고 연구하고 대화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여행을 즐겼습니다. 한마디로 ‘덜 갖고 삶에 충실하기’ 철학입니다.

그는 양복 재단사인 친구로부터 양복 한 벌을 받았습니다. 친구가 고맙지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편지로 보냈습니다. 자기는 구두 한 켤레, 추운 겨울에 쓰는 모자 하나, 외투 한 벌, 넥타이 한두 개, 허리띠 하나로 족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지나치게 몸과 마음을 가꾸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스콧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각자가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를 인생의 본질로 보았습니다.

그는 텔레비전, 라디오나 전화를 혐오하였습니다. 때로 필요한 전화조차도 꼭 사용할 때만 쓸 수 있도록 헛간에 전화기를 두었습니다. 저녁에는 어느 것도 방해받지 않고 훌륭한 고전들을 읽으면서 보냈습니다.

일요일에는 소화기관도 쉬도록 하루 종일 단식하였고, 저녁 무렵에서야 불가에서 팝콘, 당근 주스, 사과 주스로 허기를 때우고 밤늦게까지 고전음악을 골라 들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은 열흘 동안 물만 마시는 단식을 했고 이 기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스콧은 평화주의자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계층은 예외 없이 스콧을 위험인물로 간직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는 글을 쓰고 강연에 나섰습니다.

폭력과 무력 충돌은 생명과 사회의 부를 끔찍하게 손상시킨다는 진리를 단순하고 정직한 언어로 강조했습니다. 스콧의 아들 존이 냉전시절 군산 복합체 편에서 활동하자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행위’라고 가차 없이 나물했습니다.

스콧은 인본주의자이고 사회주의자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약탈경제를 비난하고 공동체 전체의 복지수준을 높이는 ‘알맞게 나누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사람을 경제적인 상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존재로써 현실에서 이를 어떻게 증명하느냐가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는 채식주의자로 살았습니다. 소, 돼지, 닭, 생선을 먹지 않았습니다. 동물을 형제의 몸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형태가 다른 자아들로 열등하지 않고 생명체 가운데 하나로 모두들 이 땅에서 서로 기대면서 살아간다고 보았습니다.

스콧은 죽음을 끝이 아니며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듯이 하나의 변화로 보았습니다. 죽음은 지평선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한계를 표시할 뿐입니다.

“저기 봐! 배가 사라졌다.” 외치는 순간, “저기 봐! 배가 나타났다” 하며 기쁜 탄성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스콧은 자기 힘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죽고 싶어 했습니다. 요양원에서 두려움에 떨며 오랜 시간에 걸쳐 죽기를 결코 바라지 않았습니다. 자유의지에 따라가기를 원했습니다. 의식을 가진 채 의도한 대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 따라 조화롭게 죽고자 했습니다.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그는 포도주와 물로 단식을 하며 서서히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죽는 마지막 날의 부고용으로 죽음에 관련된 30개쯤 되는 내용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냈습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어떤 의사도 필요 없이 진통제나 마취제, 진정제도 투여하지 않은 채 빠르고 조용하게 죽은 후, 장의사 도움 없이 자기 몸에 작업복을 입혀 보통의 나무상자에 뉘여 화장터로 가서 화장하고, 재를 자기 나무 밑에 뿌려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행동은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죽음의 과정에 끼친 그의 영향은 크고 넘칩니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책은 살아갈 날들을 위한 큰 공부가 됩니다. 우리들은 그의 삶과 투쟁과 죽음을 배웁니다. 좋은 영화를 한편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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