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미의 세상읽기] 바닷가 동네의 어느 갑질이 낳은 후폭풍
    [김선미의 세상읽기] 바닷가 동네의 어느 갑질이 낳은 후폭풍
    1000원짜리 퇴직금 보다 ‘밥줄’ 끊은 데에 분노 폭발하다
    • 김선미 편집위원
    • 승인 2019.04.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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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미 언론인
    김선미 언론인

    [굿모닝충청 김선미 편집위원] 충남 보령 대천항이 느닷없이 뜨르르하게 전국 뉴스에 올랐다. 지자체마다 한창인 봄철 축제가 대박이라도 난 소식이라면 좋으련만 기상천외(?)한 일로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리고 있다.

    “5월 3번째 방문 계획이었으나 취소합니다”
    “평생 대천에 갈 일은 없을 겁니다!”
    “1000원 갑질, 안가요!”

    ‘대천항 수산시장 불매운동합시다’ 네티즌들의 이유 있는 공분

    퇴직금으로 1000원짜리 7000장을 지불한 대천항의 한 횟집 주인의 ‘갑질’에 네티즌들의 분노가 활활 타오르며 자칫 불매운동으로 번질 기세다. KBS 보도로 알려지기 시작한 ‘1000원 퇴직금’ 파문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보령시의 한 횟집에서 4년 동안 일했던 손정희(65·여)씨는 일터를 옮기면서 그동안 일한만큼의 퇴직금으로 고작 300만원을 받았다. 손씨는 4년간의 퇴직금으로는 너무 적다고 여겨 더 줄 건을 요구했으나 업주는 “여기 수산시장에서 그렇게 따지는 사람은 없다”며 버텼다.

    손씨는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에 진정을 넣기에 이르렀고 고용노동부는 업주에게 700만 원을 더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업주는 초장 상자에 낱장으로 담긴 1000원짜리 7000장을 내어주며 직접 세어 가라고 했다. 2시간이 넘도록 손가락에 물을 묻혀가며 셌다고 한다.

    2시간 넘도록 손가락에 물 묻혀가며 센 1000원짜리 7000장

    그런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장 상인들의 압박으로 새로운 일터를 그만 두어야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일부 상인들이 담합해 손씨를 고용하지 못하게 압박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횟감을 요리해주는 식당들까지, 손 씨를 고용한 가게의 물건은 받지 않겠다고 나섰다.

    새로운 업주는 손씨가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고용노동부까지 나서서 말렸으나 상인들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장사를 할 수 없게 된 새 업주의 입장을 고려한 손씨는 스스로 일을 그만둬야 했다.

    “나는 나가서 내 몸뚱이 갖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라 나는 벌어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생존권을 박탈시켜놓고 나를 일을 못 하게 만들어놨으니까 나는 거기에서 화가 난단 말입니다, 지금.” 일터를 잃은 손씨의 절규다.

    퇴직금 요구한 60대 노인 여성, 상인들 담합에 생계를 잃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유명 게시판마다 ‘대천항 수산시장 불매운동합시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보령시청 온라인 게시판도 불이 났다. 불매운동 경고에서부터 어떻게 처리하는지 두고 보겠다는 경고까지 항의성 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대기업 사주도 아니고, 힘 있는 자의 전형적인 갑질도 아닌, 바닷가 작은 동네의 한 자영업자의 행동이 전국적인 분노를 유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700만원을 1000원짜리로 주는 황당한 모욕감도 분노 유발지수를 높이는 일이기는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다.

    ‘밥줄’을 끊은 것에 대한 분노다. 그것도 자식 신세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 노인의 밥줄을 하루아침에 끊어 버린데 대한 공분이다. 1000원짜리 퇴직금 갑질로 끝났으면 성질 못된 한 상인의 일탈로 치부돼 그 집만 콕 집어 비난을 샀을 것이다. 대천항 수산시장 전체, 더 나아가 보령시 전체를 폄훼하는 분노로까지는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옛 업주 억울하다지만 다수가 담합해 밥줄 끊는 일은 변명 안 돼

    한 사람, 한 가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밥줄 끊기’는 이유가 어떻게 됐든 비인간적이고 비열한 행위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전체가 담합해 한 개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옛 업주는 자신에게 쏠리는 비난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손씨가 받았던 월급 250만 원 안에는 매달 지급하기로 한 퇴직금 20만원이 포함된 액수라는 주장이다. 손씨가 퇴직금을 다달이 다 받아놓고 이중으로 퇴직금을 받아냈다며 억울해 했다. 반면 손씨는 다른 사람을 더 이상 고용하지 않는 대신 월급을 올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상인들도 알려진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며 억울해 하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퇴직금 지급 연기와 월급에 포함해 지급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고 더구나 다수가 담합해 한 개인의 밥줄을 끊는 일은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 선량한 보령 시민들과 상인들이야 무슨 죄가 있으랴

    바늘처럼 숨겨진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숨겨진 갑질’이 낳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거대한 태풍으로 변하는 일은 우리 일상에서 생각보다 더 많이 일어난다. 누구나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인간의 기억력이 짧아 잘 잊어버린다고 해도 한 번 찍힌 낙인은 쉽게 지우기 어렵다.

    나들이객이 많은 가정의 달 5월을 앞두고 이번 사태가 보령시 전체로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네티즌들도 상식 밖의 갑질에는 따끔한 경고를 보내지만 무차별적으로 보령시 전체를 매도하지는 말았으면 싶다. 대다수 선량한 보령시민들과 상인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1000원짜리 퇴직금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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