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인을 닮은 내포의 명산 가야산에 오르다
충청인을 닮은 내포의 명산 가야산에 오르다
서산과 예산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이대천자지지' 남연군묘는 또 다른 볼거리
  • 김갑수 기자
  • 승인 2019.01.01 16:1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015년 11월 천안에서 내포신도시로 이사온 뒤부터 가야산은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찾는, 마치 친구처럼 느껴지는 산이 됐다.
지난 2015년 11월 천안에서 내포신도시로 이사온 뒤부터 가야산은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찾는, 마치 친구처럼 느껴지는 산이 됐다. (멀리 방송사 기지국이 설치된 가야봉과 그 왼쪽에 원효봉이 살짝 보인다.)
고향 마을의 옛 이름이 ‘빼째’(고개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였는데, 가장 멀리 보이는 곳은 가야산이었다. ‘저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까?’ 어린 시절 궁금해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향 마을의 옛 이름이 ‘빼째’(고개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였는데, 가장 멀리 보이는 곳은 가야산이었다. ‘저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까?’ 어린 시절 궁금해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굿모닝충청 내포=김갑수 기자] “웅장한 가야산을 바라보면서 내일의 희망을 키워나간다”, “밝아오는 새아침 서광이 비치도다. 가야산 정기 아래 우리 모두 모였다”

고향인 충남 서산시 인지면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가 중 일부다. 모든 학교가 그렇듯 주변의 가장 높은, 또는 대표적인 산이 교가에 등장하고 있다.

고향 마을의 옛 이름이 ‘빼째’(고개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였는데, 역시 가장 멀리 보이는 곳은 가야산이었다. ‘저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까?’ 어린 시절 궁금해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탓에 “태화산 바라보며”로 바뀌긴 했지만, 가야산은 늘 동경의 대상이자 이상향 같은 곳이었다.

지난 2015년 11월 천안에서 내포신도시로 이사온 뒤부터 가야산은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찾는, 마치 친구처럼 느껴지는 산이 됐다.

마지막 약 500m 코스는 그야말로 ‘헐떡고개’다. 양쪽에 있는 로프에 의지해 끝도 없는 돌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낙오하기 십상이다.
마지막 약 500m 코스는 그야말로 ‘헐떡고개’다. 양쪽에 있는 로프에 의지해 끝도 없는 돌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낙오하기 십상이다.

모든 산이 그렇겠지만, 가야산은 사시사철 매력이 넘친다. 서산시와 예산군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능선이 뻗었는데 남동쪽 원효봉에서 가야봉, 석문봉, 옥양봉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하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

모두 600m대의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날이 좋은 날에는 멀리 천수만과 가로림만, 안면도, 서산, 태안, 당진, 예산 등 내포지역 일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가야산에서 내려온 물은 계곡으로 흘러 예당평야의 젖줄이 되는, 그야말로 생명과 같은 산이다.

어떤 면에서는 충청인을 가장 많이 닮은 산이 가야산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고나 할까?

2019년 기해년(己亥年) 첫날 가야산을 찾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전 6시 30분 쯤 집을 나서 6시 50분 예산군 상가리 ‘백제의 미소길’ 입구에 주차했다. 원래는 상가리 주차장을 이용하는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다행히 중간 지점에 작은 샘이 있어 의지가 됐다. 바위 아래에 물이 솟아오르는 곳인데 주변에는 동물들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그나마 다행히 중간 지점에 작은 샘이 있어 의지가 됐다. 바위 아래에 물이 솟아오르는 곳인데 주변에는 동물들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해 대신 달이 떠 있었고, 주변은 어두웠다. 준비해 간 헤드랜턴을 머리에 쓰고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오르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약 15분 쯤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여전히 어두워 ‘멧돼지라도 나오면 어쩌나’ 약간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헤드랜턴이 있어 큰 위로가 됐다. 날은 추웠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참을 만했다. 준비해 간 귀마개도 보온 효과가 최고였다.

계곡을 따라 걷다 약 25분 정도 지나 옥양폭포를 만났다. 가야산의 유일한 폭포라 할 수 있다. 겨울인데도 물소리가 꽤 컸다.

모르긴 해도 선녀에 관한 전설이 전혀 없는 전국 유일의 폭포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무시해선 안 된다. 여름철 수량이 많을 때는 폭포라는 이름이 왜 붙여졌는지를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곡을 따라 걷다 약 25분 정도 지나 옥양폭포를 만났다. 가야산의 유일한 폭포라 할 수 있다. 겨울인데도 물소리가 꽤 컸다.
계곡을 따라 걷다 약 25분 정도 지나 옥양폭포를 만났다. 가야산의 유일한 폭포라 할 수 있다. 겨울인데도 물소리가 꽤 컸다.

