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눈] KAIST 대학원생들의 권리장전
[시민기자 눈] KAIST 대학원생들의 권리장전
  • 주강현
  • 승인 2014.10.20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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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강현 카이스트 물리학과 석박통합과정

[굿모닝충청 주강현 카이스트 물리학과 석박통합과정] 2014년 10월 6일, 카이스트 본원 행정본관 앞 잔디밭에서는 상징적인 행사가 하나 열렸다. ‘KAIST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선언하는 행사가 그것이다.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의 주도로 두 차례의 공청회 및 강성모 총장과 일부 교수의 감수와 자문을 거쳐 만들어진 권리장전은 100명 남짓한 학생들과 총장을 비롯한 수 명의 교수 및 교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선포되었다.

KAIST 대학원생 권리장전은 서문을 통해 그 목적이 모든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함께 카이스트 대학원을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평등한 지적(知的) 공동체로 유지하는 것에 있다고 밝힌다. 본문에서는 대학원생의 권리를 열거하는데,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연구와 학업을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어선 아니 됨을 천명하고, 성별, 인종, 종교, 개인의 성향 등에 의해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연구와 학업을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
인권의 사각지대란 그늘에 불을 밝히다

또 대학원생의 학업, 연구 기회가 부당하게 박탈되지 말 것과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고, 카이스트 대학원 공동체의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권리 조항들에 이어서 그에 따른 의무가 서술되는데, 여기에는 학내 규정 및 절차를 준수할 것, 원내 면학 분위기 조성하고 성실히 학업 및 연구를 수행에 임할 것, 그리고 연구자로서 연구윤리를 지킬 것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마지막으로 보칙에서 침해구제 지침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의 인권 보장 및 학내 인권교육을 담당할 상설기구를 운영할 것을 대학원 측에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선언이 나온 배경은 대학원생들이 처해왔던 현실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대학원생은 수업을 듣고 연구지도를 받는 학생인 동시에, 강의 진행을 보조하는 조교와 교수의 연구를 돕는 조수로서 일하는 노동자의 중간지대에 있다.

여기에 지도교수와의 과도한 권력 비대칭이 더해져 대학원생 개인의 처우가 교수 재량권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갖는 기본적인 권리들조차 쉽게 침해당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예컨대 법으로 보장된 최저시급조차 받지 못하면서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것이 ‘학생이 공부하는 것이 어떻게 임금을 지급하는 대상이 되느냐?’라는 논리로 정당화되면서도 방학은 고사하고 휴가조차 내기 어렵다거나, 휴일반납과 야근을 강요당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에서 나타나는 위계에 의한 인권침해는 때론 대학원생들 간에서 폭언과 성추행 등의 형태로도 변주, 재현되었다. 이런 모습들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대학원생들이 자신들을 대상으로 연구환경에 대해 설문 조사해 모아둔 것의 통계가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이런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가시적인 시도들이 대내외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국 대학원 중 처음으로 카이스트에 인권센터가 대학원생들의 손으로 설립되어 학내의 인권침해 사례에 대응하기 시작했고, 지역 정치인이 카이스트의 일부 대학원생들이 최저생계비조차 못 받는 문제를 해소하고자 이들을 지원해줄 예산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학교는 안전점검을 강화하고 충분한 안전대책 없이 학생을 위험한 실험에 투입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KAIST 대학원생 권리장전이 선포되었다.

이번 권리장전은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와 의무를 대학원생이란 특수성을 반영하여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선언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를 실제 연구실 환경에 적용하고 실천해가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다.

그 과정은 강성모 총장이 축사를 통해 언급한 대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관습을 바꾸려는 시도인 만큼 응당 과거에 해오던 방식들과 충돌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대학원생과 교수와 학교는 서로 협력하거니 싸우거니 하며 나아갈 것이다. 비록 그 과정 한 걸음 한 걸음은 느리겠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인다면 과거 내 지인들 안에서 발견할 수 있던 인권침해 사례가 두세 사람은 건너가야 찾을 수 있을 만큼 대학원 사회 밖으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며, 권리를 보호받은 대학원생들이 미래에 교수로 돌아와 제자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권리장전 선언을 통해 카이스트 대학원 구성원들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시금 확인했다. 학교 측도 권리장전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호의적이다. 모쪼록 이번 기회를 잘 살려 카이스트 대학원생들의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더 나아가 이런 움직임이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하여 이 땅의 모든 대학원생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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