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탁의 우리역사의 비밀] 동북방 기마민족 비칭 바로잡아야
    [김탁의 우리역사의 비밀] 동북방 기마민족 비칭 바로잡아야
    한국 고대사에 나타나는 우리 민족의 호칭에 대한 고찰 - ① 역사왜곡의 출발점
    • 김탁 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
    • 승인 2019.03.1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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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김탁 우리역사바로알기 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 한국고대사를 공부할 때에 가장 가장 혼란스러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지나 역사가들이 저술한 문헌에서 고대에 우리 민족을 구성하는 집단들의 명칭을 멋대로 지어서 불렀다는 사실이다. 씨족 혹은 부족집단들의 역사적인 유래나 특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자로 음사音寫하거나 의역을 했기 때문에 마치 우리 민족과는 전혀 무관한 외곽지대의 타민족처럼 인식하게 왜곡하였다.

      

    공자 (출처, 위키백과)
    공자 (출처, 위키백과)

    공자가 [춘추]를 편찬하면서 자신의 출신국가인 노나라와 주나라를 자나사의 적통으로 규정한 이래 한무제 시대에 동중서를 중심으로 하는 춘추공양학파가 득세하여 소위 춘추사관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지나 역사기술의 대원칙으로 만들어 버렸다.

    춘추전국시대(BC 770 - BC221) 인물인 공자(BC551-BC479는 중원대륙의 고대 역사를 요,순임금과 주周나라를 중심으로 기술한 <서전>과 <춘추>를 펴냈다. 주周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서쪽 지나족이 세운 나라로서 공자는 주나라를 건국한 문왕, 무왕과 무왕을 보좌한 주공 단旦을 주조삼성周朝三聖이라고 하여 모든 중국인이 표상으로 삼는 인물로 그려냈다.

    문왕의 아들이고 무왕의 동생이기도한 주공은 주나라를 건국한 공으로 후일에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에 봉해지는데 공자는 그가 태어나기 500년전에 노나라를 일어킨 주공을 이상적인 성인으로 흠모했다. 공자가 현실정치에 실망해서 구이九夷에 살고싶다고 했다지만 그가 태어난 노나라는 주나라의 적통을 이어받은 노나라이었으니 공자가 주나라를 적통으로 하는 역사관을 세운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이어서 한나라 무제시대(BC141- BC87)에 등장한 사마천은 궁형의 치욕을 보상이나 하듯이 역사책인 <사기>를 집필함으로서 중화역사관을 체계화했다.

    사마천과 동시대에 동중서라는 뛰어난 인물이 등장해서 회남자 유안이 이끄는 회남학파를 꺽고 공자가 저술한 <춘추>역사관을 정통 역사관으로 확립했다. 이들을 춘추공양학파라고 하는데 영토확장에 성공한 한무제의 문화통일 시책을 주나라, 노나라 중심의 중화역사관을 정립함으로서 적극 뒷받침하게 되었다.

    공자와 동중서에 이어서 이러한 역사관을 결정적으로 고착화 시킨 인물이 왕망과 함께 한나라를 뒤엎고 신新나라를 건국하는데 이론적인 바탕을 제공한 유흠劉欽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대표적인 유가 어용학자로서 공자가 편찬한 <서경>이 제시한 역사관을 정치 이데올로기화 해서 그 누구도 비판과 이론異論을 제시할수 없도록 중국 역대왕조의 기본 통치이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유교 역사관은 한,중,일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지나족 중심으로 고착화시키는 국제규범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소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하여 황하강 하남성을 중심으로 여타 주변 민족에 대한 비하와 왜곡은 이후 중국 역사가들의 풍조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들이 저술한 역사책에서 지나족을 높히고 동북방 민족을 낮추어서 부르는 비칭은 정말 다양했고 우리는 이러한 중국 역사책으로 공부를 해온 것이다.

      

    지나 한족은 역사를 기록하는 3대원칙을 세우고 모든 역사기록은 이 원칙에 준하여 가감,삭제되었던 것이다.

    위한휘치 爲漢諱恥, 한漢을 위하여 치욕을 감춘다

    존화양이 尊華攘夷, 화華족을 존중하고 변방 오랑캐를 낮춘다

    상내약외 詳內略外, 지나족 내부의 일은 상세하게 기록하고 외부의 역사는 간략하게 기록한다.

    이러한 역사관은 지난 2천여년 동안 많은 지나족 역사가들이 저술한 문헌에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자체 기록이 부실하고 멸실된 우리로서는 그나마 동이 배달민족의 기록을 전하고 있는 사마천의 [사기], 범엽의 [후한서], 반고의 [한서], 진수의 [삼국지]등 소위 전4서에 기록된 <동이전> <흉노전>과 같은 문헌들을 보고서야 우리 역사를 알 수 있으니 과연 얼마나 충실하게 우리 역사의 진실을 기록했는지는 의문일수 밖에 없다. 타민족에 대한 침략은 토벌이나 정벌이라는 표현으로 정당화 하고 전쟁에 나가서 패한 기록은 축소하거나 아예 생략했다. 싸움에서 지고 굴욕적인 보상을 해주고 돌아온 경우에도 황제가 하사품을 내리고 왔다고 기록한 것이 지나인들의 역사 이었다.

