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땐 그랬지] 33년 한남대 역사 이어가는 ‘이과대 매점’
    [그땐 그랬지] 33년 한남대 역사 이어가는 ‘이과대 매점’
    [사라진 지역 대학 문화] ②한남대 공대·이과대 매점
    • 남현우 기자
    • 승인 2019.04.19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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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들에게 여유는 사치일까. 일과 취업 등 삶의 여정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가슴 속 한편에 깊숙이 저장돼 있는 작은 추억들은 또 다른 활력소가 된다. 때때로 들춰낸 추억의 편린들은 ‘그 땐 그랬지’라는 회상을 불어온다.
    특히 대학생 시절 쌓아온 추억들은 가장 순수했고, 즐거웠다.
    성년이라는 면죄부는 패기와 때론 객기를 유발하며 기상천외한 일들을 경험케 했다. 학교에 떠도는 소문을 캐며 소설을 써내려가던 시간들, 캠퍼스 곳곳의 상징물들에 얽힌 일화들을 되뇌며 청춘을 논하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친 일상에 한 줌 여유를 내어줄 수 있는, 지금은 사라졌거나 혹은 사라져가고 있는 대전지역 대학들의 전통과 캠퍼스에 얽힌 일화들을 추억해본다.

    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굿모닝충청 남현우 기자] 한남대 오정동캠퍼스 계의돈 기념관 지하에는 33년째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명소가 있다.

    기념관 지하로 통하는 계단 앞에 서면 침샘을 자극하는 라면 냄새가 반긴다. 계단을 내려가 왼편에는 어린시절 초등학교 분식집에서 쓰던 원형 의자와 탁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 공과대학 건물이었던 이곳에는 터줏대감 ‘이과대 매점’이 있다. 동네 슈퍼에서나 볼 법한 옛 가판대와 손수 쓴 메뉴판이 ‘오래 된 곳’이라고 말하듯 옛 정취가 묻어난다.

    과거 단과대학마다 자리했던 매점들이 지금은 편의점으로 대체돼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이과대 매점이 유일하다.

    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한남대 공대·이과대매점, 33년째 명소로 자리잡아

    공대 매점은 故 박해주 씨가 지난 1987년부터 운영했다. 이곳 매점의 명물로 꼽히는 것은 손수 끓인 라면이다.

    학생들은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라고 입을 모은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던 학생들에게 ‘공대라면’은 2000원 남짓한 돈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던 박해주 씨의 인심이 녹아있다.

    손수 만든 김밥 한 줄과 푸짐한 라면 한 그릇은 공대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줬고, 이 때문에 박 씨는 공대생들 사이에서 ‘엄마’로 불렸다.

    ‘엄마’는 떠났지만 공대매점의 추억은 그대로

    박 씨는 올해 초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엄마’의 흔적은 그래도 남아있다. 공대 매점은 편의점이 들어섰지만 이과대 매점은 박 씨의 딸 임도희 씨가 아직까지 성업중이다.

    앞치마를 두른 채 판매대를 지키던 임 씨는 “학교 측의 배려로 어머니가 꾸린 이 매점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명물 라면도 임 씨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임 씨는 “어머니께서는 살아계실 때 학생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계셨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매점을 찾은 학생들을 보고 여러 감정들이 밀려왔다”고 운을 뗐다.

    한남대를 향한 ‘매점엄마’의 정, 딸에게 이어져

    박 씨는 생전에 김밥을 판매한 수익금 800만 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하는가 하면, 지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385만 원의 장학금을 한남대 학생들을 위해 내놓았다.

    임 씨도 최근 박 씨의 이름으로 장례식 조의금 중 일부인 500만 원을 한남대에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나머지 조의금 또한 유니세프, 난치성 희귀암 단체 등에 나눠 기부하는 등 어머니의 선행을 이어갔다.

    임 씨는 “학교에 기부금을 전달한 것이 기사화돼 적잖이 놀랐다. 지인들에게 전화도 많이 왔다. 기부금이라고 하기에 너무 적은 금액이라 오히려 부끄럽다”며 얼굴을 붉혔다.

    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한남대 역사 함께한 매점 “추억 속에 사라지지 않길”

    박 씨와 임 씨가 한남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만큼, 학생들에게도 이과대매점은 각별한 곳이다.

    한 졸업생은 “매점 자리를 차지하려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내려가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끓여주던 라면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은 학교 매점들이 사라지고 편의점으로 바뀌면서 교정의 모습들이 변해가고 있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곳 매점을 자주 이용한다는 타 학과생도 “타 단과대학 학생들도 라면을 먹기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학교에 마지막 남은 이 곳이 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남대의 추억과 정이 그대로 남겨진 곳, 오늘도 ‘엄마’가 끓여준 라면을 맛보기 위한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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