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보복성 학살… ‘한국판 쉰들러’ 공덕비도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보복성 학살… ‘한국판 쉰들러’ 공덕비도
    화해와 평화의 땅 제주도 ⑪ 끝-의인이 잠든 땅
    • 김형규 자전거 여행가
    • 승인 2019.03.26 08: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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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덕정은 1448년 제주목 관아의 부속건물로 건립됐다. 1947년 관덕정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죽으면서 4.3사건의 도화선이 됐다.
    관덕정은 1448년 제주목 관아의 부속건물로 건립됐다. 1947년 관덕정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죽으면서 4.3사건의 도화선이 됐다.
    현의합장묘 가는 길에 의귀마을 주변의 4.3사건 유적을 표시해놓은 다크투어리즘 안내판이 서있다.
    현의합장묘 가는 길에 의귀마을 주변의 4.3사건 유적을 표시해놓은 다크투어리즘 안내판이 서있다.

    [굿모닝충청 김형규 자전거여행가] 서귀포시에서 동쪽으로 1119번 중산간도로를 타고 20㎞쯤 가다보면 남원읍 한남리 농로 끄트머리에 ‘顯義合葬墓(현의합장묘)’라 새겨진 묘비가 서있고 그 뒤로 봉분 세 개가 보인다. 이곳에는 인근 의귀초등학교에서 집단처형된 원혼들이 뒤엉켜있다.

    ‘의로운 영혼이 함께 묻힌 묘’라는 의미의 현의합장묘는 의귀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길가에 있다. 의귀리는 일제 강점기 때 남원면사무소 소재지였고 5일장이 열릴 정도로 부촌이었으나 중산간 지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4·3사건에 휘말렸다.

    당시 의귀국민학교에 주둔한 군은 초토화작전 이후 집을 잃고 은신하던 의귀·수망·한남·가시리 주민들을 현장에서 총살하거나 국민학교에 수용했다.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소문에 제 발로 걸어온 주민들도 있었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취조해 잔당을 소탕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1949년 1월 10일 30여명의 청년을 총살했다.

    이틀 뒤 무장대의 기습으로 치열한 전투 끝에 4명의 전사자를 낸 2중대는 곧바로 의귀국민학교에 수용됐던 주민 80여 명을 끌어내 사살했다. 보복성이었다.

    3기의 봉분에 나눠 희생자를 안치한 현의합장묘.
    3기의 봉분에 나눠 희생자를 안치한 현의합장묘.
    현의합장묘역에는 관리사무소와 함께 내력과 희생자 이름을 새긴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현의합장묘역에는 관리사무소와 함께 내력과 희생자 이름을 새긴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민보단은 시신을 이곳으로 옮겨와 구덩이 세 개를 파고 매장했다. 몇 달 후 유족들이 시신을 찾으려고 구덩이를 파헤쳤으나 누가누군지 확인할 수 없어 다시 덮어버렸다.

    가족이 매장됐다고 믿는 유족을 중심으로 봉분을 쌓고 성묘를 하며 1976년 '삼묘동친회'를 결성했다. 세 무덤에 묻힌 희생자의 후손은 친척이라는 뜻이다. 1983년에 와서 '顯義合葬墓' 비석을 세웠다.

    현의합장묘 4·3유족회는 2003년 9월 16일 의귀리 765-7번지에 있던 집단매장지를 발굴했다. 뼛조각이 뒤섞이고 일부는 심하게 훼손돼 당시 참상을 짐작케 했다. 서쪽 묘에서 17구, 가운데 8구, 동쪽에서 14구 등 39구의 원혼이 무려 54년 만에 후세 손에 수습됐다. 숟가락, 비녀, 혁대, 머리에 박힌 총탄 등의 유물이 나왔다. 39구의 유해는 화장을 한 뒤 수망리 893번지에 안장됐다.

