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
(35) 에디톨로지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03.25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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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저자 김정운 교수는 자칭 주변부 사람이다. 문화 심리학자인 그는 영미권이 아닌 독일에서 공부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것들을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가 강조하는것은 ‘에디톨로지(editology)’, 편집 학이다.그가 만든 용어다. 먼 훗날 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도록 영어로 만들었다나. 그는 ‘창조는 편집이다’고 단언한다. 스티븐 잡스의 천재성도 알고 보면 디자인이나 비전이 아닌 기존의 제품을 개량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편집 능력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 심리학에서는 말하는 ‘선택적 지각’이다. 자극을 주지 않으면 눈길조차 없다. 다시 창조하여야 한다. 창조는 편집이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아니다. 정보는 넘쳐난다. 문제는 정보와 정보를 엮어 어떠한 지식을 편집해 낼 수 있느냐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미네르바’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는 대단한 경제전문가가 아니다. 교수도 아니다.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였다. 그는 인터넷상에 떠돌아 다니는 잡다한 지식을 짜깁기 했을 뿐이다. 대학이 가진 지식 권력의 독점시대는 끝났다.

유학경험에서 겪은 독일 학문연구 경향은 “네 이론은 무엇이냐?”이다.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공부하고 있느냐이다. 독일학생들은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요약하여 카드화하고 정리한다. 이 카드를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시 편집한다. 카드 목록을 재구성하여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 간다.

네이버의 지식 검색은 무한한 편집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검색과 발견을 통한 지식의 에디톨로지가 미래 지식권력을 결정한다. 편집 가능성이 있는 지식이 좋은 지식이다.

얼마 전부터 예능쇼에 자막이 등장했다. 실제 멘트 아닌 내용이 많이 끼여있다. ‘무한도전’이 오랫동안 받은 시청자의 사랑도 알고 보면 자막의 힘이다. 일본 만화는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드라마 영화로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인기 배경에는 화면 편집에 있다. 일본 만화는 영상적 편집 방식을 입했다. 연기력이 형편없는 배우도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맥락의 화면을 이어 붙이는 몽타주 기법 때문이다.

영화에서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는 영화 음악도 편집 능력이다. 음악은 귀로만 듣는것이 아니다. 카라얀(1908~1989)은 청각과 각을 편집해 낸 최초의 뮤직비디오 제작자다.
동양은 서양에 비하여 근대화가 늦었다. 동양이 서구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시선의 일원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시선은 과학주의나 객관주의와는 전혀 다른 멀티플 퍼스펙티브(multiple erspective)였다. 관점이란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한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객관적인 세계지도조차 시대마다 지역마다 달라진다. 16세기 말 중국에 선교하러 온 마테오 리치(1552~1610) 부가 가져온 지도는 중화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중국이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다.그는 재빨리 동경 170도 부근을 중심으로하는 지도를 만들었다. 고흐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일관된 원근법을 포기하고 시각적 느낌에 따라 따로 표현했다. 피카소(1881~1973) 같은 화가는 눈으로 인식되는 연의 대상을 해체하고 대상을 재편집하여 다양한 형태로 표현했다. 회화조차 재현의 시대가 끝나고 편집의 시대가 시작된것이다.

우리가 문화 차이라는 생각되는 것들의 많은 부분은 공간 의식의 차이다. 공간 구성을 통하여 다양한 문화적 실천이 일어난다. 공간의 구조가 바뀌면 태도가 바뀐다.

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패망한 독일국민에게 ‘공간 없는 민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독일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직 공간 확장 밖에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도 이에 뒤질세라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국가들과 전쟁을 일으켰다. 세계화, 지역화, 현지화
라는 공간 개념도 일종의 공간 편집이다.

축구의 세련된 오픈 사이드 규칙은 다양한 공간 편집 능력으로 축구를 재미있게한다. 나아가 축구가 전 세계인의 인기 스포츠가 된 것은 TV 중계 때문이다. 수십 대의 카메라와 다양한 CG를 이용하여 선수들의 움직임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밤하늘의 별자리도 선을 그어 다양한 그림을 그려 캄캄한 밤 하늘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했다. 현대 군대도 비행기, 탱크, 대포의 운용으로 공간 편집이 이뤄지는 전술전략으로 바뀌었다. 백화점이나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앞이 재미있고 즐거운 것도 상품 전시나 분류에서 편집숍 덕
분이다.

같은 졸업 축사도 듣는 느낌이 다르다. 좌충우돌하는 스티븐 잡스의 연설은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지만, 빌 게이츠의 연설은 도덕 교과서 같아서 겉으로 우아하나 지루하다. 스스로 의미를 편집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천재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편집될 뿐이다. 대부분 천재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오래 산 천재도 없다. 대신 엄청 유명하다. 천재는 사회문화적인 편집 결과다. 심리학자인 저자가 세계적인 심리학자 프로이트(1856~1939)에 대하여 예를 들어 설명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이트는 21세기에 들어와 수많은 학자들이 사기꾼이고 자료를 조작한 엉터리 학자라고 엄청나게 비판받는다. 그렇지만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다양하게 편집해 설명한 사람이다.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심리학, 정신의학, 철학, 문학, 사회학에서 끝없이 편집되고 재편집되면서 진화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분야에서 프로이트 개념이 편집되어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역시 프로이트이다.

작가가 반복해서 강조한 주제는 ‘창조는 편집이다’는 주장이다.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아니다. 넘치고 넘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의 본질은 아주 익숙하고 진부한 장면을 낯설게 하기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

결론적으로 창조는 편집이다. 『에디톨로지』 이 책은 이미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사례와 비유
를 풍부하게 동원하여 편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기 좋은 책이다. 김정운의 글은 쉽다. 가볍게 일독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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