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성년의 날, 충남대 영탑지에선…"
[그땐 그랬지] "성년의 날, 충남대 영탑지에선…"
[사라진 지역 대학 문화] ① 충남대 영탑지
  • 남현우 기자
  • 승인 2019.04.10 1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여유는 사치일까. 일과 취업 등 삶의 여정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가슴 속 한편에 깊숙이 저장돼 있는 작은 추억들은 또 다른 활력소가 된다. 때때로 들춰낸 추억의 편린들은 ‘그 땐 그랬지’라는 회상을 불어온다.
특히 대학생 시절 쌓아온 추억들은 가장 순수했고, 즐거웠다.
성년이라는 면죄부는 패기와 때론 객기를 유발하며 기상천외한 일들을 경험케 했다. 학교에 떠도는 소문을 캐며 소설을 써내려가던 시간들, 캠퍼스 곳곳의 상징물들에 얽힌 일화들을 되뇌며 청춘을 논하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친 일상에 한 줌 여유를 내어줄 수 있는, 지금은 사라졌거나 혹은 사라져가고 있는 대전지역 대학들의 전통과 캠퍼스에 얽힌 일화들을 추억해본다.

(출처=충남대학교) 충남대 영탑지 연못 전경.
(출처=충남대학교) 충남대 영탑지 연못 전경.

[굿모닝충청 남현우 기자] 2008년 5월 셋째 월요일, 성년의 날이다.

충남대 영탑지에는 학생회에서 나눠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학생들과 큰 각오를 한 듯한 눈으로 수면을 응시하는 학생, 그런 학생에게 환호를 보내는 또다른 학생, 앞으로 나에게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학생 등 수백 명이 뒤엉켜 있다.

물론 연못 안에는 이미 물 반, 사람 반이다. 막 성년이 된 누군가의 선배, 동기 또는 후배가 '난 했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걸어나오고 있고, 다수의 횡포로 얼떨결에 연못에 몸이 던져진, 다음 희생양을 찾는 학생도 눈에 들어온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은 곧 나 또한 제 발로, 혹은 선배와 동기들에게 사지가 붙잡혀 저들과 똑같은 운명을 맡게 될 것이다. 좀 전부터 한 선배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아마 다음 입수자는 나인 모양이다.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인 성년의 날은 만 19세가 되는 성년에게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주며, 성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지정된 기념일이다.

성년이 되면 선거권을 취득하고,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으며, 술과 담배의 금지 제한이 해제되는 등 여러 자격을 갖게 되고 반대로 여러 의무들이 생긴다. 성년의 날이 그만큼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전국의 대학들은 이러한 성년의 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즐기는데, 캠퍼스에 '영탑지'라는 연못이 조성돼 있는 충남대는 성년이 된 학생이 이 곳에 입수하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영탑지는 성년의 날이면 '공중 목욕탕'으로 불리기도 한다.

언제부터 빠졌을까?

이러한 전통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나라가 5월 셋째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지정한 해가 1984년인 점을 비추어보면 1980년대 후반부터 입수 전통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탑지는 지난 1981년 충남대가 문화동에서 지금의 궁동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조성됐다. 영탑지 뒤로는 백제시대 정림사지 5층 석탑을 재현한 충대석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충대석탑이 들어설 때 영탑지도 함께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왜 빠질까?

입수 전통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오간다. 연못에 빠짐으로써 '미성년 시절의 자신을 씻고 참된 성년이 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있는 반면, 연못이 고인 물이라는 점에서 '찌든 사회 속으로 들어간다'라는 다소 염세적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최근까지의 입수 전통은 단순한 성년의 날 이벤트 중 하나로 변화됐다.

(출처=대전유성구청 공식블로그)
(출처=대전유성구청 공식블로그)

사라진 입수 전통... 학생 반응 '제각각'

최근 충남대에서는 입수 전통이 사실상 사라졌다.

5년여 전까지 단과대학 혹은 학과 단위에서 학생자치기구가 주도해 성년의 날 기념행사를 진행했고, 행사 중 일부가 입수였지만, 현재는 선배들로부터 입수 전통을 전해들은 일부 학과 학생들만이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입수 전통이 과거의 산물로 밀려난 것에 대해 충남대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충남대 졸업생 김 모(29, 08학번) 씨는 "4학년 때를 제외하고 매년 성년의 날 영탑지를 찾았다. 당시에는 공강시간이면 수십 명의 학과생들이 영탑지에 모여들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수업을 듣고 버스 타기가 민망해 1시간 거리의 집을 걸어가기도 했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충남대 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전통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재학생 임 모(23, 14학번) 씨는 "신입생 때 몇몇 선배들과 영탑지에 빠진 기억이 있다. 학교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꼭 이어져야 할지는 고민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수심이 위험할 정도로 깊지 않지만 연못 바닥이 울퉁불퉁해 자칫 잘못하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연못이 있는 다른 학교들도 입수 전통이 있다. 충남대만이 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