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신할까봐 물 먹여가면서 때렸다”....쇼트트랙 강국의 이면
“실신할까봐 물 먹여가면서 때렸다”....쇼트트랙 강국의 이면
[리뷰] ‘폭행’ 대물림 고발한 ‘PD수첩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
  • 지유석
  • 승인 2019.01.23 19: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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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쇼트트랙 코치진들의 폭행 실태를 고발했다. Ⓒ MBC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쇼트트랙 코치진들의 폭행 실태를 고발했다. Ⓒ MBC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여자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맞는 게 고통스러우니까 울고 이럴 것 아니에요. 울면서 눈물도 나고 콧물도 흘리고 그러니까 (당시 전명규 코치가) 물을 먹여가면서 때리더라고요.”

전 국가대표 스케이트 선수였던 여준형 씨가 'PD수첩' 제작진에게 털어 놓은 전명규 교수의 폭행 사례다.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22일 '얼음왕국의 추악한 비밀'편을 통해 쇼트트랙 종목에서 횡행했던 선수 폭행·성폭행 실태를 폭로했다. 

전명규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저지른 폭행은 경악스럽기 이를 데 없다. 더구나 선수가 실신할까봐 물을 먹여가며 때렸다는 증언에서는 말문이 막혀온다. 

일선에서 지도하던 시절, 전 교수의 키는 185cm에 몸무게가 90~100kg 가량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린 선수들의 머리채를 붙잡고 흔들고, 물을 먹이고 때렸다니, 폭행이 아니라 고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더욱 놀라운 건, 전 교수가 자랑 삼아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신이 쓴 책에서까지 폭행을 옹호했다. 이 지점에서 용어는 분명히 하자. 전 교수는 '체벌'이라는 낱말을 썼지만, 폭행이다. 전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체벌도 표현이다 - 체벌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체벌을 당해도 믿음이 있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믿음만 있으면 죽이든 살리든 난 저 사람만 따라가면 된다는 믿음만 있으면 그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전 교수는 폭행을 마치 '비기'라도 되는 양 제자들에게 대물림했다. 한 스케이트 선수의 어머니는 조재범 코치 이전엔 폭행이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전 교수는 왜 이렇게 선수들을 때렸을까? 전 교수에게 5년 동안 지도를 받았던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주민진 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증언한다.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주민진 씨는 전명규 교수가 상습적으로 선수들을 폭행했다고 폭로했다. Ⓒ MBC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주민진 씨는 전명규 교수가 상습적으로 선수들을 폭행했다고 폭로했다. Ⓒ MBC

"폭행을 많이 방법으로 쓰셨죠. 훈련의 경기력을 높이기 위한, 주로 손이나 발을 많이 이용하셨고. 여자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머리채를 잡고 머리가 많이 빠질 때까지 흔든다든가, 그러니까 머리채를 흔든다고 생각하실 텐데 대부분 왜 풍선 마네킹 있죠? 그렇게."

쇼트트랙 종목에서 횡행했던 코치들의 폭행·성폭행은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조재범 코치가 심 선수를 때린 이유 역시 경기력 향상과 이에 따른 결과, 즉 금메달이었다. 조 코치는 옥중편지를 통해 전명규 교수가 심석희 선수 문제로 자신을 압박했다고 적었다. 

선수폭행은 비단 쇼트트랙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쇼트트랙이 워낙 국민적 관심이 높은 종목이어서 파장이 일고 있지, 비인기종목에서 벌어지는 선수폭행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전명규가 구축한 ‘쇼트트랙 캐슬’

문제는 성적 지상주의다. 전 교수가 선수 폭행에도 오히려 빙상계에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그의 지도아래 나온 세계대회 메달만 780여개에 이른다. 더구나 불모지나 다름 없는 빙상종목에서 대한민국을 쇼트트랙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으니 전 교수로서는 우쭐할 수밖엔 없다. 

학부모들도 자녀들이 폭행당하는 걸 알면서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당장 자녀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자칫 선수 생명마저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SKY캐슬>이 떠오른다. 이 드라마엔 명문대 진학률 100%를 자랑하는 입시 코디 김주영(김서형 분)이 등장한다. 

김주영은 자신이 맡은 학생을 전교 1등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유력한 경쟁학생을 뒷조사하는가 하면 학교 내부자와 공모해 시험지를 빼돌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딸 예서를 맡긴 한서진(염정아)은 김주영의 행태를 알면서도 딸의 미래를 생각해 묵인한다. 

쇼트트랙 종목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흡사 <SKY캐슬>의 이야기를 빙상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드라마에서 김주영이 학생 고객을 1등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듯 전명규 교수를 정점으로 한 쇼트트랙 코치진들도 금메달을 목표로 선수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또 김주영의 악행을 알면서도 한서진이 딸의 미래를 생각해 묵인하듯, 선수 부모들도 자녀들의 선수생명을 생각해 손을 놓을 수밖엔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얻은 금메달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아래 3가지를 약속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3원칙, 특히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원칙은 그 어느 부문 보다 쇼트트랙 종목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쇼트트랙 코치진들의 폭행 실태를 고발했다. Ⓒ MBC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쇼트트랙 코치진들의 폭행 실태를 고발했다. Ⓒ MBC

그동안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코칭스태프에게 달려가 기뻐하는 장면을 자주 봤다. 그때마다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을 격려했고,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보는 국민들은 열광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장면은 끔찍하다. 선수들을 격려하는 코치들이 바로 폭행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서강대 스포츠교육학과 정용철 교수는 아주 뼈아픈 지적을 남긴다. 정 교수의 말이다.

"어쩌면 온 국민이 공범이다 라는 얘기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행복해했거든요. 심석희 선수 금메달 딸 때 이 어린 선수가 정말 당당하게 (메달을) 따는 모습 보면서 같이 기뻐하고 근데 그때 부둥켜안고 울던 그 코치들이 가해자들이에요.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일종의 알리바이를 주는 거예요. ‘메달 땄는데 내가 그렇게 행복하게 해주지 않았느냐’ 이게 아주 결정적인 그분들의 멘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쇼트트랙 금메달에 환호하지 않겠다.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좋으니 선수들이 그저 환하게 웃으며 경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들을 때려야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충만한 지도자들이 스포츠계에서 발붙이지 못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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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쵸 2019-01-30 15:09:52
부끄러운 금메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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