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유가족이 나서지 않았다면....
[노트북을 열며] 유가족이 나서지 않았다면....
고 김용균 씨 사태, 사업자·정부 변화 이끌어 내는 계기 되기를 
  • 지유석
  • 승인 2019.02.06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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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2일 태안서부발전에서 있었던 기자회견 당시 고 김용균 씨 유가족. 가운데가 어머니 김미숙 씨. Ⓒ 지유석
지난 달 22일 태안서부발전에서 있었던 기자회견 당시 고 김용균 씨 유가족. 가운데가 어머니 김미숙 씨. Ⓒ 지유석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제 아들, 빛 같은 그 아들이 나라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모르겠고,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아들의 처참한 죽음에 제 가슴은 너무 억울하고, 분통 터지고, 가슴에 커다란 불덩이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 느낌 때문에 용균이 동료들, 다른 사람들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 부모들이 저 같은 아픔 겪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설날인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태안서부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한 말이다. 

김 씨는 아들을 잃은 뒤 장례마저 미루고 서울과 태안을 분주히 오갔다. 국회의원들을 만났고,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섰다. 그때마다 외쳤다. '아들과 같은 죽음은 없게 해달라'고.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 해 12월 '김용균법'이라 이름 붙은 산업안전보건법(산언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김 씨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산안법이 통과되었지만, 고 김 씨의 동료들은 이 법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들의 업무가 개정안의 ‘위험작업’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또 위험의 외주화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고 김 씨 사망사고 진상규명 등 핵심 의제에 관한 논의도 지지부진했다. 

이러자 김 씨는 지난 달 22일 아들의 빈소를 서울로 옮겼다. 그리고 정부에 책임 있는 답변을 달라고 호소했다. 

당정은 5일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진상규명위원회 구성, 재해사고 발상시 원하청을 막론하고 해당 기관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을 담은 후속대책을 내놓았다. 시민대책위 쪽과 72시간의 협상 끝에 나온 합의안이다. 

실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착잡한 감정은 지울 수 없다. 고 김 씨가 숨진 뒤, 사건의 근본원인이 위험의 외주화에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주체는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노동자라는 점도 함께 드러났다. 

이에 고 김 씨의 유가족과 동료들, 그리고 시민사회는 위험의 외주화 중단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사태 흐름을 되짚어 보면 태안서부발전·정치권· 정부가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가족이 목소리 내야 움직이는 사업자·정부 

다시 말하면 유가족이 나서고, 시민대책위와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내자 마지못해 대책마련에 나섰다는 말이다. 시민대책위가 밝힌 입장에서도 이 같은 감정이 묻어난다. 당정의 고 김용균 사망사고 후속대책이 발표된 직후, 시민대책위는 이 같은 입장을 표했다. 

"여전히 해결은 멀다. 오늘 정부 발표는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끝으로 위험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관행을 바로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기관으로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지만, 유기적으로 통합된 발전 업무가 원청과 하청으로 나뉘는 ‘외주화 구조’는 극복되지 못했다. 

우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공기업에 똬리를 틀고 발전 산업의 민영화와 외주화를 추진해 온 적폐 세력의 공고한 카르텔, 그것을 핑계 삼는 정부의 안일함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부 여당의 발표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 낸 노동자와 시민의 힘을 우리는 믿는다. 시민대책위를 중심으로 뜻을 모아주신 시민들, 유가족과 현장 노동자의 투쟁 없이는 오늘의 발표도 불가능했다."

시민대책위의 입장을 뒤집어 보자. 유가족과 현장 노동자가 가만히 있었다면, 시민사회가 연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약속과 위험의 외주화 중단 논의는 없었을 것이란 말이다. 

우리 사회는 고 김용균 씨 사망사건 이전에도 자식 잃은 부모가 책임 있는 대책 마련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오고, 심지어 곡기까지 끊는 모습을 익숙하게 봐왔다. 

5년 전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이다. 고 김 씨의 유가족 역시 세월호 유가족과 비슷한 일을 감내해야 했다. 

이젠 걱정이 앞선다. 또 다시 고 김 씨의 사망사고 처럼 위험의 외주화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숨졌을 때, 유가족이 목소리를 내지 않고, 대책위가 꾸려져 단식농성 하지 않고, 시민사회가 연대하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 말이다.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가족이 나서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앞서 사업주와 정부기관이 책임 있는 자세로 사태 수습에 나서기 바란다. 

유가족은 오는 9일 미뤘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또 다른 김용균을 막고자 말 그대로 백방으로 나선 어머니 김미숙 씨에게 위로와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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