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팡세 칼럼》 호미의 미학 (Aesthetic of weeding Hoe)
《파리팡세 칼럼》 호미의 미학 (Aesthetic of weeding Hoe)
  • 정문영 기자
  • 승인 2019.04.02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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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칼럼》 호미의 미학 (Aesthetic of weeding Hoe)

평범하고 익숙한 사물을 거대하게 확대시켜 놓으면 시각적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정원용 모종삽을 높이 10미터 크기로 제작해 공공 장소에 설치해 놓은 것을 보았다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손아귀에 쥐일 정도로 작은 사물이 거대한 크기로 확대 제작된 것을 볼 때, 우리는 생경하고 낯선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팝아트의 전략이다. 평범하고 진부한 것을 확대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생경함과 놀라움을 주는 작가를 들자면, 스웨덴 출신의 조각가 클레스 올덴버그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일상의 작은 도구나 기구들을 거대하게 확대해 공공장소나 미술관에 설치해놓은 유명한 현대미술가이다. 일상의 오브제들, 가령 빨래집게나 옷핀, 숫가락 위의 체리나 톱 등의 도구나 사물을 거대하게 확대해 관객의 심리에 충격을 준다든지, 전기청소기나 선풍기 등을 부드러운 천이나 비닐로 모조한 해학적 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발상은, 그의 일관된 예술적 방법론이다. 그의 해학과 유머러스한 모뉴멘털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렇듯, 현대미술의 기본 전략은 ‘낯설게 만들기’다. 익숙한 물건이 낯설어지기 위해서 원래 있던 장소에서 다른 장소에 두는, 미술 용어로는 불어 ‘데페이즈망(depaysement·displacement)’, 우리말로 ‘전치(轉置)’하는 방법이 있고, 사물을 실제보다 확대하여 만드는 방법이 있다. 확대하면 일단 시각적으로 압도하게 마련이다. 이런 확대된 사물은 조형물, 즉 공공미술인 ‘퍼블릭아트(public art)’라는 이름으로 공공장소에 설치하는데, 대중과의 친화력과 소통을 강조한 아주 흥미롭고 유머러스한 조형물들이 도심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은, 마치 예술에 대한 우리의 진지함과 엄숙주의를 비웃는 것처럼,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일상용품을 원래의 맥락에서 떼어 놓는다. 빨래집게, 스푼, 옷핀, 모종삽, 아이스크림, 셔틀콕(깃털공), 바늘 등, 너무 작고 진부해서 눈길조차 주지 않던 시시한 일상용품을 크게 확대시켜서 공공장소에 설치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든다.

필자는 올덴버그가 선택해온 오브제를, 한국적인 오브제로 치환해 상상을 해보면서 호미를 크게 확대해 제작한 모뉴멘털 작품을 그려보았다. 우리가 대대로 내려온 전통적 농기구들에서 독특한 한국적 미학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대대로 전래되어온 농기구들, 가령 쟁기, 써래, 고무래, 곰방매, 가래, 지게, 장군, 두레 같은 농기구는 이제 농업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다. 고작 삽, 괭이, 낫, 호미, 쇠스랑 등이 눈에 띄지만, 그중에서도 호미는 여전히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다. 호미는 작고 볼품 없으며 힘도 없이 보이지만, 농작물을 다치지 않고 곡식 가까이 자라는 풀만 뿌리까지 뽑아낼 수 있는 도구로는 호미만한 것이 없으며, 이것은 농작물의 주변을 일구어 농작물 뿌리에 숨통을 열어주기도 한다.

호미는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호맹이, 호메이, 호무, 홈미, 호마니, 허메, 허미, 희미라고도 부른다. 호미의 디자인은 단순 소박하다. 날, 슴배, 자루의 세 요소로 이루어진 형태이다.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면서 동시에 미적이다. 호미의 모양은 그것이 사용되는 지역의 자연적인 조건과 농업경영의 특질 등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호미의 형태는 세 가지가 있다. 쟁기의 보습처럼 날끝이 뾰족하고 위는 넓적한 보습형, 날이 낫처럼 너비에 비해 길며 그 끝이 날카로워 자갈 등의 저항물이 많은 데에서 쓰기 편리해 밭호미라고도 부르는 낫형, 장삼각형(長三角形)으로서 양변에 비해 바닥의 길이가 긴, 한국에서 쓰이는 호미 중에서 날은 물론 자루도 가장 긴 세모형이 그것이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점점 잊혀지고 사라져가던 호미가, 최근 미국 아마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미디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까닭은 ‘ㄱ’자로 꺾어진 ‘호미’는 손삽만 쓰던 외국인들에게는 ‘혁명적 원예용품’이고 30도 휘어진 날은 미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며 '덤불 베는 데 최고'라는 구매평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해외 수요가 폭발하는 이유는, 미국 등 인건비가 한국보다 비싼 서구에서는 손작업이 필수적인 대장간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직업적 환경 때문이다. 해외에 나갈 때 선물용으로 구입하려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호미를 통해 가히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깨닫게 한다. 전통적인 한국의 호미에서 그 미학을 새롭게 발견하고 디지털 테크놀로지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삶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정택영 (화가/ 파리팡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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