계곡을 따라 계속 걷다보니 어느새 주변이 밝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헤드랜턴을 끄고 걸어도 될 정도였다. 대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길이 얼어 아이젠을 착용해야 했다.

마지막 약 500m 코스는 그야말로 ‘헐떡고개’다. 양쪽에 있는 로프에 의지해 끝도 없는 돌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낙오하기 십상이다. 그나마 다행히 중간 지점에 작은 샘이 있어 의지가 됐다. 바위 아래에 물이 솟아오르는 곳인데 주변에는 동물들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그렇게 난코스를 지나 오전 7시 55분 쯤 석문봉(653m) 정상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약 50여 명의 등산객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구름에 가려 실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40년 만에 일출 보려 산에 왔는디 어떻게 이럴 수 있댜?”

“말두 말어. 난 46년 만에 처음이여….”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뒤를 돌아 잠시 해 뜨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나 보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뒤를 돌아 잠시 해 뜨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나 보다.
서산시와 예산군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능선이 뻗었는데 남동쪽 원효봉에서 가야봉, 석문봉, 옥양봉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하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
서산시와 예산군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능선이 뻗었는데 남동쪽 원효봉에서 가야봉, 석문봉, 옥양봉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하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 (석문봉에서 바라본 서산 방향. 시야가 좋지 않다)

넋두리처럼 들렸지만 표정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뒤를 돌아 잠시 해 뜨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나 보다.

서산 쪽에서 올라온 것으로 보이는 청년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단체 사진을 찍어 분위기를 띄웠다. 멀리 해미읍성 쪽에서 풍물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시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내가 타 준 믹스커피 맛이 일품이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가야봉 쪽으로 향했다. 약 30m 구간에 걸쳐 로프에 의지해 내려와야 하는 코스가 있는데 군대 시절 “유격” 구호가 저절로 나왔다.

약 30m 구간에 걸쳐 로프에 의지해 내려와야 하는 코스가 있는데 군대 시절 “유격” 구호가 저절로 나왔다.
약 30m 구간에 걸쳐 로프에 의지해 내려와야 하는 코스가 있는데 군대 시절 “유격” 구호가 저절로 나왔다.
중간 지점에서 본격적인 하산 구간이 시작됐다. 급경사나 마찬가지어서 매우 조심했다. 역시 계곡을 끼고 내려왔는데 곳곳에 고드름이 장관이었다.
중간 지점에서 본격적인 하산 구간이 시작됐다. 급경사나 마찬가지어서 매우 조심했다. 역시 계곡을 끼고 내려왔는데 곳곳에 고드름이 장관이었다.

중간 지점에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됐다. 급경사나 마찬가지어서 매우 조심했다. 역시 계곡을 끼고 내려왔는데 곳곳에 고드름이 장관이었다.

약 한 시간 쯤 지나 가야산의 또 다른 볼거리 남연군묘에 다다랐다. 영화 <명당>에서도 다뤘듯이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로 알려진 곳이다.

영화에서는 권력에 눈이 먼 흥선대원군이 가야사를 불태우는 장면이 연출됐는데 실제로 그랬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발굴 결과 아궁이 자리를 제외하고는 불에 탄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약 한 시간 쯤 지나 가야산의 또 다른 볼거리 남연군묘에 다다랐다. 영화 '명당'에서도 다뤘듯이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로 알려진 곳이다.
약 한 시간 쯤 지나 가야산의 또 다른 볼거리 남연군묘에 다다랐다. 영화 '명당'에서도 다뤘듯이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로 알려진 곳이다.

풍수에 대한 식견은 없지만 좋은 자리라는 느낌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는 가야산에 약 10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원효봉에는 원효암터와 의상암터 등이 남아 있다.

맹정호 서산시장과 황선봉 예산군수, 그리고 충남도의회 김연 문화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이 가야산 주변 또는 내포신도시에 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설득력은 충분해 보인다.

하산을 거의 마칠 무렵 ‘가야산 지킴’이 선배 부부와 잠시 만나 반갑게 새해 인사를 나눴다.

10시 쯤 차에 올라 한 가지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2019년 한 해에도 충청을 위해 더욱 치열하게 뛰어보자’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우문현답 2019-01-02 11:00:11
역시 부지런한 기자님 답습니다.
올 한해도 변함없이 건강한 언론인 역할 기대합니다.

주민 2019-01-01 18:27:33
잘읽었습니다~ 가야산을 가보고 싶네요^^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