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유가족의 상하고 부서진 마음,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세월호 유가족의 상하고 부서진 마음,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리뷰] ‘세월호 이후’ 공동체 책임 일깨우는 영화 '생일'
    • 지유석
    • 승인 2019.04.14 21:0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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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이후 남은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생일'. Ⓒ NEW
    세월호 참사 이후 남은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생일'. Ⓒ NEW/굿모닝충청=지유석 기자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자식을 잃은 한 엄마는 ‘없다’는 말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지를 이제 알았다고 말했다.”

    <남한산성>, <칼의 노래>로 친숙한 김훈 작가가 세월호 3주기를 즈음해 쓴 글 중 일부다. 전도연, 설경구 주연의 영화 <생일>은 바로 이 '없다'는 술어가 때론 얼마나 무섭고 감당하기 어려운지를 잔잔하지만 호소력 있게 그린다.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를 잃은 '엄마' 박순남(전도연)의 이야기다. 세월호를 주제로 한 영화이지만, 세월호 선체는 영화가 끝날 때 까지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그보다 순남과 남편 정일(설경구), 딸 예솔(김보민)의 감정 동선을 우직하게 쫓아간다. 

    순남으로 분한 전도연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2007년 작 <밀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신애는 아들을 유괴해 죽인 사내가 자신 앞에서 태연히 하느님으로부터 용서 받았다는 말을 듣고 넋을 잃는다. 

    <생일>에서 보여준 전도연의 연기는 <밀양>의 주인공 신애를 다시 보는 듯하다. 특히 아들 수호의 옷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전도연이었기에 더 강렬했다고 본다. 

    ‘상하고 부서진 마음’, 얼마나 소중한가

    영화 '생일'에서 순남 역을 맡은 전도연의 연기는 2007년 작 '밀양'을 떠올리게 한다. Ⓒ NEW
    영화 '생일'에서 순남 역을 맡은 전도연의 연기는 2007년 작 '밀양'을 떠올리게 한다. Ⓒ NEW/굿모닝충청=지유석 기자

    무엇보다 이 영화는 '상하고 부서진 마음'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은 진상규명을 외쳤다. 그러나 당시 정부와 정치권은 이 같은 목소리를 불온하게 여겼다. 

    진상규명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 마다 정부는 보상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 같은 정부 행태는 시민사회의 분노를 샀다. 전국 각지의 시민사회단체는 유가족과 활발히 연대를 모색해 나갔다. 

    이후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시간 속에서 새정부가 출범했다. 새정부 출범 전후로 전 정부가 세월호 참사 대처가 미숙했고,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계속해서 불거져 나왔다. 

    참사 당시나 지금이나 진상규명, 그리고 책임자에 대한 사법처리는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시민사회 역시 계속해서 정부가 제구실을 하는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 <생일>을 보고나니, 무엇보다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이 빠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기서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이란 바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상한 마음을 보듬어 안는 일을 말한다. 

    지난 정권은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 그 결과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실패를 떠안아야 했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을 보듬기보다 야박하게 내쳤다. 시민사회가 분노한 건 바로 이 지점에서였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자신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비통한 자들, 즉 마음이 부서진 자들에 의해서 민주주의는 진보한다"고 적었다. 파머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본다. 

    "자아와 세계에 관한 지식을 온 마음으로 붙든다면 마음은 때로 상실, 실패, 좌절, 배신 또는 죽음 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그때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 주변의 세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는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그것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면 결국에는 분노, 우울, 이탈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경험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안을 위대한 능력으로 깨져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생일>의 주인공 순남은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진 정도가 너무 심해서 다른 유가족과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할 정도였다. 

    '진상규명' 말고 놓친 건 없을까? 

    유가족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는 첫 단추는 진상규명이다. 이건 국가가, 그리고 정치가 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진상규명이 치유의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데서 오는 상실감도 세심하게 어루만져줘야 한다. 이 일은 시민사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곧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이한다. 그동안의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세월호 유가족의 치유에 앞장서기 보다, 아픔을 후벼 파는 일들이 곳곳에서 횡행했다. 5주기 추모식을 얼마 앞두지 않은 지금에도 이른바 '태극기 부대'는 세월호를 규탄하는데 열심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순남은 아들 생일을 기억하는 자리에 참석한다. 수호의 친구들은 수호가 남긴 기억을 공유하고, 순남은 그 기억을 들으며 위로를 얻는다. 이 장면은 앞으로 우리 사회 공동체가 세월호 유가족에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앞서 인용한 파커 J. 파머는 "마음이 부서져 흩어진 게 아니라 깨져서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룬다면,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위해 차이를 창조적으로 끌어안고 힘을 용기 있게 사용할 수 있다"고 적었다. 

    파머의 지적대로 세월호 유가족은 자신의 깨지고 상한 마음을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감사해야 한다. 

    세월호 5주기를 맞는 지금, 우리 사회는 유가족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 영화 <생일>은 이 고민에 훌륭한 답을 주는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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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애 2019-04-15 09:42:23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읽어 봐야갰네요

    이태성 2019-04-14 22:36:33
    늘 좋은 기사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