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트북을 열며] 대통령 2주년 대담 후폭풍, 문제는 ‘언론’이다
    [노트북을 열며] 대통령 2주년 대담 후폭풍, 문제는 ‘언론’이다
    언론은 언제쯤 멋진 인터뷰를 국민 앞에 보여줄 수 있을까?
    • 지유석
    • 승인 2019.05.12 16: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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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는 어느 나라든 비상한 관심을 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민의 일상, 더 나아가 국가의 운명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언론의 시선에서 보자. 인터뷰는 논란이 첨예한 사회적 의제의 어느 한 쪽 당사자, 혹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을 만나 대화하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언론 행위다. 이 행위 중심에 국가 최고 지도자가 등장한다면, 언론사로서는 사활을 걸어야 마땅하다. 

    2000년 12월 퇴임을 앞둔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 CBS 간판앵커 댄 래더와 인터뷰를 했다. 댄 래더는 민감한 질문을 던졌으나 클린턴은 능수능란하게 비켜갔다. Ⓒ CBS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2000년 12월 퇴임을 앞둔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 CBS 간판앵커 댄 래더와 인터뷰를 했다. 댄 래더는 민감한 질문을 던졌으나 클린턴은 능수능란하게 비켜갔다. Ⓒ CBS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역사에 길이 남을 인터뷰는 셀 수 없다. 그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인터뷰는 2000년 12월 퇴임을 앞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미 CBS와 가진 인터뷰였다.

    진행은 CBS 간판 앵커였던 댄 래더가 맡았다. 인터뷰 초반 래더는 퇴임을 앞둔 클린턴의 심경을 묻는 질문을 던졌고, 클린턴은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그러다 인터뷰 중반, 래더는 "임기 중 가장 힘들었던 시간(darkest hour)이 언제였나?"는 질문을 던졌다. 래더의 질문을 받자 클린턴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힘든 시간은 여러 번 있었지요. 그 중 확실한 하나는 소말리아에서 18명의 미군 병사가 숨졌던 일이었습니다. 끔찍한 일이었지요. 어느 시점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기회가 있겠지요."

    의외였다. 래더의 질문은 다분히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였다. 클린턴은 1997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탄핵 위기까지 몰리는 등 곤욕을 치렀다. 그러니 클린턴으로서는 '힘들었던 시간'을 묻는 질문이 거북했을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은 거북한 질문을 노련하게 피해갔다. 소말리아에서 임무 수행 중 미군 병사가 숨진 일을 가장 힘들었던 사건으로 꼽았으니 말이다. (참고로 이 사건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1년 작 <블랙호크 다운>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다)

    그럼에도 래더는 집요했다. 바로 다음 질문으로 탄핵과 관련한 심경을 물었으니 말이다. 클린턴은 능수능란하게 예리한 질문을 비켜갔다. 클린턴의 답은 이랬다. 

    "제가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탄핵투표가 이뤄지던 시점에서 800명의 법·헌법학자들이 이 일(르윈스키 스캔들)이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이 중엔 공화당원도 많았지요."

    9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래더와 클린턴의 인터뷰는 지금 보아도 고수들의 합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다. 

    역사에 남을 인터뷰는 또 있다. 영국과 호주를 오가며 쇼프로그램 MC로 활동 중인 데이빗 프로스트는 워터게이트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인터뷰를 추진한다. 하야 후 재기를 노리던 닉슨은 CBS를 마다하고 인터뷰어로 프로스트를 택한다. 

    인터뷰 초반 닉슨은 능수능란하게 프로스트를 몰아붙인다. 이러자 프로스트에게 닉슨의 나팔수란 비난이 쏟아진다. 프로스트는 절치부심하다 닉슨이 워터게이트에 직접 개입한 증거를 확보한다. 프로스트는 이 증거를 근거로 닉슨에게 반격을 가한다. 

    결국 닉슨은 자신이 불법에 개입했음을 시인한다. 닉슨은  TV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있을 미국 국민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미국 국민들을, 정부에서 일하고자 했던 미국 청년들을,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실망시켰다."

    이 인터뷰의 파장은 컸다. 무엇보다 절치부심 명예회복을 노리던 닉슨은 인터뷰 이후 정계 복귀 시도를 접었다. 둘의 인터뷰는 론 하워드 감독의 2008년작 <프로스트 vs 닉슨>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기자에게 쏟아지는 비난 여론, 과연 적절한가?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KBS 송현정 기자와 취임 2주년 대담을 가졌다. 그러나 여론은 진행자인 송 기자의 태도를 문제 삼고 나섰다. Ⓒ 사진 출처 = 청와대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KBS 송현정 기자와 취임 2주년 대담을 가졌다. 그러나 여론은 진행자인 송 기자의 태도를 문제 삼고 나섰다. Ⓒ 사진 출처 = 청와대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KBS 송현정 기자와 2주년 대담을 가졌다. 그런데 대담 이후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는 양상이다. 특히 여론은 진행자 송 기자의 질문 내용과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주년 기념대담인데 북한 관련 문제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송 기자가 자주 대통령의 답변을 끊었다’, ‘송 기자 표정이 불손했다’는 식이다. 

    언론업계 종사자로서 이런 반응은 당혹스럽다. 대통령과 진행자의 치열한 수 싸움이 화제가 되기보다 기자의 태도가 문제가 되고 있어서다. 

    혹시라도 편견에 사로잡힌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대담을 다시 보았다. 여론의 지적대로 송 기자의 표정이 불량(?)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념대담이 있던 날 북한이 발사체를 쐈고, 이 사건은 문 대통령이 기울이던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에 제동을 걸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입장은 무척 중요했다. 이런 이유로 북한과의 대화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 건 언론인으로서 당연했다고 생각한다. 

    여론을 가장 분노케 했던 질문은 대통령에게 "독재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느냐"는 송 기자의 질문일 것이다. 이 대목을 수차례 되돌려 봤다. 그러나 이렇게 분노해야 할 일인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이며, 그의 집권은 촛불혁명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제1야당이 '좌파독재'라며 날을 세우고 있으니 문 대통령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흥미로운 포인트다. 이런 맥락에서 송 기자가 아니라 다른 언론인이 진행했더라도 비슷한 질문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논란을 떠나 언론업계 종사자로서 인터뷰 내용 전반, 특히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이 화제가 되기보다 기자의 태도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독자 앞에 송구한 마음이다. 

    국민 여론이 언론인의 태도를 질타하는 건, '진짜' 독재자 앞에 날선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굴종했던 역사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또 지금 일고 있는 국민의 분노는 정치권력 보다 자본권력 눈치를 더 보는 지금 언론 환경에도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댄 래더-클린턴 인터뷰, 프로스트-닉슨 인터뷰처럼 대통령과 언론인이 치열한 기 싸움을 펼치는 인터뷰를 국민께 보여줄 수 있도록 언론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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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다 2019-05-13 13:07:25
    오랜만에 글다운 글을 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