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4] 목천읍 서리 느티나무...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남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4] 목천읍 서리 느티나무...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남아
    조선 태종때 목천현 관아 객사에 심겨져
    살아서나 죽어서나 사람 곁을 지키는 나무 
    • 장찬우 기자
    • 승인 2019.05.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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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장찬우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있는 목천초등학교에 가보면 아름드리 느티나무 5그루가 있다.

    모두 300년이 훨씬 넘은 것들이다.

    목천초는 조선시대 목천현 관아 객사가 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학교 오른쪽 공터는 동헌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동헌은 관청의 본 건물로 수령이 사무를 집행하던 건물이다.

    목천은 대목악군(大木岳郡), 고려 때 목주(木州), 조선 태종 13년(1413)에 목천현(木川縣)이라 했고, 이 때부터 그 자리에 관아를 설치했다.

    목천현 관아 건물에 대해서는 조선 후기의 지리지와 지도 등을 통해서 그 모습을 추축해 볼 수 있다.

    1600년대 후반 제작된 『지승지도』, 1700년대 중반에 제작된 『여지도서』, 1800년대 고지도인 『해동지도』 등에서 그 기록과 건물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목천현 관아는 이인좌의 난(李麟佐亂, 무신란 1728 영조4년)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소론 강경파였던 이인좌는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 탄(坦)을 추대하고자 반정을 일으킨다.

    반란군은 청주에서 목천·천안·진천을 거쳐 안성·죽산으로 향했는데, 이때 반란군이 목천읍을 장악하고 관아를 점령하려하자 현감이 관문을 닫고 도망갔다는 기록이 있다.

    갑오개혁 당시 지방행정체계가 개편되면서 목천군이 설치됐지만 이후에도 목천현 관아 기능은 유지됐다.

    하지만 1913년 일제의 지방행정 구역 개편으로 천안군에 흡수되면서 필요 없게된 관아 건물이 철거됐다.

    이후 그 터에 목천 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고 오늘 날의 목천초등학교가 된 것이다.

    일제 당시 학교에 모여 만세운동을 벌인 것을 기념해 지금도 매년 목천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5그루의 느티나무는 3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변치 않고 살아 남았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정자목인 동시에 좋은 목재로도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이 느티나무다.

    목천현 관아 객사(관원이나 사신들의 숙소) 앞에 심어진 5그루 느티나무는 객사에 머누는 손님의 안녕을 지키는 정자목 기능을 하지않았을까?

    나무를 가해하면 마을에 병사자와 화재가 발생한다는 얘기도 전해져 내려오지만 어쩌면 언젠가 베어져 목재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느티나무는 살아서도 베어져서도 늘 사람 곁을 지키는 셈이다.

    지정번호 8-17-4-353/354/3558-17-344/2000-6

    지정일자 1982년 11월 1일/2000년 12월 29일

    소재지 천안 동남구 목천읍 서리 1

    수종 느티나무 5종

    수령 317~342(2019년 기준)

    수고 12~22m

    흉고둘레 3.22~5.8m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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