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테미오래에 들다
[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테미오래에 들다
(97) 이제 알았네, 대전에 이런 곳!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9.07.0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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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대전의 원도심을 지도로 살펴보면 대전고등학교 건너편으로 큰 삼각형을 찾을 수 있다. 대고 오거리와 보문산공원 오거리, 테미 삼거리가 큰 삼각형의 꼭지점들이다. 이제 대고 오거리를 지나면서 길에서 바라본다. 이 삼각형 안은 해발 103미터의 야트막한 수도산이 꽉 채우고 있다. 이 산의 어깨를 지나는 길들이 바로 테미고개이다. 수도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다. 1956년, 산의 정상에 상수도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도 정상에는 상수도사업본부 대흥배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산의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아기자기하면서도 품이 깊은 공원이 매년 봄이면 벚꽃으로 불타오른다는 사실이나 그 아래 테미예술창작센터가 국내외 시각 예술가들이 들고 싶어 서로 다투는 유명한 터전이 되었다는 사실들은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오늘 들를 곳은 ‘테미오래’이기 때문이다. 대고 오거리에서 보문로를 따라 100여 미터 걷다보면 테미오래를 소개하는 표식을 만난다. 그리면 바로 오른쪽 골목으로 방향을 잡고 부담스럽지 않은 오르막을 오른다. 깨끗한 골목과 고풍스러운 집들이 모여 고즈넉이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경찰들이 입구를 통제했을 법한 고위 관료들이 머무는 집들이었다.

“2012년 충남도청이 내포로 이전하기까지 이곳은 충남도지사관사촌이었습니다. 여기 10개의 집들은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에 자리 잡으면서 형성되었구요, 지금은 대전 시민들의 문화공간이자 치유의 마을이 되면서 ‘테미오래’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았습니다.”

테미오래의 부촌장인 유현민 씨의 얘기이다. 한동안 비어있던 이 관사촌을 민간에 위탁해 문화시설로 시민의 품에 돌려주기로 한다. 그 결과 2019년 1월부터 민간단체가 운영을 시작하면서 이 공간의 성격과 기능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테미오래’라는 이름은 작은 산성인 테미와 이웃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모양인 ‘오래’라는 말이 합쳐진 것이다. 테미오래의 전반적인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는 유현민 씨는 이미 소제창작촌을 운영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공간 자체는 워낙 오래된 곳입니다. 이 자체로 많은 시간이 담긴 곳이지요. 그래서 새로운 시간을 채워가는 일을 하는 동안 공간을 인위적으로 변형을 가한다거나 욕심을 가지고 우겨 만들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면 공간이 가지는 긴장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만이라도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운영하는 사람들, 예술가들, 또 대전의 시민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본인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예술가인 유현민 씨는 오래된 공간과 그 안에 담긴 시간에 관해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 시민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문화적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지만 무언가를 새로 담기 위해서 그릇을 고쳐서 공간이라는 틀을 바꾸지 않겠다는 신념이자 오래된 시간이 가지는 순수성을 지켜야한다는 우려이기도 하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떤 공간들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직접 걸으며 건물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먼저 가장 규모가 있는 ‘시민의 집’은 충남도지사가 사용하던 공관으로 근현대전시관과 아트 페스티벌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옆에 있는 1호 관사는 ‘역사의 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대전의 문학과 연극의 역사 자료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현재는 대전에서 활동하는 각 연극단체와 이를 소개하는 자료, 또 연극계 원로를 소개하는 ‘대전연극 100년 아카이브전’이 열리고 있다. 2호 관사는 ‘재미있는 집’이다. 이곳은 작은만화도서관이자 대전관광홍보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들어가 보니 아기자기한 만화집에 들어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젊은 예술가들이 입주해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가는 공간이 있고 해외의 예술가들이 거주하면서 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 문화와의 접점을 예술로 구현하고 있다. 지금 소개한 2호 관사 이후로도 일곱 개의 집이 더 있으니, 어느 집이 어떤 이름을 달고 어떤 문화를 품고 있는지 많은 시민들이 찾아가 직접 확인해볼 일이다. 참고로 목공방, 추억의 사진관, 유투버들을 위한 스튜디오공간도 있으며, 정기적으로 플리마켓도 열린다.

이렇게 탄생한 문화공간인 테미오래가 진정 시민들의 힐링공간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지금도 고민이 많다.

“공간에 대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예전에 고위급 관료들이 사는 관사들이었기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들 사이에는 높은 담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헐 수는 없고, 있되 어떻게 어필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느냐,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제를 가지고 야간에 개방한다거나 시민들이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대관을 하는 대안들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모두가 ‘이 공간이 공간이 진짜 열렸구나, 편하게 갈 수 있구나.’ 이런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 생각에는 지금도 테미오래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릅니다. 더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천천히 흐르는 작업 중 하나가 예술가들의 레지던시입니다. 10호 관사인 ‘해외작가의 집’에서는 해외교류작가들이 들어와 작업을 했고 우리 청년예술가들은 7호 관시인 ‘문화예술인의 집’에 둥지를 틀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우리 레지던시가 다른 곳과의 차이는 바로 근대건축공간이 가지는 시간성과 공간성, 그리고 이들이 합쳐진 역사성입니다. 이 공간 자체가 예술이고 또 예술을 이루는 배경인 셈이죠. 마침 오늘 1기 레지던시 결과보고전이 있습니다. 같이 가보시죠?”

1기 해외 레지던시로 테미오래를 찾은 작가는 브라질에서 온 알레 가베이라 씨와 프랑스에서 온 플라비 씨이다. 플라비 씨는 동양사상인 팔괘와 주역을 기반으로 한국적 문양과 대전의 일상풍경을 예술의 소재로 삼았으며 알레 씨는 한국인의 인상과 정서를 통해 민속과 풍토를 연구,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세계작가의 집’ 골목에 다과를 놓고 시작한 이날 행사는 알레 씨의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자전거에 잉크통을 달고 달리면서 땅 위에 숫자 8을 그리는 행위예술은 먼 남미에서 온 예술가의 눈에 비친 한국의 문화가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었다.

“테미오래는 모여 있는 관사들이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곳입니다. 또한 건축사적으로 유일한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시민에게도, 예술가들에게도, 역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곳이죠. 그러니까 관심을 가지고 자주 찾아와 즐기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나가는 공간이 되기 바랍니다.”

한사코 사진은 찍지 말라는 유현민 씨는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자는 말에 힘을 실었다. 이제 주말에 찾을 곳이 하나 늘었다. 그리고 이곳은 자주 찾아야 할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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