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1905, 대전역을 만나다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1905, 대전역을 만나다
(92) 김은선 학예사에게 듣는 대전역 그리고 대전 이야기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8.12.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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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선 학예사
김은선 학예사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기자] 지난 20일부터 옛 충남도청 1층 대전근현대사전시관(상설2전시실)에서는 ‘1905, 대전역을 만나다’라는 기획전시가 시작되었다. 대전이라는 지역의 근원을 따질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 중에 하나가 대전역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이 전시가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뜻밖에도 대전역에 관한 자료가 별로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몇몇 연구자들이 대전역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역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때 역에서 일하는 직원이 보여준 난감한 표정은 지역 역사에 관한 관심과 사료 관리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비유였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 전시가 가지는 남다른 특징은 몇 가지로 꼽을 수 있다. 먼저 새롭게 발견된 사실이다. 전시의 첫 번째 과정인 ‘Part1. 대전역의 신설’은 대전역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과정으로 변화해왔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바쁜 일정에도 자리를 지키며 찬찬히 설명을 풀어놓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의 김은선 학예사의 설명을 옮겨본다.

“처음 대전역사(驛舍)는 1904년 11월에 경부철도가 부분 개통되면서 작은 목조단층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물이나 승객이 자꾸 늘어나니까 1914년에 부분 개축이 있었고 또 1916년에도 증축이 있었어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조금씩 확장을 한 거죠. 그러다가 우리 눈에 익은 근대 대전역 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이전까지 1928년에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밝혀낸 사실은 이 건물이 지어진 때는 10여 년이나 이전인 1918년이라는 것입니다. 비슷한 모양의 건물인 대구역사가 1915년에 건축되었다는 사실과 시대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이는 대전역에 관한 전시를 기획하고 자료를 준비하던 6개월 동안 김은선 학예사가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다. 일본인이 쓴 ‘大田發展誌(대전발전지)’와 1922년 조선공론사에서 발간한 ‘조선의 사정’이라는 자료를 바탕으로 대전역의 신·개축이 1917년에 착공하여 1918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 대전역사는 본관 양쪽에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있고 가운데 시계가 위치하며 대합실 입구의 돌출된 지붕의 구조, 또 본 건물은 2층이고 오른쪽은 단층으로 지어진 건물 구조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전통건축에 서양 양식이 혼합된 역사건축 유형으로 1915년에 지어진 대구역사와 아주 비슷하죠. 당시 몇 개의 표준 설계안을 기본으로 지역에 맞는 설계를 적용했다고 봐야합니다.”

1918년지어진 대전역사
1918년지어진 대전역사
같은양식의 대구역사
같은양식의 대구역사

김은선 학예사는 대전에서 나고 자란 대전 사람이다. 학예사로서 뿐 아니라 대전 사람으로 대전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며 대전의 역사는 대전역에서 시작한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전에 오면 처음 만나는 것이 대전역이잖아요. 첫인상이죠. 그런데 의외로 자료가 부족해요. 그래서 객관적인 고증으로 대전역을 다시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김은선 학예사의 말을 정리하면 대전역은 대전이 도시로 형성될 수 있었던 씨앗과 같은 존재이며 대전역사의 자리가 바로 대전의 발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일본은 서둘러 경부선을 개통하기 위해 거리가 짧고 대부분 과수원이어서 반대세력이 없는 대전리를 지나는 노선으로 변경합니다. 그리고 호남선과 경부선의 분기점도 대전으로 결정되죠. 역사(驛舍)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주변에 철도와 관련된 일본인 직원들이 거주하면서 관사촌이 만들어졌고, 또 철도를 타고 신문물이 모이다보니까 대전이 신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 회덕에 있던 군청이 대전으로 옮기고 1932년에는 충남의 도청소재지가 됩니다. 그렇게 대전역을 중심으로 도시의 형성과 한 시대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전역을 중심으로 충남도청사를 연결하는 중심도시축이 건설되고 대전의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대전이라는 도시의 성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반면 대전역을 일본에 의해 조선의 사람과 자원을 수탈하는 과정 중 하나가 되었다는 역사의 슬픈 단면이 되기도 한다. 

역을 방문하는 순종
역을 방문하는 순종
관사촌의 형성과 함께 사라진 소제호
관사촌의 형성과 함께 사라진 소제호

“당시 대전역과 철도는 독립운동가들이 무장 항쟁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역과 철도는 제국주의 일본이 러일전쟁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했으며 또 이 철도를 이용해 징용이나 징병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전역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기록에 있는 것처럼 의병 30명이 대전역을 습격해 몇 백 명이 다치는 사건도 있었고 대전역 만세사건 같은 일이 꾸준히 일어났습니다. 이 전시는 대전역을 또 다른 아픔의 중심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전시이기도 합니다.”

크지 않은 전시장이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전시물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전역을 방문했던 순종황제의 사진도 볼 수 있지만 그 배경을 따라 읽다보면 일본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 선조의 처지와 울분을 같이 읽을 수 있다. 또 한국전쟁 중 대전에 처음 도착한 미군의 모습과 당시 전쟁의 상황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대전 시민들의 모습뿐 아니라 대전 탈환 후 폐허로 변해버린 거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사진들은 미군 육군통신부대 사진파견대가 찍은 것으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공개한 자료이다. 이 외에서 시대가 변하면서 함께 변해온 대전역의 모습과 자료들이 역사의 증언자로 자리 잡고 있다.

“대전역이 가지고 있는 가치나 무게,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에 비해 자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시 준비에 애로사항이 많았죠. 정확히 고증된 자료가 많지 않았고 구체적인 내용도 상당히 부족했었죠. 그러나 대전역이야말로 반드시 다뤄야 할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시민이 찾아와 우리 대전의 역사를 다시 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철도선로도
철도선로도
대전역을 공격한 의병 기사
대전역을 공격한 의병 기사
새로 지은 대전역
새로 지은 대전역

대전근현대사전시관가 준비하는 다음 전시는 무엇이 될지도 궁금했다. 김은선 학예사의 답은 지체 없었다.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입니다. 그래서 ‘대전 독립운동가의 기억’이라는 주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전의 독립운동사가 되겠죠. 내년에도 우리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을 많이 찾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전시장을 나서 옛 충남도청의 정문을 나서자 대전역을 향하는 큰 도로가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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