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 장면 1.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08년 2월, 당시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는 새 정부 조각 명단에 포함된 충청 출신 인사를 찾아내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간신히 찾아낸 1명 정도의 장관을 타이틀로 기사를 써 내려가던 중, 옆 부스 호남권 기자들 사이에서는 마치 나라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호남권 출신은 최소 2명 이상이었는데도 말이다. 10년 동안 이어져 온 호남(또는 호남 기반) 정권이 무너진 것에 대한 상실감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 장면 2. 19대 총선을 통해 당선된 새누리당 강창희 국회의원(대전중구)이 헌정사상 최초의 충청 출신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지역 기자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기 위해서인지 강 의장은 충청권 기자들을 한남동 공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한 적이 있다. ‘이런 날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의장실에 있던 타 지역 출신 인사들이 “오늘 공관 만찬은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며 보도를 막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분위기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전임자인 박희태 국회의장은 영남권 언론사들과 더 자주 만났고, 심지어는 부스까지 찾아와 그들만의 티타임을 갖기도 했는데 말이다. ‘고기도 먹어 본 ×이 맛을 안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 장면 3. 34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한국자산관리공사 상임이사(본부장)로 간 남궁영 충남도 행정부지사가 지난 2월 14일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충청권 홀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에 가서 느꼈고, 지방공무원 하면서도 경험했던 것인데 대전‧충남의 정치적 비중이 선거 과정에서는 굉장히 크지만 정작 그에 대한 정무적인 대우는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지만 ‘충청 출신 공직자라는 것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저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3.8 개각 이후 ‘충청홀대론’이 본격 대두되고 있다. 지역 출신 장관이 배출되지 못한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주된 원인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자꾸만 지연되고 있는 혁신도시 지정과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 무산 및 수도권 입지, 평택~오송 복복선 천안아산역 무정차, 금강수계 보 철거 등 지역의 여론에 반하거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결정이 잇따르면서 충청권의 민심은 크게 동요하고 있는 분위기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1일 공개한 3월 1주차 주간 집계에서 충청권의 자유한국당의 지지율(33.2%)이 더불어민주당(32.7%)에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로 요즘 충청권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움직임을 보면 야당인지 여당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여당 소속 충남도지사가 지역 국회의원 또는 시장·군수들과의 자리에서 균형발전을 촉구하거나 평택~오송 복복선 천안아산 정차역 설치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금강보 처리방식에 대해서도 “농업용수 등 금강 물 이용에 불편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를 향해 선(先)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지역의 여권 인사들과 문재인 정부(청와대)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기자와 만난 자유한국당 한 국회의원은 “정부를 향한 촉구는 야당인 우리가 할 일인데 요즘은 더불어민주당이 더 하는 것 같다”며 실소를 금치 못하기도 했다.
‘충청홀대론’의 이면에는 총선을 1년 여 앞둔 야권의 정치공세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다고 정부여당이 이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토박이인 기자도 충청도의 민심을 정확히 안다고 할 순 없지만,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발생했을 땐 반드시 표로 응징(?)해 온 것이 우리 지역 선거의 특징이다.
‘충청홀대론’의 밑바탕에는 한 번도 정권을 창출해 보지 못한 충청인의 서러움(또는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지만, 정부여당이 ‘충청홀대론’에 자꾸만 자양분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당시 민주당을 이끌었던 정세균 대표는 국회 지방기자단과의 오찬에서 “당의 지지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리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밝힌 적이 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지금의 여권이 그 당시의 기억을 너무 빨리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충청민심의 이반은 정권실패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부디 기억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