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0]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늘 그 자리에 있었을 뿐”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0]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늘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느티나무
    • 장찬우 기자
    • 승인 2019.07.05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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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장찬우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30도를 웃도는 날이 계속되던 7월 어느 날.

    충남 예산 대흥면 상중리 ‘의좋은 형제’ 마을에서 그와 마주쳤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마을 한 복판에 버티고 선 그는 한눈에 봐도 고된 삶의 흔적이 엿보였다.

    주름 투성이 피부는 하냥 쭈글거리고...상처 투성이의 슬픈 몸뚱어리였다.

    하지만 초라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마치 세상풍파를 온 몸으로 끌어 안아온 자신의 성장과 성숙을 자랑하는 듯 보였다.

    하여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은 충동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의 위풍당당함과 풍요로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잔뜩 주눅들어 묻는다.

    실례지만... 올해...연세가

    “1055살이다.”

    ...

    잠시 말 문이 막힌다.

    다시 용기를 내 묻는다.

    장수의 비결이 뭡니까?

    “세월을 거부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기꺼이 눈을 맞았다. 하지만 마지 못해 하지 않았다. 쉽게 살고자 하지 않았다. 살고 죽는 것이 내뜻대로 어찌할 수 없지 않느냐. 타고난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온갖 세상살이의 고통을 끌어 안아야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살게된단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사는 동안 행복하기만 했단 말입니까?

    “누구나 결대로 살고 싶어하지만... 살다보면 결대로 살지 못하고 ‘옹이’를 만나게 된다. 누구나 옹이 하나쯤은 안고 산다. ‘옹이’가 있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옹이’가 있어야 톱질도 견딜 수 있게 된다. ‘옹이’는 견디는 힘, 즉 내성(耐性)이다. 거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행복의 원천인 셈이지. ‘옹이’는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드는 희망의 에너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단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어르신께 행복을 구하지 않았나요?

    “그랬지...누군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 수없는 고통과 바람을 털어 놓고 내게 답을 구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간절했고 때론 내게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 내게 잘 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도 하더구나.”

    그들에게 답을 주셨나요?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원을 이룬 사람들은 내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 생각하고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내게 정성이 부족했다 생각하더구나. 예상치 못한 화를 당하면 내게 잘 못해서 그리 됐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한거라고는 1000년 넘게 같은 자리에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들어 주었을 뿐이다.”

    원망을 들으신 적은 없나요?

    “나를 제대로 알면 원망하지 않는다. 너희들의 숨을 내가 들이마시고 나의 숨을 너희가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나 역시 매일 흔들린다. 햇살 한 가닥만 비춰도 손을 뻗고 이슬 한방울만 있어도 다리를 뻗는다. 꺽이고 비틀어질 지언정 해마다 새잎을 낼 수 있었던 이유다. 바라는 것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고개를 떨구지 마라. 아픈 만큼 향기가 나는 법이다. 내게 온 많은 사람들은 내게서 그걸 깨닫는 단다.”

    어르신은 누굴 한 번도 원망해 보지 않았나요?

    “왜 없었겠나. 너희들이 말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견디고 지켜왔지만...과거에 비해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외롭단다. 옛날에는 어린 아이들이 찾아와 재잘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즐거웠고...여름 날 배를 까고 누운 노인의 코고는 소리조차 듣기 좋았는데...요즘은 1년에 한 번, 때가 돼야 동네 사람 몇을 만나는 정도여서 내심 서운 함이 있단다.”

    자주는 아니어도...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앞으로도 꽤 오랜시간 난 이 자리에 있을테니...언제라도 오시게나.”

    그는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에 있는 ‘전설의 나무’다.

    마을 복판에서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 온 이 나무는 수령 1055년으로, 충남 최고령 느티나무다.

    지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높이는 19m에 둘레는 7.5m로 여전히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보호수를 신성하게 여기며 여전히 음력 2월 초하루가 되면 정성스럽게 제를 올리고 있다.

    서기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마지막 거점인 임존성을 공격할 때 이 나무에 배를 맸다는 전설 때문에 ‘배맨 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천년 세월의 연륜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하루하루 숨 가쁘게 눈앞의 것을 쫓아가야 하는 현대의 리듬과는 달리 나무는 역사를 기억하고 세월을 인내할 줄 아는 긴 안목으로 삶을 대하며 이웃과 관계해 왔다.

    조금 더 나무의 리듬을 닮아 간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안목도 푸르러 질 것이 분명하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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