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미의 세상읽기] 엄마의 낙(樂), 유성 오일장
    [김선미의 세상읽기] 엄마의 낙(樂), 유성 오일장
    항일정신 깃든 100년 역사와 전통에 재개발 빗장 열어젖힌 대전시
    • 김선미 편집위원
    • 승인 2019.03.19 14: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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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미 편집위원
    김선미 편집위원

    [굿모닝충청 김선미 편집위원] “유성 장날 마다 날씨가 왜 이런지…”
    꾸물꾸물한 잿빛 하늘에서 한 두 방울씩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자 어머니는 지난 번 장날도 날씨가 나빴다며 두런두런 하시면서도 장바구니를 챙기신다.

    마트나 백화점에 익숙하지 않으신 어머니는 평소에도 소소한 반찬거리를 사러 이제는 전통시장으로 칭하는 재래시장을 즐겨 찾으신다. 별다른 취미도 재밋거리도 없는, 여든이 훨씬 넘으신 엄마의 낙(樂)이다.

    여든 넘은 내 엄마가 애정 하는, 풍성함과 활력이 넘치는 그곳

    유성장, 정확히는 유성 5일장은 엄마가 가장 ‘애정’ 하는 장터다. 귀찮고 힘들 법도 하실 텐데도 집 근처의 시장을 놔두고 굳이 유성장으로 발걸음을 하시는 어머니에게, 그다지 살갑지 못한 딸은 장에 모시고 가는 대신 온갖 잔소리를 하곤 한다.

    “다리 아프다면서…” “무거운 짐을 어떻게 하려고…” “우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거기까지 가시느냐”며 입으로만 걱정 아닌 걱정을 한가득 늘어놓기 일쑤다. 어머니가 식구들의 구박(?)을 무릅쓰며 유성장을 찾는 이유는 철따라 나오는 값싸고 다양한 농산물이 풍성하고 활력이 넘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휴지를 반으로 나눠 쓰고, 투명 비닐봉투도 뒤집어 다시 사용할 만큼 알뜰하고 검소한 분이시다.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이런 어머니가 그래도 아끼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식구들 입에 들어가는 반찬거리다. 바닷가 가까운 고향 덕에 특히 생선을 고르는 기준이 꽤나 까다로우시다.

    수십 년 단골의 안부를 서로 걱정하는 사람내음 가득한 축제의 장

    유성장에 가면 철따라 고향 바다에서 신선한 생선과 해산물을 가져오는 분이 있다고 한다. 수십 년 단골이다. 값은 조금 비싸도 속이지 않아서 좋다고 하신다. 어느 날은 그분이 나오지 않았다며 어디가 아픈가 걱정을 하시기도, 어느 날은 찾는 생선이 없어 빈손으로 왔다며 섭섭해 하시기도 한다.
     
    어쩌다 한 번 따라나선 장터에서 노점상이 너무 많아 다니기 불편하다고 했더니 어머니 말씀이 시장에 노점상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된다고 한다. 시골에서 자신이 농사지은 농산물을 직접 가져와 파는 농민들 보다 ‘되메기’ 장사가 더 많아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이 경험에서 나온 어머니의 지론이다.

    되 판다고 해서 ‘되메기’인지 가격을 되 매긴다고 해서 ‘되매기’인 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가 아니면 듣기 어려운 구수하고 생생한 장터 풍경을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요건 미비로 반려한 조합설립인가, 대전시 시유지 동의로 개발 길 터줘

    1916년부터 100년 넘게 이어진 유성시장·유성 오일장은 도심 속의 전통장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5일장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상징성도 크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을미의병 거사를 일으킨 역사의 현장이다. 또 1919년 3.1만세 운동을 벌인 항일 유적지이다.

    100년 전통의 역사적 현장인 유성 오일장이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애당초 유성시장과 오일장이 있는 ‘장대B구역’ 재개발 사업은 일부 토지가 국공유지여서 재개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토지소유주와 토지면적이 재개발 허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유성구청도 이를 근거로 조합설립인가 신청을 반려했다.

    시유지 동의는 재산상 변동사항, 과장 전결 처리 사안 아니라는 지적

    그런데 대전시가 느닷없이 ‘시유지 사용’에 동의를 해주면서 재개발의 빗장을 열어젖힌 것이다. 대전시에 "투기세력이냐!”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시유지 사용 동의가 시 과장의 전결로 처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성오일장 지키기 대책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경악과 격앙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불거진 중요한 지역 갈등 현안을 어떻게 ‘과장’ 혼자 처리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법적 절차와 규정을 모두 지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부분도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 시유지 사용 동의는 법인인 대전시의 재산변동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과장 전결로 처리할 수 없다는 지적과 절차상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유권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대전시는 투기세력? 부디 역사와 전통 앗아가는 우 범하지 않기를

    장날이면 300여개의 상설점포와 1200여명 노점상이 장을 열고 1만여 명의 주민들이 찾아 축제의 장을 만드는, 150만 대전시민이 아끼고 즐겨 찾는, 항일정신이 깃든 100년 전통의 유성시장을 하필이면 3.1운동 100주년에 없애야만 하는지, 대전시의 무신경과 무감각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제 공은 대전시로 넘어갔다.

    19일, 오늘은 4·9장인 유성장이다. 햇살이 눈부시다. 오늘, 엄마는 장 나들이를 가시지 않았으나 항일정신이 깃든, 한 세기를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온, 내 엄마의 낙이기도 한 100년 역사의 사람냄새 나는 장소를 대전시는 개발의 이름으로 앗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재개발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역사와 전통마저 없애는 것이 도시재생은 아닐 것이다. 대전시가 투기세력이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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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 2019-03-19 16:24:10
    "엄마의 낙" 때문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