    다행스럽게 절차 없이 생명삭탈 권한을 마구 휘두른 군경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송악도서관 인근 회전교차로 ‘하모3리’ 표지석 옆에는 눈길을 끄는 비석 3기가 세워져 있다. 왼쪽은 ‘4.3사건 위령비’인데 그 옆으로 ‘면장 김남원·목사(牧師) 조남수 공덕비’, ‘경찰서장 문형순 공덕비’ 등 4.3사건과는 이질적인 비석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제주도에는 옛날 관리들의 공덕비가 흔해 그런 곳에 4.3위령비가 비집고 들어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송령이골 의귀 교전 사망자 시신 방치터. 1942년 1월 12일 무장대는 의귀초등학교에 주둔중인 토벌대를 습격했으나 오히려 50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패퇴했다. 죽은 무장대 시체는 이곳에서 수년간 방치된 채 버려졌다. 토벌대는 이 교전으로 죽은 4명의 아군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 주민들을 집단 처형했다.
    송령이골 의귀 교전 사망자 시신 방치터. 1942년 1월 12일 무장대는 의귀초등학교에 주둔중인 토벌대를 습격했으나 오히려 50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패퇴했다. 죽은 무장대 시체는 이곳에서 수년간 방치된 채 버려졌다. 토벌대는 이 교전으로 죽은 4명의 아군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 주민들을 집단 처형했다.
    빨갱이로 몰려 죽음에 직면한 모슬포 주민들을 구해준 한국판 쉰들러의 주인공 문형순 경찰서장(오른쪽)과 김남원 면장·조남수 목사(가운데) 공덕비.
    빨갱이로 몰려 죽음에 직면한 모슬포 주민들을 구해준 한국판 쉰들러의 주인공 문형순 경찰서장(오른쪽)과 김남원 면장·조남수 목사(가운데) 공덕비.

    모슬포라 불리는 대정면 상·하모리도 4.3사건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토벌대는 연일 마을 주민들에게 식구 중 산으로 올라가거나 식량·옷 등을 갖다 준 사람은 자수를 하라고 겁박했지만 누구도 응하지 않았다. 자수하면 죽임을 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보다 못해 면장이자 민보단장인 김남원과 기독교 목사인 조남수가 총대를 메고 마을 주민들을 설득했다. 그들은 관할 경찰서장 문형순을 찾아가 자수하는 자는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설득에 따라 많은 주민이 자수를 했지만 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하기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그때 문서장이 나서서 서슬 퍼런 서청과 부하경찰을 제지하고 주민들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문서장과 김면장, 조목사 덕에 모슬포 사람들은 밀고에 의해 죽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용기를 높이 사 1996년 4.3위령비 옆에 공덕비를 함께 세웠다. 제주에서 ‘한국판 쉰들러’라 불리는 문서장은 모슬포 경찰서장에 이어 성산포 경찰서장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의로운 행동을 이어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의 회오리가 불어닥쳤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문서장에게 예비검속자를 총살한 후 결과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그는 ‘부당하므로 불이행’이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에필로그  
    지난해 봄과 여름 두 차례에 걸친 제주도 다크투어리즘을 통해 답사기를 쓰면서 4.3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난 참극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빨갱이 토벌이라고 보기에는 민간인이 너무 많이 희생됐다. 진상규명조차 오랜 기간 거론하지 못했다.
    70여년 전 내가 제주도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 정도로 당시 인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결백은 눈곱만큼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케케묵은 과거사를 되짚는 이유는 아직도 학살에 대한 성찰이 이뤄지지 않고 4.3사건 전체를 색안경을 쓰고 보는 세력이 일부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지금도 좌우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색깔분쟁이 촉발될 여지가 없지 않다. 아픈 역사를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이유는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기 보다는 현재의 지평을 넓히자는 데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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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 2019-04-03 07:40:04
    [단독] 71년 만에… 국방부·경찰 ‘제주4·3’ 유감 표명한다

    JC 2019-04-02 19:20:59
    저도 이런 슬픈 역사가 제주도에서 발생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되지 않네요.,

    진교영 2019-03-26 13:00:40
    쉰들러리스트 감명깊게 본 영화인데요 그 못지않은 문서장 김면장 조목사 님이 계셨네요 세분에 명복을 빕니다 .
    다음달 제주도에 갈일이 있는데 이번 김형규 기자님 여행기를 읽고나니 제주도에 가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시각으로 차분하게 둘러보아야 겠습니다 .
    억울하게 돌아가신 모든분들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역사와 진실이 왜곡되지않기를 가슴깊이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