      

    고구려를 침공한 당태종 이세민이 연개소문에게 항복하고 유주와 영주의 땅을 내어 주었고 위만조선을 침범한 한무제의 군사가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도 이를 숨기는 것이 지나족이 기록한 역사이었다. 이런 역사관을 당연시하고 비판없이 수용함으로서 저들을 대중화국으로 받들게 되었고 우리는 소중화의 나라로 전락했다.

    삐뚤어진 역사관으로 바라본 우리 고대사는 명칭부터 왜곡되었다. 지나 한족의 존화양이라는 중화사관에 입각하여 바라본 주변국가 민족에 대한 비하. 왜곡은 지나치다 못해 한심한 수준이다. 특히 우세한 무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중원을 침공하고 괴롭힌 동북방 기마민족에 대한 비칭사용은 역사가의 양식을 의심해야할 정도이다. 지나 한족들이 지어낸 한자호칭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동이東夷, 숙신肅愼, 예濊, 맥貊, 말갈靺鞨, 흉노匈奴, 물길勿吉, 여진女眞, 선비鮮卑,몽골蒙古 등이 있으나 여기에 좋은 뜻으로 붙여준 이름은 하나도 없다.

      

    ♥흉노匈奴 ; 유럽에서는 훈 Hun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원래는 스스로 Shunnu "슌누" 라고 부르는 북방유목민족이다. 슌누는 천손족, 태양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뜻인데 한족들이 "시끄러운 새끼들" 이라는 뜻의 흉노로 기록했다. 우리는 향기로울 훈薰으로 역사책에 고쳐서 기록해야 한다.

    ♥물길勿吉 ; 재수 없는 놈들이라는 비칭이다.

    ♥말갈靺鞨 ; 자의로만 보면 버선과 가죽신 신고 다니는 놈들이라는 뜻이다, 버선 말靺, 말갈 갈鞨=가죽 혁革+갈曷. 물길과 말갈은 같은 종족을 달리 표현한 말로서 "맥고리" "맥구려" 를 음차해서 말갈로 불렀다는 주장이 있다.

    ♥선비鮮卑 ; 비卑는 낮다는 뜻으로 종놈, 노비를 뜻한다. 천한 조선, 숙신의종놈이라는 뜻이다. 선비족의 탁발씨족은 하북지역에 오호십육국의 하나인 북위를 건국한 상고 동호족의 한 갈래이다. 북위는 한족동화정책을 펴서 한족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수, 당을 건국한 중심세력이다.

    ♥여진女眞 ;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 요나라가 고 말갈족에게 붙여준 비칭이다. 요나라가 말갈, 발해 유민을 비하하기 위하여 생여진과 숙여진으로 나누어서 불렀다.

    ♥몽고蒙古 ; 어리석고 캐캐묵은 놈들 이라는 뜻이다. 몽골은 상고 한민족 맥고리에서 얻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시위족, 선비족, 거란족과 친연성이 있다.

    ♥구려九黎, 句麗 ; 고구려는 Cauli "까올리" "구려" 에서 나온 말이고 산골짜기 혹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우리말 "골" 을 구려로 표기한 것이다. 역사서에 보이는 홀승골, 할힌골은 모두 상고시대의 지명이다. 신나라를 건국한 왕망은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麗로 비하했다. 구려는 조선과 함께 드물게 보이는 미칭이다.

    비칭을 미칭으로 개정한 한국 역사책을 다시 써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역사를 가르치고 배웠으니 아무리 우리 역사를 공부한들 중국을 두려워하고 숭상하는 중화사대 역사관만 형성되었을 뿐 우리 민족과 역사에 대해서 털끝만한 자부심이라도우러 날 수 있었겠는가 ?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고려 조선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한족들이 비칭으로 표현한 만주지역의 종족명이나 국명은 마치 우리와 관계없는 타민족 호칭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자체적인 문헌자료가 부족하다가 보니 다른 나라 역사가들이 기록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동이, 구이, 숙신, 동호, 오환, 선비, 거란, 여진, 말갈, 물길, 읍루, 옥저, 예, 맥, 부여, 구려와 같이 뜻모를 한자로 표현한 종족명칭들이 쉽게 우리 민족처럼 다가오지 않는 것은 오랫동안 중화사대 역사관에 젖어서 북방만주사를 마치 오랑캐 역사처럼 인식한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북방 제 족속들을 애써 구분하고 서로 다른 집단처럼 묘사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같은 종족을 서로 다른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의字意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을 이해하면 우리 상고사와 상고 한민족에 대한 이해가 훨씬 넓어질 것으로 보고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종족명칭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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