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동네에서 문화가 자라는 사랑방
[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동네에서 문화가 자라는 사랑방
(94)문화 시공간 ‘에트’에서 만난 사람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9.0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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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기자] 대전역에서 목척교까지 거리는 3백 미터 정도로 처음 대전을 방문한 사람이 두리번거리며 걷기에 지루함이 없다. 이제 목척교를 건너면서 대우당약국이 보이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대전천을 따라 5십 미터만 걸어보자.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익숙한 건물 1층에 하얗게 테두리를 두른 깨끗한 공간 하나를 만난다. 그런데 여기에는 공간의 정체를 말하는 간판 하나 없다. 입구에 새워진 작은 입간판에 분필로 쓴 ‘에트(@AT)’라는 이름이 전부이다.

이야기의 시작이 왜 대전역이었는지, 또 간판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래서 이 공간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속 시원하게 얘기를 풀어내기 위해 만난 사람은 한남대학교 건축학과에 몸담고 있는 한필원 교수이다. ‘에트’의 정체를 알기 위해 한필원 교수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에트’라는 공간을 열고 연구원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한필원 씨를 소개하는 글의 첫줄은 지역 건축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건축과 교수이다. 그리고 둘째 줄은 아시아 건축연구실, ATA(Asian Tradition in Architecture)을 운영하고 있는 학자이다. 이 연구실을 바탕으로 연구원들과 함께 생산활동과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주로 아시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연구실입니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을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답사하고 조사해왔어요. 그래서 문화유산과 의미 있는 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학교에서는 건축을 가르치지만 방송대학에서는 관광학을 강의합니다.”

ATA의 홈페이지는 방문자가 5천만 명 넘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이트로 전 세계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전문가 사이트 중 하나라고 한다. 이런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필원 교수는 활동 영역을 계속 넓히고 있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자문NGO기구인 이코모스(ICOMOS)의 한국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한필원 교수가 직접 풀어놓는 자기소개는 유쾌하다.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지역 건축을 공부하고, 책도 쓰고, 기획도 하고, 건축설계도 하고, 마을도 설계하고, 도시도 설계하는, 관심사가 넓은 지식의 잡상인? 하하”

북카페 ‘에트’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한필원 교수의 활동을 더 들어보아야 한다. 이때 나온 답이 문화이다.
“문화는 사는 일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한필원 씨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영역은 경계를 두지 않은 문화 전반이자, 우리 삶 자체라는 말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그는 공부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하고 실물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전에서 한 활동만도 기록하자면 줄이 길다. 중앙시장 리모델링의 기본계획을 수행했고,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을 대전창작센터로 기획해 문화의 장으로 만들어내는 등 도시재생의 좋은 성공사례들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또 대전의 오래된 마을들을 조사해서 만든 보고서들뿐 아니라 문화유산에 관한 연구조사도 큰 몫을 차지한다.

대전의 원도심에 대한 관심 또한 깊다. 현장에서 모든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그의 방법론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20년 넘게 원도심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을 직접 조사하고 그림이나 사진, 도면 등으로 기록물을 남겼다. 중앙시장을 리모델링할 때에는 중앙시장의 24시간을 두 대의 비디오로 찍어서 비로소 시장이 사람들에게 어떤 장소인지 확인했으며 2008년 중앙데파트 폭파철거 현장은 파편이 튀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영상을 찍었다. 당시 같은 위치에는 어느 방송사 기자 한명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또 느리게 변화하는 원도심의 깊숙한 속내를 기록해온 것이다.

이렇게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한필원 교수의 활동영역들을 열거한 이유는 ‘에트’라는 공간에 이 역할들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에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온몸을 둘러싸는 구수한 커피향을 느낄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두 개의 벽면을 채운 책장이 눈에 들어오고 대전천을 향해 탁 트인 전면 창과 거기서 쏟아지는 빛을 온전히 담고 있는 카페 공간을 만나다. 여유 있게 배치된 탁자와 의자들은 고전적인 색채를 띠면서도 간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왼쪽 벽면 뒤에는 살짝 숨은 듯한 사무실 공간이 눈에 띄고 오른쪽 유리문 안으로는 두 개의 심플한 회의 공간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에트’를 설명하자면 북카페이고, 서점이면서, 회의공간이고, 창작스튜디오가 함께하고 있는 곳입니다. 창작스튜디오에서는 건축과 관련된 연구용역, 설계프로젝트, 문화재 조사 등을 하고 있죠. 이곳은 이런 복합공간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간은 시골 마을의 정자 같은 곳이라고 할까요? 거기 가면 동네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일단 자리에 앉아 ‘에트’가 최고 맛이라 자부하는 커피를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하나둘 새록새록 관심이 간다. 북카페이기에 서가에 눈길을 주다보면 다양한 책들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가의 아래쪽은 주택입니다. 이렇게 집에서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면서 마을, 다음 도시, 대전이라는 도시도 찾아볼 수 있죠. 그 위는 문화유산, 세계유산입니다. 그리고 여행입니다. 여행도 가이드북 수준이 아니고 아시아에서 문화와 전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가볼만한 곳을 집성해 놓은 책들입니다. 우리가 번역하고 것도 있고 우리나라 전국의 460여 곳의 역사와 문화, 삶의 현상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을 찾아 직접 쓴 책도 있어요. 대형 서점에도 없는, 우리만 가진 책들이 많아요.”

이런 책들 중에 읽다가 가지고 싶은 책이 있다면 살 수도 있다. ‘에트’는 서점으로도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ATA연구실의 연구 결과물들을 비롯해 20년 넘게 진행한 답사자료와 기타 연구물들을 실비로 구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에트’는 문화 사랑방이자 도시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추구하면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쉬는 곳이죠. 문화와 함께 더위도 피해가고 추위도 피해갈 수 있는 곳.”  

화제는 ‘에트(at)’라는 이름으로 돌아갔다.

“‘at’는 시간과 장소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우리 연구실이 아시아의 전통을 연구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어요. ‘at A’이죠. 그리고 굳이 간판을 달지 않은 이유는 간판이 경관을 침해하는 경우도 많은데다 우리 존재 자체가 간판이잖아요? 여기서 책 읽고, 엎드려 자고, 커피 마시고, 이야기 하고, 이런 모습이 자연스레 간판이 되는 거죠.”

이렇게 존재 자체가 간판이 되는 ‘에트’는 대전의 간판이 되려하고 있다. ‘에트’가 역에서 가까운 원도심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부터 3년 동안 대전방문의 해입니다. 그런데 대전을 잘 모르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대전에서 ‘에트’를 찾으면 어디를 가볼지 친절하게 소개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대전은 어디를 가야하는지, 어디는 안 가도 되는지, 이곳에서 진짜 대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대전이 더 좋은 도시가 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거죠. 이제 대전을 찾는 사람은 대전역에서 조금 걸어 ‘에트’에 가라. 이렇게 얘기하세요. 그러면 대전뿐 아니라 크게 아시아는 어떤 곳인지까지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좋은 공간과 장소를 누리는 일이 행복한 삶의 요소라는 거죠. ‘에트’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이 되면서 좋은 장소의 좋은 모델이 되기를 바랍니다.”

돈이 없으면 품격을 지키기 어려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에트’는 돈이나 지식의 양과 상관없이 푸근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되겠다는 약속이다. 이제 대전에서 길을 잃으면 대전천변에 있는 ‘에트’를 먼저 떠올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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