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서울 정문영 기자]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던 유시민(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작성한 진술서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뜨겁다. 그런 가운데, 서울대 한인섭 교수(법학과)가 4일 논쟁에 쐐기를 박는 견해를 밝히고 나섰다.
한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말이 자술서이지, 강제 타술서와 실질적으로 같다고 평가한다”며 “그래서 민주화된 뒤에, 그때 자술서는 고문과 강압에 의해 쓴 것이므로 법정증거가 되지 못했고, 거기서 뭘 썼든 그것으로 상대 흠집내기나 비난할 게 전혀 못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자술서는 자발성이 전혀 없는 강제 타술서였다”며 “어떻게 썼든 당시 학생, 정치, 재야운동의 동향은 전두환 군부의 정보망에 이미 다 들어 있었다”고 상기시켰다.
특히 “그 자술서대로 사건윤곽을 잡은 게 아니고, 군부가 짠 프레임에 갖다 맞추는 것이었다”며 “유시민-심재철이 뭐라 주장하든 상관없이, 신군부 집권에 가장 유리한 프레임대로 강제로 타술된 것이었다”라고 강조했다.
또 “뜬금없이 1980년 중앙정보부 보안사에서 쓴 강제 타술서는 그런 인간적 평가의 자료 자체가 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때의 자술서는) 당시 타술서를 강제한 군부놈들이 정말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인권 유린자였음을 확인하는 자료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하였다.
그리고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때 아닌 시비에 씁쓸한 심경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남는 건, 그때 한 글자도 쓰지 않고 버텨야지, 동료 이름은 절대 쓰지 말아야지... 그래야 투사이고, 민주화운동가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그런 아쉬움의 찌꺼기 같은 것... 그런데 그건 사람이 아니라 감각 없는 좀비인간, 기계인간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둘 다 극도의 폭력과 위축감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고 본다. 몇 십 년 뒤의 정치노선 갖고, 소급해서 그때 누가 잘못했니 하는 비난자료로 쓰지 말 일이고….”
한편 한 교수는 “난 1980년 때 대학 4학년이었고, 대학신문 기자였으므로, 유(시민)/심(재철)의 활동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며 “둘 다 훌륭했고, 멋있었고, 닥쳐올 고난의 불안 속에서도 각오하고 임한 학생리더였다”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어 “1980.5.17 이전의 그들의 행적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며 “이후 수사, 법정에서의 태도에 대해서는 그 고초에 대해 함께 하지 못했음에 미안하고, 그리고 이후의 정치행적은 각자 판단 받을 대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