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40년 세월, 헛되지 않았다
[노트북을 열며] 40년 세월, 헛되지 않았다
2019년 6월 30일, 새 역사 쓴 남·북·미 정상
  • 지유석
  • 승인 2019.07.01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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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데 이어 북·미 정상간 만남, 남·북·미 정상 회동이 이뤄지면서 잠시 교착상태였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새로운 동력을 얻는 양상이다. Ⓒ 출처 = 청와대
2019년 6월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데 이어 북·미 정상간 만남, 남·북·미 정상 회동이 이뤄지면서 잠시 교착상태였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새로운 동력을 얻는 양상이다. Ⓒ 출처 = 청와대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뒤이어 북·미 정상간 만남, 남·북·미 정상 회동이 차례로 이뤄졌다.  

북·미-남·북·미 정상의 ‘깜짝’ 회동은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새로운 동력을 얻는 양상이다. 

북·미 정상 회동 이후 양측은 대화 재개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양측이 서로 협상 대표를 지정해 '포괄적 합의'를 하기로 했고,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대북협상팀을 2주 안에 구성하겠다는 말도 했다. 

이 지점에서 잠시 시계를 4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1979년 6월 29일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당시 카터 행정부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카터는 대선 후보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집권 하자 이 공약을 실천에 옮기려 했다. 군부를 중심으로 한 행정부 관료들은 주한미군 철수가 가져올 정치적·안보적 파장 때문에 극력 반대했다. 

마침 1977년과 78년 사이 미 국방부는 대대적인 정보분석을 통해 북한군 병력이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북한 지상군 병력 68만 명이 비무장지대에 근접배치돼 있다고 적었다. 

이 보고서는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일격을 가했다. 군부와 의회 모두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카터는 자신의 공약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백악관 참모들은 보고서 내용을 재검토 하도록 하고 한국·일본 등 관련 당사국과 주한미군 문제를 협의토록 하고자 카터의 방한을 추진했다. 

카터도 이런 의도를 모르지 않았다. 카터는 되려 참모들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방한을 추진한다고 보았지만, 끝내 승낙했다. 

당시 시대 분위기를 따져 보면,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구상이 전혀 허황된 건 아니었다.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전임 닉슨 대통령은 드러내놓고 아시아 국가의 복잡한 정치상황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미 카터도 닉슨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카터는 아시아에 미 지상군 병력을 두는 일 자체를 위험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카터는 반대 논리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대통령 권한을 이용해 자신의 구상을 밀어붙이려 했다. 이 같은 행태는 행정부 내에서 불필요한 혼선만 일으켰다. 

한국전쟁 당시 포병 장교로 참전한 바 있고, <워싱턴포스트>지 특파원을 지낸 바 있는 돈 오버도퍼는 그의 책 <두 개의 한국>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마지막 순간 빠져 나올 수 없는 궁지에 몰리기 전까지도 카터는 철군 반대론에 관심을 갖거나 귀를 기울이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혼자 궁지에 몰려 스스로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꿈만 같았던 3자 회동, 40년 만에 현실로 

결국 카터는 자신의 구상을 관철시키지 못했고, 재선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카터는 한국에 오면서 대담한 구상을 내놓았다. 자신의 방한 때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 한국 박정희 대통령 등과 3자 회동을 갖겠다는 구상이었다.

카터는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면 주한미군 주둔 명분 자체가 사라질 것으로 보았고, 3자 회동은 이 같은 사고의 산물이었다. 카터는 앞선 해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중동평화 협상을 중재하기도 했다. 카터는 자신의 경험이 한반도에도 유효하리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3자 회동은 성사되지 않았다. 백악관 참모들은 구상을 포기하라고 카터를 압박했다. 이러자 카터는 참가자들의 수위를 외교관으로 낮춘 회동을 재차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찬성했다. 찬성한 이유는 전반적인 취지에 공감해서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북한 김일성 주석이 응하지 않으리라고 내다봤고, 이 같은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카터의 환심을 사야할 처지이기도 했다. 

1979년 6월 29일 실현되지 못했던 남북미 3자 회동은 꼭 40년 만인 2019년 6월 30일 화려하게 부활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먼저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뒤이어 북·미 회동이 이어졌고, 남·북·미 정상이 나란히 등장했다. 실로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카터 구상 이후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간 대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고, 이는 한국 외교력이 성장한데 따른 결과다. 이번 북·미-남·북·미 정상 회동도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력이 맺은 결실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40년 전 이뤄지지 못했던 남·북·미 3자 회동의 성사는 역사가 작지만 의미 있게 전진했음을 말없이 입증한다. 

40년의 시간이 헛되이 흐르지 않았다. 실로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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